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최고의 호텔이라고 불렸던 붉은 건물
대전 최고의 호텔이라고 불렸던 붉은 건물
대전관광호텔
·대전역전시장에 위치한 붉은 건물·
대전역전시장을 걸으면 시간을 이동한 느낌이다. 시장이면 으레 보이는 냉면집과 국밥집이 낮은 천장으로 있고, 작은 여인숙과 철공소들이 모여 있다. 옆으론 철로가 지나간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에 거대한 붉은 8층 건물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그 건물 끝, 지붕 굴뚝에 써 있는 글씨로 이 건물의 과거를 추측할 수 있다. 벽돌 굴뚝엔 ‘大田觀光호텔’이라 적었다. 현재 이 건물은 1층은 마트로 2층은 한의원으로 쓰지만 그 이상 층은 비어 있다.
역전 근처에 8층 규모로 호텔이 있으니 과거 명성이 자자했을 것 같은데 인터넷으론 어떤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
·과거엔 대단했지 야구 선수들도 여기서 지냈다고·
대전관광호텔에 대한 기억은 거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역전시장 거리엔 의자를 내놓고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이 많은데 그분들께 이야기를 청해 들을 수 있었다.
“저 건물이 예전엔 잘 나가던 건물이야. 대전에선 가장 좋은 호텔이라고 그랬어. 대전에서 야구 시합 있는 날엔 선수들이 저 건물에서 지냈다고. 외국인들도 오갔고 나라에 높은 사람들도 머물렀지.”
대전관광호텔 건물 뒤에서 ‘행복 만물상’을 운영하는 강철규 씨는 예전 기억을 더듬었다.
“저 건물 지하엔 바가 있었어. 나도 젊었을 때 몇 번 갔지. 지하가 엄청 넓었다고. 노래도 나오고 재밌었지. 지금은 이 건물이 경매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어. 여기 근처에 철물점 하는 양반이야.”
강철규 씨는 언제든 또 궁금한 거 있으면 찾아오라며 다른 친구 만나러 자리를 일어섰다.
“여기 골목에 재밌는 게 많지. 내 가게도 예전에 영화 촬영한다고 왔었어. <에덴의 남쪽>이라고. 아니야. <에덴의 동쪽> 말고 <에덴의 남쪽>.”
나중에 찾아보니 이창열 감독의 작품이었다. 영화의 50% 이상을 대전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이 거리는 그 모습 자체로도 영상에 담을 가치가 있었을 거다.
“내 고등학교 친구가 저기서 카운터 일을 봤었어. 고등학교 실습이었나 그랬을 거야. 그때가 어디 보자. 44년도 더 된 이야기네. 저 건물이 중앙데파트 있고 나서 있었나…. 기억이 잘 안 나네. 저기가 잘 될 땐 나도 처녀 때였으니까. 언제 문 닫은 건 몰라. 나중에 이 건물 경매로 산 것만 알지.”
대전관광호텔 건물 뒤쪽에서 크게 공간을 잡고 마늘을 파는 할머니 이야기다. 이곳에서 장사한 지도 2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60이 넘도록 장사한 할머니에게도 대전관광호텔은 오래된 건물이었다.
“지금 건물 사장이 여기 공간 만들어서 월세 받고 있거든. 여기서 장사야 다 도매니까 잘 되고 할 거 없지. 식당이나 그런데에 넣어주는 거라.”
자세히 보니, 관광호텔 건물 공간을 활용해 만든 상가가 여럿 보인다. 호텔 건물을 산 후에 공간은 2층까지만 활용 중이다. 나머지 공간은 활용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시간이 지나며 변한 세월, 존재·
대전관광호텔 건축물대장을 통해 확인한 건물 사용 승인일은 1970년 11월 13일이다. 건물은 지하 1층부터 지상 9층까지 있다. 눈으로 볼 때도 어르신들 이야기 들었을 때도 8층 건물이라 들었는데 건축물대장을 확인하고 자세히 관찰하니 8층 위에 작게 공간 하나가 더 있다. 연면적은 4,209.93m2, 건축면적은 766.4m2이다. 등록된 건축물 용도를 통해 지금은 운영하지 않지만 과거 각 층을 어떻게 사용했을지 추측할 수 있었다. 5층과 6층은 ‘유흥전문음식점’이 ‘관광호텔’과 함께 운영되었다. 8층에는 소매점도 있었다. 2004년엔 1층 부지 중 일부를 일반음식점으로 기재신청한 이력이 있는데 이 시기에 공간을 쪼개서 월세를 내 준 것이 아닐까 싶다. 토지 대장을 통해선 1999년에 소유권이 이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건물 주용도는 제1,2근린생활시설과 함께 관광호텔도 기재돼 있다.
