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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9호] 자유로운 예술에 날개를 달아 주기
자유로운 예술에
날개를 달아 주기
미술관 담다
길을 걷다 미술을 담다
8월 1일. 대전 중동 인쇄거리에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담다’라는 이름을 가진 미술관은 수협은행 대전지점 건물 옆에 자리 잡았다. 미술관으로 올라가는 입구는 나무 살을 하얗게 칠해 꾸몄다. 커다란 간판을 올린 건물들 틈에 하얀 간판을 건 미술관이라 눈에 잘 띈다. 무심코 길을 걷다가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예쁜 입구다. 미술관은 2층에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 복도에 무인 커피숍이 보인다. 자판기에서 원하는 커피 캡슐을 골라 직접 커피를 만들 수 있다. 미술관은 입장료 없이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하지만 1인 1잔을 권한다는 글도 볼 수 있다. 커피는 유료다.
현재 «따로 또 같이: 집 앞으로 배달되는 문화예술»이란 이름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전시한 작품은 ‘아파티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한 작품이다. 아파티스트는 ‘아파트’와 ‘아티스트’의 합성어로 아파트 주민과 함께하는 생활예술 프로그램이다. 이번 전시 작품은 모두 아파트 주민이 만든 작품이다. 자기 자신을 작은 상자 안에 표현한 콜라주 작품도 있고, 아파트에서 발견한 풀꽃을 그린 그림도 있다. 작품은 각자의 솔직함이 묻어난다. 특히 ‹색, 그리고 기억의 추상화›란 작품을 모아 둔 방이 인상적이다. 색깔마다 떠오른 추억과 생각을 작은 종이에 그리고 썼다. 빨간색엔 립스틱을, 노란색엔 유치원 때 썼던 색연 필에 그려진 병아리를 떠올린 작품도 있다. 자신의 기억을 솔직히 표현한 작품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음날, 다시 미술관 담다를 찾았다. 미술관 운영과 아파티스트 프로그램 을 운영하는 블루플레임인아트 박순용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예술에 날개를 달아 주기
“4년 동안 팀을 운영하다 보니 우리가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단체는 공간이 없으면 힘을 모을 수 없다 생각했어요. 또 청년 예술가들에게 자유로운 작품 전시 공간을 열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미술관 담다는 이렇게 청년 예술가들과 생활예술가들이 만나고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곳입니다.”
청년 예술가는 하고 싶은 말이 있고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아야 할 때가 있다. 파격적인 주제는 미술관에서 거부하기도 한다. 공모 사업에 지원하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 심사위원이 원하는 말을 해야 할 때도 있다. 한 없이 자유로울 것 같은 예술도 계속되기 위해선 날개를 잠시 감춰야 한다. 박순용 대표는 미술관 담다를 통해 청년 예술가가 자유롭게 작품 전시를 할 수 있도록 한다. 그것은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의 결과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로 다원적 사고가 만연하다. 예술 작품은 작가 내면과 함께 살펴봐야 하며 모든 작품은 아름답다고 여긴다. 미술관에 가면 난해한 작품 앞에 서서 이해하려 애쓰는 일이 많다. 하지만 정말 ‘절대적인 미’는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박순용 대표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여기 창가에 놓인 꽃을 보고 경멸하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없어요. 또 미술관 작품 중 아름답다 느끼는 작품은 다른 관람객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모두가 즐길 수 있고 모두가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존재한다고 믿어요. 우린 절대적 아름다움이 있다고 결론을 짓고 그 이유를 찾는 거죠.”
그가 말하는 ‘절대적 아름다움’은 모든 작가가 다른 의견을 말할 자유를 준다. 다원적 사고가 만연해지자 주류적 사고에 반대하는 것은 시대에 뒤쳐진 것으로 여긴다. 가치 판단의 기준이 없다 보니 다수 의견이 정의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절대적 아름다움’은 가치 판단 기준이 되어 오히려 작가 개인의 의견을 끝까지 밀고 나갈 힘이 된다.
“예술은 내 의견을 말하는 거라 생각해요. 하고 싶은 말하며 표현할 수 있 게 이 공간을 만들었어요.”
미술관 담다는 비교적 저렴하게 작품 전시를 할 수 있다. 하얗게 칠한 넓은 공간과 작은 방도 두 개나 있어 그림 작품부터 미디어 아트까지 전시가 가능하다. 미술관 창가 쪽엔 카페처럼 창 밖을 바라보며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가끔 이곳에 앉아 그림 그리거나 개인 작업 하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인쇄거리에 좋은 갤러리 카페 하나 생긴 기분이다.
일상 속 예술을 발견하다
“지역 내 예술 시장은 이미 기성 작가들로 포화 상태예요. 청년 예술가들은 두 가지가 없죠. 돈과 인지도가 없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보겠다 생각했어요.”
블루플레임인아트는 청년 예술가들 모임이다. 처음엔 5명으로 시작한 단체는 4년이 지난 지금 예술가 25명이 함께한다. 청년 예술가들은 작품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편의점이나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버는 일이 많다. 블루플레임인아트는 예술 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아파트에서 찾았다. 도심 속 아파트는 그저 일하고 들어와 쉬는 침실처럼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하루 종일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주민도 많다. 아파트는 도시민의 일상이 지속되는 공간이다. 이런 아파트에서 창의적인 추억을 만들자는 것이 아파티스트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일상 속 예술을 즐기고 싶은 주민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파트 단지 내 아이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아파트 산책길을 탐방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파트 단지 담배꽁초가 많이 버려진 공터를 청소하고 화단을 만들기도 했어요. 가장 재미있던 것 중 하나는 아파트에서 캠핑한 것이에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죠. 또 여러 활동한 결과를 모아 아파트에서 발표회를 하기도 했죠.”
아파티스트 프로그램이 특별한 점은 주민이 모여 그림을 그리고 추억을 나누는 일을 통해 작은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아파트 주민자치회도 못 모으는 주민을 아파티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모을 수 있다. 함께 살아가는 공간의 문제를 발견하고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이 아파티스트 프로그램 중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공동체는 힘이 있다. 그 힘을 모으는 일을 청년 예술가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지역 내 청년 예술가가 기성세대와는 또 다른 방법으로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글.사진 황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