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9호] 예술 영역에 ‘언택트’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예술 영역에 '언택트'는

동의 할 수 없습니다

편집장 편지


  2007년, «월간 토마토»를 창간할 때부터 우리는 '문화예술잡지'라는 정체성을 표방했습니다. 명확하게 예술 영역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콘텐츠도 다루다 보니, '문화'라는 애매모호하고 무척 광범위한 개념을 슬쩍 붙였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중요하게 여긴 영역은 분명 '예술'이었습니다.

  «월간 토마토»를 창간할 당시 이 세상은, 유행가 가사처럼 '조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힘은 '예술'에서 나온다고 여겼습니다. 창작하는 행위와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가 무엇일지 고민한 결과였습니다.

  예술이 다루는 주제는 무척 다양합니다. 삶과 죽음, 사랑과 질투,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죄와 벌, 본능과 이성, 자연과 우주 등 사고가 닿을 수 있는 모든 것은 예술이 다루는 대상입니다. 한계는 없습니다. 이런 대상을 깊게 사유한다는 것이 인간 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 중 예술가는 전문적으로 사유하고 이를 작품이라는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부류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들이 세상에 내놓은 작품을 감상하며 마땅히 해야 할 사유를 잊지 않고 진행합니다. 이런 탄탄한 사유는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이런 특성이 예술 영역을 준공공재로 대하면서 다양한 공적 자금을 투여하는 것에 정당한 논거를 제공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얼마나 적절한 예술가가 창작 활동을 벌이고 얼마나 많은 시민이 일상적으로 이 를 감상하는가'는 그 사회 건강성을 측정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이 척도를 우리 사회에 대보면 그리 만족할 만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바쁜 일상에 내몰리며 사유할 시간이 점점 줄어든 것이 지금 우리가 겪는 다양한 비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짧은 시간 압축 성장을 하며 우리 사회 많은 영역의 생태계가 망가지고 교란되었지만, 그중 예술 생태계는 최악입니다.

  정부는 '문화 도시'라는 말을 만들어 공모를 진행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여합니다. 정부가 '문화 도시'지원사업을 진행하는 의도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어휘로서 '문화 도시'를 이해하면 '교양과 품격이 있는 도시'입니다. 정글처럼 약육 강식 논리에 의해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부의 축적만을 위해 내달리는 천박한 도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간다움'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도시 말입니다. 그것이 문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예술'이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인간다운, 진지한 사유'를 촉발하는 촉매제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159호 «월간 토마토»는 대전을 비롯해 전국에서 펼쳐지는 미술 비엔날레를 다루었습니다. 이웃 공주와 멀리 떨어진 부산, 창원에서 다양한 주제로 열리는 비엔날레입니다. 대부분 지역에서 코로나19 여파로 비엔날레 행사를 계획한 대로 열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19 시대에 '예술은 어떻게 수용자와 만나야 하는지' 를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양한 배달 서비스나 SNS 네트워크 강화 등으로 '언택트Untact'라는 신조어가 생 겼는데, 코로나19 상황을 맞으며 당연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인식하는 건 아닌지 두렵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지 않는 것이 새로운 상식일 수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해결 방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시대를 읽지 못하는 뒤떨어진 사고 방식일 수도 있지만, 언택트 상황을 인정하고 이를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보다는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직접 만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더 많은 비용과 에너지를 투여했으면 좋겠습니다. 더군다나, 예술 영역에서 작품과 수용자 사이에는 어떤 필터도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시민이 예술가가 창작한 작품을 언택트 상황에서 필터를 거쳐 감상할 수 있는 방안보다는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프로세스나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159호 «월간 토마토» 지면을 통해 먼저 비엔날레를 만나시는 독자 여러분이 향후에 현장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2020년 9월 20일 월간 토마토 편집장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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