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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줄기를 찾아가는 여정
학문의 줄기를 찾아가는 여정
대전인문예술포럼
직업의 쓸모
사회적 가치에 주목해서 직업을 재정의하면 좋겠다. 얘를 들어 기자는 신문, 잡이제 글 쓰는 사람이 아닌 지역 사회에 서로의 필요를 연결해 주는 사람, 갤러리 관장은 미술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역 예술가를 발굴하고 사회와 연결해 주는 사람 등으로 말이다. 그러면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게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하잘 것 같다. 사회가 변하면 정의도 변하기 마련이다.
교수는 대학에서 학문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국어사전 정의는 그렇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교수를 정의하기 아쉽다. 교수는 사회 변화를 읽고 현상을 정의하는 직업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학회와 포럼에 참여하며 각 전공 분야를 연구하는 일은 사회와 세상을 정의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사회에 교수가 필요한 이유는 정확한 현상 진단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가는 전력가다.
사회는 복잡해질수록 세분화된다. 세분화는 전문화를 뜻하지만 동시에 보편성을 획득해야 사회적 발전 기능을 다 할 수 있다. 2019년부터 매달 둘째 주 금요일마다 다양한 분야 교수진이 모여 학술회를 진행하는 곳이 있다. 대전인문예술포럼이다. 동양철학, 교육 연구, 경영 컨설턴트, 미술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 등 20여 명이 모였다. 코로나19 시기에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학술회를 진행했고 그 결과 2022년 4월 8일에 학술회 자유 발표문을 모아 『인문예술, 세계를 담다』란 책도 출판했다. 대전인문예술포럼은 대전 지역 유일의 공동주제 연구 학술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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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세계에서 찾아온 전문가
"학술회는 포럼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발표자가 40분 정도 연구 내용을 발표하면 그 후에 약 한 시간 넘게 질의 응답과 토롱 시간을 가지죠. 코로나19 때엔 그나마 온라인으로 모이니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시간을 맞춰 끝낼 수 있었지만 대면으로 모여 할 땐 시간을 넘기기 다반사였죠. 학술회 후 식사 자리에서도 토론이 이어자곤 했으니까요."
5월 10일. 한남대학교에서 대전인문예술포럼 구성원을 만날 수 있었다. 서원혁 교수, 김상철 박사, 서용모 교수다. 이들은 이번 『인문예술, 세계를 담다』에 각각「율곡 인성론에 바탕한 현대 인간상 고찰」, 「인성과 삶, 문화, 교육 간의 의미 고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묵가적 사고」란 제목으로 글을 실었다. 제목에서 보이듯 서로 전문 분야는 다르지만 매달 한 번씩 모여 생각을 나누는 것이 매우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지금껏 이어 왔다는 것 자체로 으미가 큰 것 같습니다. 각자 바쁘고 해야 할 것도 많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계속 모인다는 건 분명 그 안에서 서로 얻어가는 시너지가 크기 때문일 겁니다."
김상철 박사는 현재 진천군에 산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서도 한 시간 반을 달려왔다, 그의 모습에서 이 모임의 응집력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발표 후 어떤 질문이 들어올지 예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같은 분야에 있는 분들끼리 포럼을 진행하면 어떤 질문이 들어올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계신 분들과 함께 포럼을 진행하니 새로운 관점을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학술회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는 건 모든 이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서로 개성이 다른 사람이 모여 포럼을 원활하게 진행하려면 그 중심을 잡고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그 노하우에 대해선 모임 총무와 진행을 맡은 서원혁 교수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포럼 진행은 어렵죠. 모임 자체가 서로 다름을 기본적으로 이해하는 걸 기본으로 하지만, 독전이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거든요.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해서는 맞다 생각하는 것이 다른 분야에서는 다르다 생각되는 경우도 있죠.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거죠. 치열하게 공방도 합니다. 그럴 땐 중재하기도 하고 또 너무 말을 하지 않는 곳엔 발언 기회를 주는 식으로 균등하게 포럼이 이뤄질 수 있게 노력하고 있죠."
각 전공별 학회 분위기는 다르다. 철학 학회 같은 경우엔 남이 볼 땐 싸운다 생각할 정도로 치열하게 공방을 펼친다고 한다. 서로 다른 분위기 속에 있던 이들이 한군데에 모이니 서로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다양한 지식을 이해하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매 순간 포럼 참여가 학습이었죠.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각 분야 전문가가 발표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는 거예요. 모르는 지식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저는 원래 화학을 전공하다가 박사 학위는 경영으로 마쳤어요. 실험실 생활을 하면서 실험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실험실을 경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이처럼 다양한 학문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용모 교수는 또한, 인문학 위기는 인문학자들이 만든 부분도 있다면서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 지역과 학문의 경계를 허물며 이 학술회 내용이 지역 사회에 공유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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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들은 모이게 되었는가
“이 학술회를 만든 건 두 가지 이유였어요. 첫번째는 서로 전문가끼리 모여 공부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었죠. 하지만 모임을 지속하기 위해선 신선한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학문 분야와 함께하기로 한 것이죠. 또한 로컬리티 인문학을 정립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역에 있는 인문학자와 예술가들이 협력하는 거죠."
대전인문예술포럼 이하준 회장은 현재 모임을 만들기까지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이 포럼을 통해 나아가 대전 시민에게 수준 있는 인문 예술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도 학술회를 만든 목적이었다. 그가 『인문 예술, 세계를 담다』에 쓴 「예술 공론장, 공중 그리고 예술 대중」을 읽으면 그가 했던 고민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새로운 예술 공론장은 위홀의 <브릴로 상자>와 슈퍼마켓의 브릴로 상자, 올덴버그의 <침대>와 일반 침대의 차이를 예술의 눈으로 구분해내는, 비평적 시각을 갖춘 진정한 예술 대중을 예술계에 만들어 낼 잠재력이 있다."
여기서 새로운 예술 공론장은 소셜 커뮤니티다. 그는 소셜 커뮤니티가 과거 예술계, 공론장과 비교할 때 어마하게 확장되었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형식의 예술 공론장이 양질로 전환되려면 양적 성장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하준 회장은 지금이 자발성 원칙, 개방성 원칙에 입각한, 아래로부터 예술 민주주의 시작을 알리는 단초라고 해석했다. 다양한 학문이 모여 서로의 이해를 높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이 정제된 지식을 지역 주민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대중과 함께하기 위해 중구문화원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모임을 진행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실현하지 못했죠. 하지만 이제 다시 준비해서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대전인문예술포럼은 학술회에서 나눈 이야기를 꾸준히 책으로 엮을 예정이다. 또한 다시 지역 공동체와 함깨할 수 있는 시간도 기획해 볼 예정이다. 올해부터는 '좋은 노년의 인문사회학'이란 주제로 2023년 23월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사회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며서 느끼게 되는 것은 학문은 하나의 줄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철학적 사유에서 시작한다. 철학적 사유 결과로 교육 방법과 경영 방법이 나온다.
지역 문화 생태계를 만드는 것도 다양한 집단이 함께해야 한다. 예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지금, 지역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에 이론이 결합하는 중이다.
좌측부터 서원혁 교수(충남대) , 김상철 박사(한국교육개발원), 서용모 교수(배재대)
이하준 회장(한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