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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3호] 옛 충남경찰청 상무관
<기록_ 옛 충남경찰청 상무관>
무덕전, 상무관에 이어 시민의 별채로
그곳이라면 한없이 불경해지고 싶다
글 이용원
상무관 건물이 보이는 1960년대 사진
옛 상무관 내부모습
1.
대전 중구 선화동 옛 충남도청 건물 좌측에는 옛 충남경찰청 건물이 있다. 두 기관 모두 대전이 아닌 충남으로 떠났다. 이후 옛 충남도청 공간은 대전시가 임대해 계속 사용했지만, 옛 충남경찰청은 그냥 비워두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건물은 칙칙하니 을씨년스럽다. 사람 온기를 받지 못한 건물은 더 빨리 낡고 부서진다는 어른들 말씀이 딱 맞는다. 건물은 버려두었지만, 옅은 흔적으로 남은 주차장을 여전히 사용하는 터라 늘 자동차가 빼곡하다. 더는 사용하지 않아, 아픈 사람 낯빛으로 변한 탁한 건물과 자동차가 어우러진 그 풍광이 무척 그로테스크하다.
대한민국 기획재정부는 지난 2019년 8월, 옛 충남경찰청 터에 정부 통합청사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2023년 말 완공할 계획이다. 국유재산기금개발사업으로 총사업비 720억 원을 들이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대전중부경찰서, 대전세무서, 대전지방교정청, 위치추적대전관제센터가 입주할 예정이다. 지난 2020년 10월 조달청에서 중간설계 적정성 검토도 완료했다. 현재 계획은 2021년 5월 착공이다.
이 사업은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가 맡아 진행한다. 대전광역시와 한국자산관리공사는 2020년 12월 3일, 대전통합청사 신축 사업을 포함한 ‘대전 원도심 재생 및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옛 충남경찰청 건물과 부속 건물은 나라키움 대전통합청사 신축 사업을 진행하며 모두 철거한다. 다만, 옛 상무관 건물은 남겨둘 계획이다. 2019년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조감도와 지난해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공개한 조감도에도 옛 상무관 건물은 남았다. 이 옛 상무관 건물은 대전시가 활용할 계획이다. 2020년 12월 대전시와 대한민국 경찰청은 상무관 사용에 관한 승인 절차도 마무리했다.
경찰청으로부터 옛 상무관 사용 승인을 받은 대전시는 건물에 ‘시민의 별채’라는 새 이름을 부여했다. 대전사회적자본지원센터는 올해 1월 ‘옛 충남경찰청 상무관 시민의 별채 조성사업’ 공고를 냈다. ‘시민의 별채 조성사업’ 공모에서 제시한 사업 목적을 보면, 옛 상무관은 리모델링을 통해 시민 개방형 공유와 쉼의 공간으로 시민이 사용 주체인 오픈형 시민 홀(hall)로 조성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시민의 별채 조성 공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2.
충남경찰청이 유도와 검도 등 무술을 연마하거나 체력단련실로 활용한 옛 상무관은 일제강점기 무덕전이 있던 터에 지은 건물이다. 터를 놓고 보면 그 뿌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국가기록원 자료를 살펴보면, 무덕전(武德殿)은 1895년 무도 교육을 통한 국민의식 일치화를 목적으로 일본에서 설립한 대일본무덕회의 연무장에 붙인 이름이다. 당시 청일 전쟁 등을 일으킨 일본이 군국주의를 더욱 강화하면서 무도를 통해 국민 의식을 일체화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본 군부와 경찰을 중심으로 대일본무덕회를 만들어 일본 전국 무도 단체를 산하에 통합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대일본무도회는 우리나라에 지방본부를 설치하며 전국에 무덕전 건립을 추진한다. 당시, 신문 자료를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서비스를 통해 찾아보면 무덕전(관)을 짓기 위한 성금 모금 운동이나 상량식, 준공식 기사는 물론이고 이곳에서 열린 각종 무도대회와 집회 기사를 볼 수 있다. 무덕전은 중요한 관급 시설이었던 셈이다. 이중 충남경찰청 옛 상무관 자리에 있던 충남 무덕전 관련 기사도 확인할 수 있다. 충남 무덕전 건립과 관련한 기사는 모두 1933년에 보도한 기사다. 5월 11일 자 부산일보에는 5월 14일 충남 무덕전 건립 입찰을 진행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9월 22일 자 매일신보에는 충남 무덕전 입주식을 거행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여기서 말하는 입주식은 건물을 지을 때 목재를 다듬어 재목을 만드는 치목을 끝내고 첫 기둥을 세우는 날 거행하는 의식이다. 이어 같은 신문 10월 11일 자에는 충남 무덕전 상량식을 거행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12월 28일 자에는 12월 23일에 충남 무덕전 준공식이 열렸다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옛날 신문 기사를 정리하면, 충남 무덕전은 1933년 5월 14일 입찰을 진행해 12월 23일 준공식을 가진 셈이다. 충남 무덕전 외관에 관한 사진도 비교적 잘 남았다. 2013년 10월에 대전시가 편찬한 ‘모던대전_근대 사진엽서로 보는 100년 전 대전’이라는 책자에서 선명한 사진을 볼 수 있다. 바닥에서 높여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건축물을 올렸다. 전체적인 모습은 왠지 위압감을 준다. 무덕전 내부를 어떻게 구성했는지는 비슷한 시기 청주에 건립한 충북 무덕전을 참고할 수 있을 듯하다. 찾아볼 수 있는 무덕관 건축 도면 중 유일한 자료다. 국가기록원에서 보관 중인 설계도면을 받았다. 충북 무덕전은 가로 36.36m, 세로 15.76m로 전체 건축면적은 573㎡(165.37평) 정도였다.
