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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땀, 눈물로 만든 공간입니다."
"피, 땀, 눈물로 만든 공간입니다."
대전 소통협력공간 조성에 박차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도부터 사회혁신을 국정과제로 추진했다. 사회혁신 활성화를 위해서는 주민이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 활동 참여 문턱을 낮추고, 지역문제 해결을 도와줄 구심점이 필요하다. ‘지역거점별 소통협력공간’은 이를 위해 행정안전부에서 추진한 사업이다.
지역거점별 소통협력공간 조성사업은 지역에서 방치하거나, 부정적 기능을 수행하던 공간을 리모델링해 지역 문제를 찾고 그 해결 방법을 언제든 시민이 모여 논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기존에 공공에서 주도한 공간조성사업은 공간을 먼저 만든 후 운영 주체가 등장하고 사업계획을 정하는 순서로 진행했다. 이런 방식은 공간의 세부적인 활용을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추진하는 사업이 한정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커먼즈 필드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순서를 바꿨다. 먼저, 공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전문인력을 갖춘 민간운영주체를 공개적으로 모집한다. 그 이후 선정된 운영 주체와 함께 공간 기획과 시민참여사업을 사전에 진행한다. 공간 기획은 공용 공간을 최대화해 가능한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리모델링도 마찬가지로 지역 상황과 수요에 맞춰 진행한다.
‘지역거점별 소통협력공간’의 공동브랜드인 ‘커먼즈 필드(Commons Field)’는 공동을 뜻하는 ‘커먼즈’와 현장을 뜻하는 ‘필드’를 결합한 표현이다. 주민, 민·관·산·학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 의제를 발굴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주민참여 지역사회혁신 거점공간을 의미한다. 커먼즈필드는 지자체 공모를 거쳐 6개 지역이 선정됐다. 전주, 제주, 춘천은 이미 조성 완료 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대전, 충남, 울산은 주민참여 리빙랩 사업을 진행하며 기반을 다지는 중이다. 그중 대전 지역의 ‘커먼즈필드 대전’이 올해 문을 연다.
커먼즈필드를 소개합니다
커먼즈필드 대전은 2019년, 행정안전부 지역거점별 소통협력공간 조성 및 운영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옛 충남도청사 부속건물 세 곳에 소통협력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소통협력공간으로 바뀌는 건물은 옛 우체국 건물과 옛 선거관리위원회, 옛 의회동, 그리고 옛 무기고다. 대부분의 부속건물이 그렇듯 세 건물 모두 다양한 용도로 활용했다.
한때 시민 억압의 상징이었던 이곳은 이제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하기 위해 작업을 마무리하고 개관식을 준비 중이다. 한창 리모델링 중이던 건물 곳곳에서는 새로 칠한 페인트 냄새가 났다. 건축 자재와 임시로 배치한 새 책상과 의자를 조심스럽게 지나치며 옛 의회동을 살펴봤다.
옛 의회동 1층에는 ‘안녕라운지’와 ‘모두 모임방’, ‘어린이 공간 콩콩콩’, ‘모두의 스튜디오’가 들어선다. 안녕라운지는 공유주방이다. 시민이 언제든 와서 음식을 만들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대전 사회혁신센터 박소영 팀장은 이곳에서 추후 비건 요리 교실을 운영하고, 시민끼리 레시피를 공유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두 모임방은 1번과 2번이 있다. 회의나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모두 모임방 2번 안에는 육각형 모양의 책상을 나란히 배치해 대형 세미나나 공론장을 열기 좋아 보였다. “저희가 공간을 기획하면서 대전 시민에게 지역에 어떤 공간이 가장 필요한지 물어봤는데, 회의할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답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회의할 수 있는 공간을 좀 넓게 마련했습니다.”
어린이 공간 콩콩콩은 이름처럼 어린이와 그 부모를 위한 공간이다. 박소영 팀장은 그동안 대전 사회혁신센터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의 참여자를 분석한 결과, 자녀를 둔 30~40대 여성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중에는 참여를 희망하지만, 아이를 돌보느라 참여하지 못하는 분도 많이 있었어요. 그런 분들이 자녀와 함께 와서 활동할 동안 아이는 이곳에서 놀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모두의 스튜디오는 영상 촬영과 녹음, 온라인 회의 공간이다. 벽에 흡음재를 설치해 연주도 할 수 있고 음향 장비 등도 사용할 수 있다. 의회동 가장 안쪽에는 대전 사회혁신센터 사무실이 있다.
