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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2호] LAB2050, '국민기본소득제'를 외치다
LAB2050,
'국민기본소득제'를
외치다
국민기본소득제
LAB2050(대표 이원재)이 지난 10월 28일 ‘국민기본소득제’ 시행 모델을 담은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제도에 관한 철학적 고찰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실행 모델을 제시해 더욱 관심을 두었다. 이 보고서는 홈페이지에 접속해 회원 가입을 하면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3대 경제 정책으로 제시한 것이 ‘혁신 성장’, ‘공정 경제’, ‘소득 주도 성장’이었다. 공교롭게도 국민기본소득제는 이 세 가지 경제 정책 핵심 이슈를 모두 담았다. 혁신적이며 공정하고 국민 소득을 끌어올려 경제 활력을 되찾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3대 경제 정책을 시행하며 기본소득제를 염두에 둔 건 아니다. 국민기본소득제는 문재인 정부가 시행해 강한 저항에 부딪혀 좌초하다시피 한 최저임금 인상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배 불평등을 일으킬 소지가 매우 큰 일자리안정자금 제도보다 훨씬 혁신적이고 공정하며 현실적이다.
지금 시행하거나 논의가 진행 중인 이런저런 청년수당이나 농민기본수당, 예술인 복지 정책에서 지급하는 수당 등 선별적이고 제한적인 정책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 정책으로서 국민기본소득제를 논의해 볼 가치와 타당성이 충분하다. 이번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LAB2050은 2021년, 2023년, 2028년 국민기본소득제 시행을 상정하고 각 시점에 국민 한 사람당 최소 30만 원부터 최대 65만 원까지 월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안을 두 개씩 적용해 총 여섯 개 모델을 제시했다. 이에 필요한 재원은 2021년 가장 적은 30만 원을 지급할 때 187조 원, 2028년 가장 많은 65만 원씩 지급할 때 405조 원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했다.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는다.
기본소득에 필요한 엄청난 재원은 어떻게
LAB2050이 밝힌 국민기본소득제 재원 확보 방안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세금이 지닌 본령인 누진성을 강화해 비과세 혹은 감면 제도를 정비하면 필요한 재원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 당연히 소득자가 지금보다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난다. 대신, 국민기본소득을 매월 받기 때문에 실제 연 소득은 떨어지지 않는다. 이 기준선이 2021년 월 30만 원 지급 시나리오에서 연 소득 4,700만 원이다. 연 소득 4,700만 원은 소득자 상위 28% 선이고 무소득자를 포함한 성인 인구 중 상위 15%, 국민 전체 상위 12% 선에 해당한다. LAB2050 측이 국세청에서 확보한 2012년~2017년까지 통합소득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한 2021년 미래 통합 소득 기준이다. 그러니, 재원 확보를 위해 국민에게 ‘세금 폭탄’을 떨어뜨린다는 악의적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된다. 현실에서 세금을 폭탄 수준으로 맞는 국민은 정말 극소수다.(《코끼리는 생각하지마》_조지레이코프_와이즈베리)
세금을 더 내고 기본소득을 받는 것이 손해인지 이익인지를 나누는 기준선을 개인이 아닌 가구 소득으로 적용해 분석하면, 이익을 보는 범위는 더욱 확대된다. 경제활동 여부, 인종, 나이, 성별 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지급하는 기본소득 특성 때문이다. 손익 기준선은 2인 가구 기준으로 9,400만 원, 3인 가구 1억 4,100만 원, 4인 가구 1억 8,800만 원으로 늘어난다. 외벌이 1인 소득이 연 1억 원인 4인 가구(부부와 미취학 두 자녀)를 기준으로 검토한 결과 비과세 감면 혜택 등이 줄어 소득자 본인 세금은 올라도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나머지 가구 구성원 세 명과 본인에게 월 30만 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때문에 연 가구 소득은 오히려 353만 원 늘어나는 결과를 보였다. 세금 제도 누진성을 강화해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은 국민 대다수에게 수익 감소라는 피해를 주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설명한다. 설득력 있다. 이런 예측은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면서 일부 복지정책 폐지나 축소를 통해 재원을 확보한다는 측면도 적용해서 검토한 결과다.
이외에 LAB2050은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복지 정책과 세금 제도 등을 통해 필요 예산을 확보하고 기금 및 특별회계 정비 등 재정 구조조정과 유휴 및 신규 재원 활용 방법으로 시점별 필요한 기본소득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에 급격한 노동환경 및 가치 변화와 저출산 고령 사회 진입 등에 따라 펼치는 정부의 실효성 떨어지는 정책 사업 예산과 이 예산을 기획하고 집행하기 위해 투여하는 행정 비용까지 정리한다면 단언컨대 LAB2050이 분석한 재정보다 훨씬 많은 예산 확보가 가능하리라 본다. 어쩌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본격적으로 예측해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번 LAB2050 보고서가 제시한 모델을 상회하는 기본소득을 지급할 재정 여력을 확보할 수도 있다.
기본소득제를 왜 해야 하는데
무리 없이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면, 남은 문제는 국민기본소득제를 시행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에서 점점 불평등 구조가 굳어지고 활력이 떨어지는 문제의 근본에는 낡은 분배 구조가 있다. 경제 구조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근본적으로 변화했지만 분배 구조는 그대로다. 최근 밀려드는 기술 변화와 국제 환경 변화 속에서 이 괴리는 사회문제를 더 커지게 만든다. 분배체계 변화에 있어서 핵심은 ‘한국사회에서 역동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이다. 그 전제 조건은 국민 개인의 경제적 안정이다.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국민기본소득은 그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임금이나 사업 소득이 1차 분배, 사회복지급여가 2차 분배라면, 국민기본소득은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일원인 이상 보장되는 ‘0차 분배’다.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기여해서 모두를 위해 안정성을 만드는 것이다.”
LAB2050 이원재 대표가 보고서 관련 기사에 붙은 온갖 악플을 종합 분석해 답변하고 선플을 해석한 후 블로그에 올린 글 말미에 덧붙인 얘기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교육·환경·노인·저출산·범죄 등 모든 문제는 공정하지 않은 ‘분배’라는 영역으로 수렴한다. ‘공정하지 않은 분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드러난 현상만 보며 개별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복잡하게 얽혔다. 현 정부도 이를 고려해 ‘혁신, 공정, 소득 주도’라는 열쇳말로 3대 경제 정책을 제시한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기획하고 선별해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다. 다양성을 고려하기 어려운 행정 행위에 특성을 고려할 때, 공공이 직접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혁신성과 역동성을 오히려 말살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LAB2050 측은 국민기본소득제가 재분배 효과가 높고 사각지대가 없으며 행정비용을 최소하고 민간 소비를 확대하리라 예측했다. 또 자유 노동을 안정시키고 촉진할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이 점이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한 선별복지, 아동 수당이나 기초연금처럼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조건 없는 사회수당, 근로장려세제와 같은 음의 소득세보다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이럴진대 망설일 필요가 없다.
사회 모든 분야에 혁신과 대안이 필요한 시대다. 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더 많은 시민이 상상하고 꿈꿀 수 있어야 한다. 국민기본소득제는 불평등한 분배 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이면서 사회 구성원이 상상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내는 유효한 방법일 수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 공동으로 진행할 수 있는 혁신활동은 이제 ‘국민기본소득제 논의’다.
글 이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