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토마토 178호 편집장 편지


편집장 편지

물 빠진

저수지를

들여다보다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제 5월입니다. 따사롭고 짧은 봄은 잘 보내고 계신지요? 월간 토마토는 이번 5월에 창간 15주년을 맞이합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15주년 관련 자세한 내용은 책 뒷부분에 '편집국 뉴스'를 확인해 주세요.

요즘 저는 혼란과 어지러움에 휩싸였습니다.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면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입니다. 아무래도, 지금 우리 사회를 감싼 최대 이슈는 새정부 취임을 앞두고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사고가 아닌가 합니다.

올해 20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취임을 준비하는 기간까지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어수선함'입니다. 충격적인 진실은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내기도 전에 다른 진실이나 거짓이 뒤덮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이 뒤섞여 본질을 희석하고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들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말이죠. 온갖 천박한 비난과 조롱이 이어졌고 분노와 좌절이 뒤섞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고질적으로 앓는 다양한 병폐를 이리도 적나라하게 드러낸 적은 지금껏 없었던 듯합니다. 마치 물을 뺀 저수지와 같습니다. 오랜 시간 물 아래, 혹은 뻘에 뒤덮여 있던 오만 가지 것들이 한 번에 드러난 상태와 유사합니다.

'경제 발전'이라는 달콤함에 빠져 제대로 보지 못했던, 오랫동안 쌓인 우리 사회 부조리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햇살이 저수지 수면 위에 내려 앉으며 반짝거리는 모습만 보고 '아름답다'라고 생각하다가 물 빠진 저수지에서 올라오는 악취를 맡고 끔찍한 쓰레기 더미를 눈 앞에 마주한 상황입니다.

이번 20대 대선은 우리 사회를 가득 채웠던 물을 뺀 선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애써 코를 틀어막고 눈을 질끈 감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불편해도 똑바로 직시해야 할 순간입니다. 다음 세상을 위해서 말이죠.

시민 영역에서 격렬한 논쟁이 불거지고 대안을 모색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면. 결코 상황이 절망적이지는 않습니다. 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 영역 말고 시민입니다. 시민은 분명 성장했습니다. 지금껏 시민 위에 군림했던 세력만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믿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이 빠진 저수지에는 새로운 물을 채워야 합니다. 드러난 쓰레기를 깨끗이 치우지 않은 채 물을 채우면 저수지는 다시 썩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치워야 합니다. 바야흐로, 우리 사회에 전환기가 제대로 도래한 것이 분명합니다. 저수지 아래 뻘밭에 드러난 쓰레기를 뒤적거리며 지나온 우리 시간을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개인과 특정 집단의 이익을 빼앗거나 지키기 위한 논쟁, 기존 상식에 사로잡힌 당위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필요 없습니다. 이제는 혁신의 시간입니다.

혁신의 시간을 맞이한 대한민국에서 우선 눈길을 주어야 할 곳이 '지역'입니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수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 관심사에서 '지역'은 쏙 빠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고전적인 미디어는 물론이고 트위터, 유튜브 등 새롭게 미디어 역할을 하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는 곳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 지역은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간혹 영화에서 망가진 지구를 버리고 떠나기 위해 외계 행성을 찾아나서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지역'은 바로 그 '지구 말고 다른 외계 행성'입니다. 지금 지역은 대안을 모색하고 실행하며 새로운 미래를 구현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이 먼저 이런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유와 자부심을 가지고 대한민국 사회가 지금껏 저지른 실수를 바로 잡으며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돌아오는 6월 1일 지방선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제 지역은 대한민국의 '희망과 대안 공간' 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22년 4월 24일

월간 토마토 편집장 이용원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