진주, 파리, 대전에 남은 마에스트로의 흔적 : 이응노미술관 기획전

올여름 이응노미술관은 《파리의 마에스트로-이응노&이성자》 기획전을 준비했다. 9월 18일까지 열린 이 전시는 1950년대 프랑스에서 예술가로 활동하던 9명의 화가를 소개한 2018년 전시 《파리의 한국 화가들 1950-1959》의 연장선에 있다. 미술관은 4년 전 전시를 구체화하고 깊이를 더해 이응노, 이성자라는 두 대가의 작품에 집중하였다. 이 글은 이성자 화백의 작품에 대한 전시리뷰이다.  


파리의 유학생 이성자

이성자 화백은 30대 초반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녀가 유럽에서 활동할 당시 프랑스 미술계에는 전통과 자연의 균형을 강조하는 바젠트 그룹이 영향을 끼쳤다. 작가는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면서도, 세밀한 풍경화가 아니라 자신만의 색채가 담긴 화풍을 구현했다. 붉은색과 파란색의 대비를 강조한 〈행운의 바람〉은 빛, 풍경, 바람을 표현했다. 강렬한 색채와 전통적인 회화법을 가진 그녀의 작품은 혁신적인 풍경화 또는 온화한 추상화라는 대조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이성자 화백이 1950년대에 정물화, 풍경화에서 시작해 추상화로 넘어가는 변화를 겪었다면, 1960년대에는 마티에르를 강조하며 기법의 차별화를 이루었다. 마티에르는 프랑스어로 재질, 질감이라는 뜻인데, 미술 용어로는 작품의 재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표면효과를 말한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마티에르를 살린 이 시기 작품을 감상하면 나무 액자 속 두꺼운 질감이 머릿속에서 움직인다. 

 〈행운의 바람〉 캔버스에 유채, 81x100cm, 1958

이성자는 동양과 서양의 영향을 골고루 받았다. 그녀의 작품은 추상 풍경이나 마티에르를 강조하는 서양적 미술사조를 따르면서, 밭고랑, 음양 같은 동양적 감수성을 담았다. 그녀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계기 역시 한국의 시골 풍경을 모티브로 한 〈여성과 대지〉 연작을 통해서이다. 1961년에 열린 이성자의 두 번째 개인전에서 모성애와 땅의 공통점을 표현한 작품을 전시했는데, 미술계의 호평을 받으며 상업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녀는 그림 그리는 일을 땅을 가꾸는 일에 비유했다. 짧은 붓질로 촘촘히 칠하고 긁어낸 화면 위에 겹겹이 채색해 거칠고 생동감 있는 흙의 재질을 표현했다. 

“물감을 쌓고 긁어내고 색을 조합해 생명 근원인 땅의 질감을 표현하고, 만물의 근원인 땅을 모성에 비유해 대지의 풍요로움을 상징화했다. 이것은 생명의 근원에 대한 상상력, 양육하는 여성의 힘, 창조하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복합적으로 의미한다.” (전시회 도록 28쪽)


작품의 영감이 된 모성

〈새벽의 속삭임〉은 해뜨기 전 새벽녘 땅에 서린 충만한 기운을 담았다. 작가는 어린 시절 밭을 거닐며 목소리는 없지만 저마다의 몸짓으로 소통하는 작은 생명체들의 속삭임을 들었을 것이다. 대지는 곧 생산, 창조, 어머니를 뜻한다는 해석이 자칫 보편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식을 두고 혼자 해외에서 활동하며 예술혼을 불태웠던 이성자이기에 이 메시지를 절실하게 담았을 것이다. 이성자 화백의 연보에 따르면 작가는 아들 셋을 양육했던 젊은 시절을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회고하며, 어머니로서 감성과 경험이 있음에 긍지를 가졌다. 이런 삶의 여정이 화가로 활동하는 동안 비옥한 예술적 토양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성자 화백은 창작 활동 중후반기에 작품 이름을 무제라고 정하기도 했지만, 초기에는 〈암스테르담의 항구〉, 〈밭고랑의 메아리〉, 〈어제와 내일〉 같은 이름을 붙였다. 화폭에 담긴 형상은 구상보다 추상에 가깝지만, 사실적인 제목이 있다는 것은 완벽한 추상화가 아니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다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추상 풍경화는 섬세한 색, 거친 표면과 만나 이성자의 세계를 선보인다. 이 시기의 작품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부드러우면서 힘 있는 아름다움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추상화로 전향하다

1960년대를 지나며 이 화백은 완전한 추상화를 그린다. 그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진주 1960년〉이다. 이 작품은 그녀가 어린 시절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경험했던 지역 진주의 지명과 조개 속에 들어있는 보석 진주라는 중의적인 뜻을 가졌다. 하늘빛 바탕에 미색 사각형, 위쪽에 숨어있는 굵은 진주는 물감을 쌓고 긁어내기를 반복하여 탄생한 작품이다. 따뜻한 색감을 쓰지 않았는데도 작품에는 온화하고 다정한 기운이 들어있다. 이성자 화백은 이 시기를 거치며 점진적인 변화를 모색하여 훗날 기하학 부호, 세모, 동그라미 등 추상화의 기본적인 언어를 구사한다. 1970년대에 와서 이성자는 아메리카 대륙 여행을 작업에 담았다. 뉴욕, 브라질리아 등 현대적 기획도시에서 떠오른 영감을 주제로 삼았다. 〈음과 양 75년 5월 No. 1〉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간결하고 디자인적인 요소를 살렸다. 작가가 즐겨 사용했던 음양 모티브를 중앙에 배치하고 반복적인 얇은 선으로 조형미와 구도를 살렸다. 음양 패턴은 남보라 계열로 채색하고 주변을 연보라로 감싸 경계의 색이 퍼져나가는 착시효과를 주었다. 지극히 세련되고 힙한 작품이다. 


대전에 머물다 간 진주의 보물

올여름 전국 각지에 있는 네 미술관의 협조 덕분으로 대전시민들이 이성자 화백의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가 열릴 수 있었던 데에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의 공이 가장 컸다. 대전에 이응노미술관이 있다면, 진주에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이 있다. 이성자는 60여 년간 프랑스에서 활동했지만, 생전에 작품과 기록물을 진주시에 기증하기로 했다. 진주에서 학교에 다녔고, 경상남도의 산과 들에서 모티브를 찾았던 작가에게 꼭 맞는 장소였을 것이다. 《파리의 마에스트로-이응노&이성자》 전 덕분에 올해가 가기 전에 진주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좋은 작품은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멀리 퍼뜨리는 법이다.

우리는 예술계의 거장을 마에스트로라고 부른다. 이번 전시를 보며 전시 제목을 참 잘 지었구나 싶었다. 이성자의 작품은 진주로 가지만, 그녀가 보여준 절제된 자유분방함과 주기적으로 변한 열정 넘치는 화풍은 관객들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마에스트로 이성자의 시대별 대표작을 모아서 종합선물 세트를 준비한 미술관 관계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음과 양 75년 5월 No. 1〉 캔버스에 아크릴릭, 250x200cm, 1975


글 사진 염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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