사용 승인일이 1970년이니 1974년에 운영을 시작한 대전중앙데파트보다 더 먼저 세운 건물이다. 대전중앙데파트는 건물 자체가 사라지고 기록이 남았다. 대전관광호텔은 기록 없이 건물만 남았다.
다시 대전관광호텔 주변 거리를 찾았다. 관광호텔 건물을 샀다는 주인 아저씨와는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건물에 대해선 말할 게 별로 없다는 이유였다. 몇 번을 더 서성였지만 소용없었다. 대신 이 골목과 오래도록 함께 한 철물점과 철공소 중심으로 다니기로 했다.
“이 건물은 서울에서 불도저 장사하는 송 사장이 지었어요. 나중에 다른 건설 사장에게 팔려고 하고 그랬을 거야. 그러다 부도나서 경매로 넘어갔지요. 지하에는 빠칭코가 있었고 5층인가 거기에 춤추는데가 있었어요. 지금은 현 사장이 월세해서 돈 받고, 뒤에 유료주차장 해서 돈 받고.”
이곳에서만 60년 살았다는 대흥기공사 할아버지는 호텔을 이용해 본 적은 없지만 잘 나가던 당시 서울 사람들이 드나드는 건 많이 봤다고 한다. 여기 철공소는 대부분 오래된 곳이라며 다른 곳도 한번 이야기 들어 보라며 자전거를 타고 떠난다. 대흥기공사 할아버지와 인사한 후 근처에 기계를 정비하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넸다. 간판엔 ‘기계 제작 수리 전문’이라는 글씨와 함께 ‘고려식품기계’라고 썼다. 김명식 할아버지다.
“지하에 있는 파친코는 가 봤지. 지하가 넓어. 거기 관리하는 애들이 있었는데 그놈들 내가 다 알고 하니까. 너무 돈을 잃으면, 왜 이리 안 나오냐고 막 따지기도 했지. 그 당시에 따면 50만 원, 100만 원 까지도 따고 했어. 동전이 이만한 그릇에 억수로 떨어졌다고.”
장사도 잘되고 사람들이 많아 돈도 크게 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건물의 마지막 운명도 들을 수 있었다.
“유성이 발전했잖아. 다들 거기로 가는 거지. 예전엔 별 다섯 개 호텔이라고 했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낡은 거야. 나중에 일본 사람도 오고 중국 사람도 와서 사려고 했다가 그냥 갔다더라고. 건물 사는 돈보다 건물 뜯어고치는 돈이 더 들 거래.”
유성온천지구 주변이 관광특구가 되던 시점이다. 야간 영업을 제한했던 시절 이야기로 당시 서울 사람들도 밤이 되면 유성관광특구에서 놀고 갔다고 한다. 도로가 발달하고 자가용이 많아지며 대전역을 꼭 거치지 않아도 됐을 거다. 그렇게 서서히 쇠락하다가 호텔은 부도가 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빈 층을 활용하지 않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저기에 한 번은 월세를 받은 적이 있다고. 내 친구도 저기서 지낸 적이 있어. 있을 곳이 못 돼. 막 비 새고, 보일러 안 나오고 난리라고.”
·거리의 기록·
대전역전시장을 걷고 취재하면 할수록 이곳에 쌓인 이야기가 많다. 고려식품기계 사장님은 특허 기술이 3개나 있다고 자랑했다. 여기 있는 사장님들은 다들 특허 하나 씩은 있을 거란다. 역전시장길에 있는 보문아파트도 눈에 띈다. 4층 높이의 작은 아파트인데 역전 앞에 있는 아파트의 사연이 궁금하다.
한때 왕성한 활동이 있었던 대전관광호텔은 현재 그 주변을 지키는 이들의 기억에만 존재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잘 나갔던 호텔이었다. 비싼 양주와 빙빙 도는 카지노가 있던 호텔. 1980년대부터는 프로야구가 시작되면서 오가는 야구선수를 훔쳐 볼 수 있던 곳. 그곳이 대전관광호텔이었다.
아무리 정보화 시대에 모든 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검색할 수 있다해도 기록하지 않은 정보는 찾을 수 없다. 대전역 주변을 지키는 오래된 건물 이야기를 하나씩 찾아다니다 보면 예전 대전의 모습을 보다 실감나게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글 사진 황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