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구 아닌, 문화클러스터가 필요하다

문화지구 아닌, 문화클러스터가 필요하다

2022 대전문화예술정책토론회

대전시 민선8기 문화예술정책 관련 토론회가 12일 오후 4시 대전NGO지원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민선8기 대전시 문화예술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원도심문화예술인행동(박은숙 공동대표)’에서 마련했다.

발제는 충남대학교 자치행정학과 육동일 명예교수가 맡았으며, 토론자로는 이찬현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 사회적기업 (주) 스펙트럼 이상철 대표이사, 중구문화원 박경덕 사무국장, 한국문학창작소 송경섭 대표, 고당마당 한기복 대표가 나섰다. 

지금 필요한 건, 문화클러스터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약 31년이 지났다. 그중 성과를 낸 정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정책도 있다. 정책이 가진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중요한 건 정책을 만드는 사람과 정책에 영향을 받는 주민이 끊임없이 소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의 삶에 다가가지 못한 정책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육동일 교수는 대전이 현재 직면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했다. 육동일 교수는 법률 및 제도의 미비, 지방재정 자립의 문제, 인구 감소로 인한 소멸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주민이 지역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직접 만든 제도를 운영할 권한이 필요합니다. 시민의 의식은 높아졌지만, 중앙정부에서는 여전히 지역에 권한과 예산을 올바르게 분배하지 못합니다. 지역의 특색을 살린 정책과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대전에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있는데, 행정에서 그걸 잘 못 살리는 것 같아요. 도시는 변하지만, 이야기는 변하지 않습니다. 문화예술정책은 정책만 좋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라, 지역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책이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때 문화클러스터가 필요하다. 문화클러스터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상호작용하는 문화예술의 생산 및 관련 기능의 지리적 집합체”다. 클러스터(cluster)는 유사 업종에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기업, 기관이 한곳에 모인 것을 말한다. 소비와 유통에 초점을 맞춘 문화지구와는 달리 문화 클러스터는 예술가와 예술가의 창작활동이 중심인 인적 네트워크다. 창의성의 원천이 특별한 개인에 있지 않고 예술가들의 네트워크와 사회조직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육 교수는 독일과 일본의 성공적인 문화클러스터 사례를 예시로 들며 대전에서 문화클러스터를 성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어떤 제도를 개선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우선 예술가의 사회네트워크가 활성화되도록 예술가 지원사업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예술가 지원사업이 주로 창작공간을 제공하는 데 그쳤다면, 한 단계 나아가 예술가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지역사회 활동을 유도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 중앙정부가 중심이 되어 문화클러스터 육성에 앞장서야 하고, 도시재생사업이 개발 위주의 사업이 아닌, 지역 예술가들끼리의 네트워크 형성과 그들의 지역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육동일 교수

