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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2호] 삶의 방식 바꾸는 공원을 상상하다
삶의 방식 바꾸는
공원을 상상하다
둔산 센트럴파크 조성사업
먼저 근처의 공원을 떠올린다. 여유롭게 쉬고 싶을 때 그곳에서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본다.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거나 잔디밭에 앉아 샌드위치 따위를 먹는 건 어쩐지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 존재하는 풍경 같다. 우리 중 상당수는 이미 뉴욕 센트럴파크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센트럴파크는 뉴욕의 상징이자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시공원이다.
대전시가 둔산 센트럴파크 조성을 추진한다. 민선7기 핵심 사업 중 하나로, 둔산 택지개발사업으로 만든 근린공원 다수의 이용성 증대, 기존의 단절된 녹지축 연결, 공동체 활동 거점 형성 등을 추진한다. 대전세종연구원이 기본계획 수립용역을 수행 중이며 지난 7월과 10월에 중간보고회를 거쳤다. 대전시는 지난 11월 21일 기자들을 대상으로 둔산 센트럴파크 현장 순회 설명회를 열었다.
둔산 센트럴파크 조성사업 대상지의 근린공원
활용성 떨어지던 근린공원, 다시 시민에게
둔산 센트럴파크 조성사업은 시민 체감 공원 조성, 일상적 공간 활용 촉진, 기후변화 대응을 목표로 하며 2020년부터 2029년까지 진행한다. 둔산 도심 지역 근린공원과 주변 일대 약 1,253,850㎡를 대상으로 한다.
남북축으로는 보라매공원~자연마당~둔산대공원~갑천~우성이산, 동서축은 유등천~샘머리공원~갈마근린공원을 포함한다. 개략사업비 약 380억 원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
둔산 지역은 1980년대까지 공군비행장이었다. 1985년 둔산을 택지개발지구로 지정한 이후 개발이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대전에 새로운 도심 골격이 형성됐고 도시축 형성을 위해 녹지를 조성했다. 당시 녹지축으로 만든 근린공원들이 공공청사에 가려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번 사업의 배경이다. 사업 추진으로 근린공원의 기능을 개선해 생활밀착형 시민 공간으로 바꾸고자 한다. 근린공원 이용자의 접근성을 증진하고 일상적 활용을 이끄는 한편, 친환경 인프라 조성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한다.
보라매공원(물길, 생태 주차장, 박스형 문화공간)
시민, 보행자 우선 공원으로
둔산 센트럴파크 조성사업은 새로이 공원을 건설하는 사업이 아니다. 둔산 지역 내 존재하는 근린공원 등을 연결하고 활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보행 동선을 활성화해 도심의 주인을 시민과 보행자에게 돌려주고자 한다.
대전시청 남문광장은 각종 행사가 벌어지는 등 광장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남문광장과 보라매공원 사이 왕복 6차선 도로가 지나 광장과 공원 이용이 원활하게 연결되지 않았다. 대전시는 이곳 차도 2차선을 줄이고 유선형으로 만드는 등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고, 보행자 이동 시 단차가 없도록 고원식 횡단보도를 설치할 계획이다.
또한, 시민이 남문광장에서 시청사로 들어가는 것이 어색하지 않도록 동선을 조정하고 북문에도 브릿지 등으로 현재의 권위적 설계 구조를 보완할 계획이다.
자동차가 차지했던 공간도 시민에게 내어 준다. 대전시청 북문에서 샘머리공원까지 이어지는 보라매공원 양쪽으로 주차장이었던 공간 5m씩을 공원으로 확보하고, 도로를 줄이며 생태 주차장을 설치할 계획이다. 생태 주차장 위쪽으로는 박스형 건축물을 설치해 시민이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 예정이다. 공원과 생태 주차장 사이에는 물길을 조성한다. 둔산 지역에 존재했던 갈마샘, 둔지미샘, 샘머리샘, 숭어리샘 등에 관한 이야기를 살린다.
센트럴 Greenway
동서축을 따라 도시숲길 또한 조성한다. 이른바 ‘Greenway’다. 기존 황톳길 노선과 연계해 총 길이 약 3km의 도시숲 산책길을 만든다. 산책길은 한밭대로를 따라 이어지는데 한밭대로가 있는 쪽으로 반투명 가림막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차량 통행에 따른 소음과 미세먼지를 막는 역할을 한다. 또한, 산책길 중간중간 쉴 수 있는 공간과 이벤트를 만들 계획이다. 대전세종연구원 염인섭 박사는 “기존에는 동서축에 흐름이 없었다. 사람들이 공원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구조였는데, 도시 산책로를 조성해 동서에 흐름을 주고자 했다”라며 “공공청사로 나누어져 있던 커뮤니티가 하나로 이어져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칭)기후친화공원
환경 중심 생태 네트워크 조성
둔산 센트럴파크를 조성하며 친환경 인프라 또한 갖춘다. 도심공원의 생태적 가치를 보전하며 기후변화에 대응하고자 한다.