1963년 옛 무덕전 기초 위에 건축한 것으로 알려진 옛 상무관 건축면적이 158평 규모니, 충남 무덕관과 충북 무덕관의 크기는 엇비슷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바닥에서 띄워 기단을 설치한 모습도 똑같다. 다만 지붕 부분에서 보여주는 웅장함은 충남 무덕전이 더 육중한 느낌이다. 충북 무덕전이 층고가 높은 체육관처럼 보인다면 충남 무덕전은 중층 목조 건축물과 유사하다. 무량사 극락전처럼 말이다. 이런 점이 충북 무덕전은 체육 시설로 보이지만 충남 무덕전은 종교 시설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충북 무덕전 설계 도면에 나타난 내부 구성을 살펴보면 지붕을 뺀 한쪽 벽체가 대략 7.7m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전체 건물 높이는 10m 정도였던 것으로 국가기록원은 분석했다. 건물 중앙부 도장 부분은 112평 크기로 기둥이 없어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건물 장축의 정면 주 출입구로 들어섰을 때 왼쪽(건물 오른쪽)에 무대를 설치했다. 무대 양쪽으로는 내빈실을 두었다. 무대 오른쪽 내빈실에서는 무대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출입구를 설치했다. 양쪽 내빈실은 무대 뒤편으로 폭 1.8m 복도로 연결했다. 무대 맞은편으로는 측면 출입구와 로비를 만들고 로비 좌우로 사무실과 대기실을 두었다. 대기실에는 다다미를 깔도록 설계했다. 국립기록원은 이 도면을 설명하면서 무대에서 행사를 개최할 때를 고려해 무대 맞은편 짧은 측면에 출입구를 설계한 것으로 분석했다.
매일신보에서 찾은 1933년 12월 28일 자 ‘충남무덕전 준공식’ 기사에는 사진 한 장이 함께 실렸다. 무덕전 내부 공간에 짧은 머리 사내 수십 명이 마치 머리를 조아리고 앉은 것처럼 보인다. 충북 무덕전 설계도면에서 유추하면 정문 현관 정맞은편이다. 국가기록원은 이 공간을 감실로 해석했다. 감실은 사당 안에서 신주를 모셔 두는 장이다. 혹은 성당 안에 성체를 모시는 곳이다. 충북 무덕전 도면을 살펴볼 때 다른 공간과 달리 바깥으로 미닫이문을 설치하고 내부에 홍송(紅松)과 장식철물 등 고급 재료를 사용한 벽장을 두는 등 무대보다 훨씬 권위적인 공간을 창출했다고 국가기록원은 설명한다. 다만, 사진에 나타나는 충남 무덕전에 해당 부분은 충북 무덕전과 달리 바깥쪽이 아닌 건물 안쪽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계단을 설치해 바닥보다 높은 단을 만들었다. 마치 신주를 모실 것처럼 보인다. 무덕관과 무덕전을 혼용해 사용하는 것도 이 공간이 지닌 특징을 보여준다. 무술을 연마하는 도장이나 무대만을 놓고 보면 관(館)이 어울린다. 전(殿)은 주로 특별한 의식을 치르는 공간에 더 어울린다. 이 두 개 특징을 보여주는 내부 시설이 무대와 도장, 그리고 감실이다. 일본이 강점 과정에서 무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하려 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충북 무덕전 도면을 좀 더 살펴보면, 무대 쪽과 맞은편 사무실 공간 쪽에는 계단을 설치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내빈실에서 2층으로 올라가면 예비실을 두었고 무대 위로는 다락처럼 만들어 무대에 필요한 조명실을 설치했다. 반대편 사무실 위로는 벽체를 설치하지 않고 통으로 공간을 구성했다. 무대 쪽으로 난 작은 창과 영사실(映寫室)이라고 적은 곳을 볼 때 행사 특성에 따라 무대 쪽을 살피거나 영사 시설을 갖추고 활용할 수 있었다.
무덕전은 일제강점기에 군인과 경찰을 중심으로 무술을 수련하는 곳으로 사용하고 무술 경기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거나 때로는 제의식도 올리는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구(군)민체육관을 짓는 것처럼 일제강점기 일본은 무덕전(관)을 그렇게 우리 땅 곳곳에 건립했고 그것은 식민통치의 위압적 상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하 내용 후략
본 기사는 월간토마토 163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