대전문화예술위원회 설치해야

토론자들은 대전 문화예술의 문제점과 현황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냈다.
이찬현 이사장은 민선 8기 정책을 대략 살펴보고 보완이 필요한 정책을 제안했다. 첫 번째는 대전문화예술위원회 설치다. 이찬현 이사장은 기존 문화예술진흥위원회가 연 1회 운영하며 형식적인 역할만 해 왔기에, 실질적인 활동과 성과를 내는 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 때 예술인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주변 입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 목적을 가지고 짓는 시설이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주민과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충분히 검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지역 축제를 기획할 때 기획팀에 지역 예술가들을 반드시 포함하는 것이다. 축제 기획의 세부 과정에 예술가도 참여해 함께 발전을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철 대표이사는 지역예술인의 권리 보장을 이야기했다. 대전시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지역예술인 평균 연 수입은 755만 원이다. 코로나19 이전보다 41% 감소한 수치다. 기초창작지원금과 복지재단에서 지원 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활동할 여력이 없어 심사 조건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예술가가 많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지역 예술의 정체성은 곧 그곳의 예술인 정체성입니다. 안 그래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예술인이 많았는데,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정말 많은 예술인이 활동을 포기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 예술이 발전하지 못하고 지역민이 누릴 수 있는 문화도 한정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철 대표는 공공 거버넌스 기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역 예산 덕분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공 문화예술기관에서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기획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에서 행사를 기획하거나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지역 예술가를 많이 써 주십시오. 그곳에 참여했다는 사실 하나가 중요한 활동 증빙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증빙자료를 통해 생활이 어려운 예술가들이 지원사업에 신청할 수 있고요. 이를 위해서 지역 예술가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관련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송경섭 대표는 청년예술가 입장에서 대전의 문화정책을 분석했다. 그는 대전시의 교통 문제를 먼저 언급하며 스페인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예로 들었다.
“스페인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빌바오라는 도시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자, 도시재생의 대표 성공 사례입니다. 많은 사람이 미술관 덕분에 빌바오가 발전했다고 생각하는데, 미술관의 초대 관장과 관계자들은 교통 인프라 개선을 미술관의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꼽습니다. 많은 사람이 미술관에 찾아올 수 있도록 교통환경을 정비해 자연스럽게 미술관이 살아나고, 도시가 살아난 거죠. 대전은 교통도시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지역 안에서 이동하기가 불편합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청년들에게는 더 힘듭니다. 얼마전에는 관저동에서 버스를 타고 관평동까지 갔는데, 정확히 2시간 50분이 걸렸어요."
송경섭 대표는 아무리 좋은 청년 공간이나 문화예술공간을 짓는다고 해도, 청년이 그곳에 가지 않으면 소용없다며, 대전에는 시립미술관 등 좋은 예술공간이 있음에도 교통 접근성이 불편한 곳에 몰려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출판계열에서 일하는 송경섭 대표는 대전시의 독서 문화 정책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독서 지능 시행계획 자료집을 보면 대전시가 독서, 출판 사업과 관련해 투입하는 예산은 연간 7억 원 정도다. 광주는 350억 원, 세종은 19억 원, 울산 121억 원, 제주도는 9억 원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적은 예산이다.
송경섭 대표는 대전청년정책네트워크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다양한 전문가를 통해 대전시에서 현재 진행 중인 문화예술 지원사업은 연간 84개라는 사실을 알았다. 투입하는 예산 또한 적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는 문화예술 지원사업의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주민참여예산제를 활용해 지역 청년 예술가들을 지원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구에만 몰린 문화예술 시설

박경덕 사무국장은 발제 내용에 적극적으로 동감한다며, 대전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동서 격차를 꼽았다. 대전시는 인구 감소 중임에도 주거환경과 문화기반시설의 용이함 등을 이유로 동서 간의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대전을 노잼도시라고 인식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문화기반시설의 부족을 꼽습니다. 하지만 대전은 다른 지자체에 비해 우수한 문화 기반 시설을 갖췄다고 평가받습니다. 그런데도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건,  문화기반시설 중 상당수가 서구와 유성구를 중심으로 편중돼 있기 때문입니다. 근대건축물 전수조사와 더불어 대전광역시의 문화기반시설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이어 현재 대전광역시의 조직 개편으로 인해 정책을 온전하게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동서 간의 격차를 해결하고 자치 문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설정해 주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한기복 대표는 현장에서 연주하는 연주자로서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한 대표는 1991년부터 대흥동과 선화동에 거주하며 장구를 연주했다. 그만큼 동네와 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다. 한 대표는 대전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이 서구에만 지나치게 몰리면서 원도심은 낙후된 도시가 됐다고 비판했다. 행정기관이 떠나며 상권이 죽자 지역 예술가들이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은 떠나고 떠날 수 없는 사람들과 실무자만이 남아 자리를 지키는 중이다. 한기복 대표는 예술가들이 떠난 원인으로 월세 상승과 코로나19로 인한 예술 활동 침체를 꼽았다. 다양한 예술 활동이 위축되며 예술 활동을 뒷받침하는 표구사와 화랑이 사라졌고, 그 연쇄작용으로 창작활동 공간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원도심은 현재 활성화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높은 월세로 있던 자리에서 쫓겨나는 예술가들과 창작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부 메이저 예술가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본업을 병행하며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고, 시장에서 물건을 나릅니다. 지역 예술가가 겪는 어려움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정책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원도심에 입주한 예술가 현황 파악과 실질적인 경제적 지원정책 말입니다.”
대전시가 당면한 문제는 절대 가볍지 않다.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대전문화예술정책 토론회가 끝나고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지원받아야 하는 예술인들의 기준과 범위는 어떻게 되는지 등 여러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다.
선거 결과에 따라,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정책이 되지 않도록, 긴 호흡으로 우리 도시 문화예술 생태계를 건강하게 조성하기 위한 콘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글 사진 하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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