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159호] 생존지는 진화한다
'생존지는 진화한다'
2020 금강자미술비엔날레
"신섞기시대_또 다른 조우"
1.
긴 장마탓에 아직 완성하지 못한 작품을 만났다. 작가가 작업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건, 또다른 행운이었다.
서기 2200년, 연미산 숲속에서 발견한 '노아의 방주'가 거대한 형체를 드러냈다. 이경호, 엘라, 장태산, 조상철 작가가 활동하는 UStudio 작품 <"노아의 방주" 오래된 미래, 서기 2200년 어느날...>이다.
인간이 21세기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2150년 좌초한 방주 형태의 배를, 50년이 지난 2200년에 연미산 꼭대기에서 발견한 상황을 표현했다. 90%는 땅속에 묻혔고 위로 삐죽이 올라온 것은 방주 앞부분이다.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작가 상상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태풍이 계속 올라오는 상황이었다. 현장을 찾은 날은 태풍 마이삭이 막 지나가고 태풍 하이선이 올라오던, 9월 4일 금요일이었다. 그날은 오랜만에 반가운 햇살이 잠깐 내리쬐었다. 연미산 꼭대기에서 만난 UStudio 작품이 더욱 현실처럼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빌드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장태산 작가, 조상철 작가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2020’이 열리는 공주 연미산 숲속에서 한창 방주를 만드는 중이었다. 장태산 작가 곁에는 반려견인 삽살개 경호가 함께했다. 아직 총각이라는 아홉 살 경호는 작업 중인 방주 아래 앉았다가 낯선 사람이 다가오자 얼른 다가와 몸을 기댔다. 붙임성이 좋고 순한 친구였다.
숲속에서 나무로 작업하는 작가 모습은 그 자체로 행위 예술이었다. 삽살개 경호도 작품 일부인 양 자연스러웠다. 언뜻 보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숲속에서 발견한 방주를 해체하며 인류가 저지른 실수를 되짚어 보는 발굴 현장 같았다. 숲속이어서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은 모양이다.
관람객이 비엔날레 기간에 작가가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기획하는 것도, 작가만 동의한다면 나쁘지 않겠다. 이곳을 자주 찾으면 작가가 작업하는 모습을 볼수 있는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작년에 연 미산자연미술공원을 찾았을 때, 중국에서 온 양린 작가가 센터 앞 공터에서 열심히 당나귀를 조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II›라는 제목을 단 그의 작품을 1년이 지나 이번 비엔날레에서 볼 수 있었다. 하나의 몸통을 공유하는 당나귀두 마리다. 당나귀 머리 부분은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이 작품은 ‹“노아의 방주”...› 아래에 있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는 처음 참가합니다. 자연과 이런식으로 콜라보 할 수 있는 경험을 쉽게 할 수 없잖아요. 작품을 팔아야 할 것도 아니니, 욕심을 낼 필요도 없고요. 어떤 부분은 인간 의지와 무관하게 자연에 고스란히 맡길 수밖에 없어요. 자연미술 영역이 가진 매력인 거 같아요.”
해맑은 웃음을 가진 장태산 작가 얘기다. ‘자연과 콜라보’라는 말로 금강자연미술비엔 날레가 갖는 특징을 요약했다.
2.
연미산에서 펼쳐진 자연미술 작품이 자연과 어떻게 콜라보를 이루는지는 두 해만 현장을 찾으면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매력적인 이유는 작품을 쉽게 철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 갤러리 기획전처럼 설정한 전시 기간이 끝났다고 작품을 만날 수 없는 건 아니다. 비엔날레 뿐만 아니라 자연미술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레지던시 등에 참여한 작가가 창작한 작품은, 그곳에 남는다.
작가가 설치를 끝내고 손을 턴 뒤에도 자연은 작업을 계속 이어 간다. 씨를 뿌려 작품 안에서 식물이 자라게 하고, 바람을 보내 작품 한쪽을 허물기도 한다. 나무를 재료로 사용한 작품에는 수분과 숲속 생물이 시간을 등에 업고 색과 형태에 변형을 가한다. 이 모든 건 인간이 손을 뗀 뒤, 콜라보한 자연이 작품에 가한 조화다. 공주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을 찾는 일은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지난 작품을 다시 만나 변화를 확인하는 기쁨도 있다. 예전에 본 작품이지만, 똑같은 작품이 아니다.
공원 초입에서 만난 ‹풍장›이라는 작품이 주는 임팩트는 이런 측면에서 강렬했다. 2016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 참여한 김용익 작가 작품이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생각할 나이가 된 김 작가는 “자기 흔적이 담긴 책과 팸플릿 등 을 야외에 매달아 비바람 눈서리에 서서히 썩게 만드는, 이른바 ‘풍장風葬’을 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4년째 나무에 매달려 서서히 썩어 가는 그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예년에 도드라지게 눈에 띄던 작품은 어느새 주변 나무와 땅 등 풍경에 녹아들며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작품 앞에 머물며 지구 위 모든 생물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소멸’에 관한 생각을 한다. 지구 위에 뿌려 둔 흔적을 지우고 잘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방법을 말이다.
여전히 변화하는 인상적인 다른 작품 하나는, 2018년 금강자연미술비엔날 레전시작이었던 ‹렛잇비Let it Bee, 창의적 수분 스튜디오: 지식 공간을 시도하다›이다. 작가는 이탈리아 사람 스테파노 데보티다. ‘사이언스 월든’이라는, 과학과 예술 융합 장기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울산과학기술원이 함께한 특별전 작품이었다.
작품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의 핵심은 ‘꿀벌’이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사라진다’ 라는 이야기가 있다. 생태적으로 꿀벌이 갖는 이런 상징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보면 이해가 쉽다. ‘숲속의 은신처’라는 주제로 진행한 2018년 금강 자연미술비엔날레에서도 이 작품은 도드라졌다. ‘숲속의 은신처’라는 전시 주제 덕분에, 연미산은 어떤 이유에서 멸망한 지구에서 마지막 생존자들 이 숲속에 삶터를 구축해 둔 것처럼 보였다. 사용 할 수 있는 자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지은 수많은 셸터Shelter(은신처) 때문이었다. 그 속에서 이 작품 ‹렛잇비›는 인류가 과거를 반성하고, 자연으로부터 배운 삶의 방식을 통해 지속가능한 삶을 연구하는 일종의 연구소 같은 느낌이었다.
작품 설치 2년이 흐른 후 벌통 한 개에서 여전히 벌이 왕성한 활동 중이었다. 벌통 입구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영역을 침입 한 말벌 두 마리를 막아 내기 위해 꿀벌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보았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참 동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2년 전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작품이 다가왔다. 살아 있는 꿀벌이 수년 간 삶을 이어 가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분명 색다른 경험이다. 자연적으로 벌이 날아들어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자연과 함께 만든 결과물이다.
인간과 자연이 콜라보해 작품을 만든다는 게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하 중략
글.사진 이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