대전도시철도 정부청사역과 접한 둔지미공원에는 차후 트램 노선이 지날 예정이다. 대전시는 이곳을 (가칭)기후친화공원으로 조성한다. 도시숲을 확대하는 것과 동시에 바람길 숲을 조성하고, 미세먼지 정화 시설을 설치할 예정이다. 산림청, 국토부 등의 사업과 연계를 추진한다. 생태공원 리빙랩 또한 운영하고 있다. 생태공원 조성과 관련한 시민 아이디어를 모아 차후 단계적으로 사업에 반영할 계획이다.
한편, 샘머리공원에는 (가칭)물순환 테마파크를 조성한다. 대전시가 환경부 물순환선도도시로 선정되며 진행하는 사업 중 일부다. 샘머리공원 내 불투수면 저감을 위해 다양한 LID(Low Impact Development 저영향개발)시설을 조성한다. 기존의 콘크리트 광장은 투수성 잔디광장으로 조성하고 빗물정원, 빗물미로원, 식생체류지원 등을 설치한다. 샘머리공원을 출발점으로 둔지미~한밭대로~은평~시청~시애틀공원 등을 순환하는 총연장 8.2km의 LID 투어코스도 개발할 계획이다. 대전시 맑은물정책과 이종익 팀장은 “물순환선도도시 조성사업을 둔산 센트럴파크 조성사업과 효과적으로 연계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라고 말했다.
시민과 함께 만드는 시민 공간
사업지 내 지하보도 여섯 곳은 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 기존에는 폐쇄돼 있거나 이용이 원활하지 않던 공간이다. 보라매공원 교차부 지하보도에는 마을박물관과 도서관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마을박물관에는 둔산 지역 개발로 사라진 마을에 대한 아카이빙을 실시한다. 자연마당~샘머리공원 연결부 지하보도에는 생태문화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새롭게 조성할 지하공간은 시민이 주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 공동체의 활동 거점으로 기능한다.
대전시와 대전세종연구원은 둔산 센트럴파크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민·관 협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했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시민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했고 11월부터는 시민 리빙랩을 운영하고 있다. 시민 리빙랩에서는 주로 공원의 안전성에 관련한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공원에 물티슈, 비상약품 자판기 설치 등 시민 이용 편의와 관련된 아이디어도 나왔다. 대전세종연구원 염인섭 박사는 “리빙랩을 계속 운영하며 중장기 사업은 시민에게 턴을 넘기는 방식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자연마당~샘머리공원 지하보도
보행약자도 이용에 어려움이 없도록 경사로를 지그재그로 설치할 계획이다
대전의 ‘심장 공원’ 되기를
둔산 센트럴파크 조성사업은 현재, 대전시 균형 발전에 저해된다는 비판 또한 받고 있다. 원도심 지역의 상대적 박탈감을 문제로 드는 이들도 있다. 이와 관련해 대전세종연구원 염인섭 박사는 “대전시가 둔산 지역에 점을 잘 찍어서 중심을 잡아 주면 다른 곳도 잘 일어날 거라 생각한다”라며 “신체 각 부분의 기능분담이 필요하듯, 도시에서도 도심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염 박사는 둔산 센트럴파크의 별명을 ‘대전 심장 공원’이라고 소개했다. 강력한 심장이 있어야 도시 전체에 동맥, 정맥 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해답은 둔산 센트럴파크 조성사업 내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사업이 동서축에 조성하는 도시숲 산책길이 계속 이어진다면 서쪽으로는 갑천을 넘어 유림공원과 만나고, 동쪽으로는 유등천을 따라 중촌시민공원과 연결된다. 차후 이러한 흐름을 따라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의 움직임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대전세종연구원은 연구 용역을 수행하며 둔산 센트럴파크에 다양한 수식어를 붙였다. 숲이 있는, 활력이 넘치는, 걸어 다니고 싶은, 친환경적인, 안전하고 자유로운. 글을 시작하며 상상했던 공원의 모습과 들어맞는 수식이다. 염인섭 박사는 지난 둔산 센트럴파크 현장 순회 설명회에 앞서 “‘둔산 센트럴 파크’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말고 대전의 공원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라고 당부한 바 있다. 대전시가 그리는 둔산 센트럴파크는 대전 정체성을 지닌 대전의 공원이다. 세부 정체성은 다르겠지만, 우리가 흔히 좋은 공원이라 생각하는 모습은 뉴욕 센트럴파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둔산 센트럴파크가 조금 더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의 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공원이 되기를 바란다. 대전시와 시민은 둔산 센트럴파크가 시민 모두 누릴 수 있는 공원이 되도록 중지를 모아야 한다.
글 성수진
그림 자료 대전시 환경녹지국 공원녹지과, 대전세종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