모두에게 열린 공간
안녕라운지에서 나와 옛 선거관리워원회 건물을 찾았다. ‘모두의 작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공간이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2층으로 향하는 계단과 넓은 공간이 보인다. 1층의 넓은 공간은 ‘모두의 작업실’이다. 기둥 사이사이에 긴 책상을 놓고 창문과 마주 보도록 개인 좌석을 배치했다. 마치 카페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모두의 작업실은 코워킹 스페이스다. 개인 작업을 비롯해 도시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 모여 공동프로젝트를 하거나, 회의 및 모임도 가능하다. 창가 쪽에 고정한 책상 외에 다른 곳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바꿀 수 있도록 신경 써서 배치했다. 2층은 ‘작은 이야기방’이다. 다섯 개의 작은 회의실을 조성했다. 모두 모임방과는 달리 테이블이 방마다 분리돼 더 사적인 회의가 가능하다. 모든 회의실 대관은 무료다.
모두의 작당 왼쪽에 있는 옛 우체국 건물은 ‘모두의 서재’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곳을 옛 우체국이라 부르는 이유는 2012년 충남도청이 이전하기 전까지 관내우체국인 충남도청분국이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1981년에 대전우편국 관할로 이곳에 우체국이 생겼다고 한다. 건물 1층에는 아카이빙 책장을, 2층에는 공유 서가가 들어설 예정이다. 아카아빙 책장에는 그동안 커먼즈 필드 대전이 시민과 어떤 사전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조성할 계획이다. 출입구 반대편 화장실 쪽 벽에는 타일을 붙여놨다. 소통협력공간 사업이 선정된 후 대전 사회혁신센터에서 ‘대전을 그리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때 대전 시민이 각자 원하는 대전의 모습을 타일 위에 그렸다. 소통협력공간 개관식에서 아직 붙이지 않은 타일을 시민이 직접 붙이는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2층 계단 아래에는 작은 동굴 모양 공간이 있는데, 그림책 동굴이다. “아이들은 숨은 공간을 재밌어하잖아요.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 안에서 그림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공간을 따로 마련했어요. 편하게 벽에 기대거나 누워서 책을 볼 수 있게 하려고요.”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벽면을 채운 책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공유서가가 될 이곳은 리모델링하기 전부터 대전 시민에게 책을 추천 받았다. 개소식 이후 북토크와 함께 책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 예정이며, 추천받은 책은 따로 배치할 계획이다. “모두의 서가는 일반 도서관처럼 정숙한 느낌을 내고 싶지는 않아요. 책에 관해 토론도 하면서 떠들썩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추구합니다.”
옛 우체국 건물 옆에는 과거 무기고로 사용한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본래 2층짜리 건물이었으나, 내부 전체를 터 계단식 컨퍼런스룸을 만들었다. 이곳은 과거 군사정권 시대에 탄약과 무기를 보관하는 위압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나 열린 ‘모두의 공터’가 되었다. 모두의 공터에서는 큰 행사나 공연, 강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건물 바로 옆에는 지면 위에 나무 데크를 깔아 야외 공연이나 버스킹도 함께할 계획이다. “미술관에 가 보면 사람들이 계단에 그냥 앉아서 쉬기도 하고, 책도 읽으며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모두의 공터도 일상적으로 개방해서 사람들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게 하는 게 현재 계획입니다.”
사회혁신 활동의 구심점이 되도록
대전 소통협력공간이 지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명확하다. 지역 사회혁신 활동의 구심점 역할이다. 물리적인 공간이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인 곳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이야기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박소영 팀장은 소통협력공간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의 주체인 시민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곳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어떤 장면을 가장 먼저 보게 될지를 고민하면서 공간을 만들었어요. 이곳은 각자가 가진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호기심에 왔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그 사람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자신의 세상을 넓혀가도록요. 활동가들만 찾는 곳이 아니라, 예뻐서 들어왔다가 사회혁신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만들 거예요.”
글 사진 하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