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1호] 좋으니까 하는 거고, 그래서 후회도 없고

좋으니까 하는 거고,

그래서 후회도 없고

   

충청하이브리드 THE FEST

   

   

인디 음악하면 단연 홍대를 떠올릴 정도로 대다수의 인디 음악은 서울, 특히 홍대로 통한다. 많은 지역 뮤지션도 자신의 음악을 대중에게 알리려 홍대 앞 공연장을 전전한다. 인디 음악을 즐기려는 지역 사람도 공연을 보러 관람 비용 이외에 추가 비용을 들이며 KTX에 몸을 싣는다.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이런 현실에서 ‘충청하이브리드 THE FEST’는 신선하면서도 아리게 다가온다. 지난해 3월 첫 공연을 시작으로 1년간 이어 온 대전, 충청 로컬밴드 공연을 만나는 충청하이브리드 THE FEST가 여덟 번째 공연을 마쳤다. 

 


 

버닝햅번의 공연이 여덟 번째 충청하이브리드의 시작을 알렸다.

 

1.

금요일 저녁, 사람으로 붐비는 대흥동 거리에서 조금 벗어나면 금세 한산한 도로변이 나온다. 평소 같았으면 오가는 사람도 몇 없는 곳이지만, 하나둘 사람이 모여 들었다. 이들이 모인 곳은 기획 공연 충청하이브리드 THE FEST(이하 충청하이브리드)를 진행할 그린버찌라이브하우스 입구다. 공연장 안에서는 아직 리허설이 진행 중인지 노랫소리가 간간히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짙은 분홍색 입장 팔찌를 손목에 두르고 공연 시간이 되길 기다렸고,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계단을 타고 지하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어떠한 안내도 없지만, 다들 익숙한 듯 보였다. 
공연은 금요일, 토요일 양일간 진행했다. 충청하이브리드는 이름처럼 대전, 충청 지역, 다양한 장르의 밴드가 함께하는 공연이다. 이번 공연 첫날에는 완태, 혹시몰라, 로우테잎이, 둘째 날은 스모킹구스, 러브마이셀프, 피난, 청춘스타라이더스가 참여했다. 버닝햅번은 양일 모두 참여해 관객과 함께했다. 
충청하이브리드를 기획한 버닝햅번은 이전에도 번아웃 쇼, 데드시티 등 다양한 공연을 기획했다. 데드시티의 경우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약 30회 정도의 공연을 꾸준히 진행했다. 충청하이브리드 역시 지난해 3월에 처음 시작해 올해까지 총 8회에 걸쳐 공연을 이어 왔다. 
“녹음실을 운영하다 보니까 다른 밴드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는데, 공연할 기회가 많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래서 함께 공연할 수 있도록 기획했어요. 다들 음악 장르가 달라서 하이브리드라는 이름을 붙였고요. 첫 공연 때는 조금 하드한 음악을 선보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장르의 밴드와 함께하게 됐어요. 엄청 거창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었어요. 저희가 다른 밴드에게 기회를 줄 역량도 못 되고요. 사실 밴드활동이라는 게 거의 공연 위주이고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공연하고 싶은 마음도 컸죠. 대전에 밴드 씬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그냥 공연이 하고 싶고, 관객을 만나는 것 자체가 좋아 기획한 공연이었다. 충청하이브리드 이전에 진행했던 모든 기획 공연도 마찬가지다. 대중을 만나는 것은 예술인에게 중요한 일이다. 이들은 그저 혼자 골방에 앉아 꼼지락거리는 게 아닌, 함께 놀고자 하는 마음이 컸을지도 모른다.
버닝햅번의 드러머 한상우 씨는 말한다. “공연은 사람을 만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에요. 그냥 그릇 같은 거예요. 충청하이브리드는 지역 씬에 시너지 효과를 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획한 거고, 또 다른 방법이나 아이디어가 있다면 다른 공연을 또 기획하겠죠.”

 

로우테잎

 

완태

 
2.

여덟 번째 충청하이브리드의 처음을 버닝햅번이 열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관객은 모두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다가 공연이 시작되자 쭈뼛거리며 무대 앞에 섰다. 사람들은 노래에 맞춰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거나 살짝살짝 몸을 움직였다. 아주 뜨겁지도 그렇다고 싸늘하지도 않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이어졌다. 그 어색함이 이상해, 이제 막 공연을 마친 로우테잎에게 물었다. 분위기가 어색하고 이상하지 않느냐고. 그들은 대수롭지 않아 했다. 오히려 기기 문제로 제대로 된 공연을 보여 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미안해했다.  
“매번 공연할 때마다 아지트 같고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아요. 꾸준함을 가지고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잖아요. 작년까지만 해도 계속해서 홍대를 오가며 공연을 했어요. 다들 서울에 몰리니까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서울보다는 지역에서 공연하는 게 좋아요. 한두 명만 있어도 즐겁게 공연할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해요.”
버닝햅번의 한상우 씨도 인터뷰를 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조금 더 어릴 때는 관객이 별로 없으면 실망하고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관객 수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사람이 와도 우리 공연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 공연장 안에서 어색함을 느낀 건 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공연장은 뜨겁고 에너지 넘쳐야 한다는 편견이 끼운 색안경이었다. 로우테잎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생계수단과 음악활동이 일치하지 않는 삶에 괴리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예상외로 ‘아니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로우테잎의 보컬 한상주 씨는 음악을 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하지만 그게 괴롭지는 않다고 이야기한다. 
“종종 학원에서 레슨을 하다, 아이들 가르치는 게 힘들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그게 괴리감인지는 모르겠어요. 물론 내 노래로 돈을 벌면 더 없이 좋겠지만, 음악을 하기 위해 하는 일이잖아요.” 

 

혹시몰라

 
3.  

로우테잎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완태의 순서가 지나고 혹시몰라의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공연장 구석에 앉은 사람이나 무대 앞에 서서 여전히 쭈뼛거리는 사람이나, 이제는 그 풍경이 낯설게 보이지 않았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연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같이하는 밴드들이 지치지 않고 오래오래 했으면 해요. 내가 진짜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음악은 유행을 타기도, 그렇지 않기도 해요. 그래도 이 일이 쉬울 거라고 생각해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내가 좋아서 한 일이고 다른 사람들도 다 좋아서 한 거니까 그냥 재밌게 하면 되는 거죠, 뭐.” 송원석 씨의 말처럼, 그들이 오래오래 지치지 않길 바란다. 여전히 즐겁게 음악하는 이들을 보고 또 다른 누군가가 음악인의 꿈을 키울 수 있었으면 한다.
버닝햅번과 그린빈버찌라이브하우스 천태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종종 그들은 이야기를 좀 더 부풀려 달라며 농담을 던졌다. 그저 함께 웃고 넘겼지만 마냥 넘기기엔 어딘가 껄끄러웠다.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데, 묘하게 부풀리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천태수 대표가 던졌던 이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음악활동도 하고 공연장도 운영하면서 이런저런 인터뷰도 많이 하고 방송 출연도 했어요. 그때마다 사람들이 물었던 게 ‘음악하면 얼마나 어렵느냐?’라는 거였어요. 어떤 인터뷰에서는 ‘진짜 라면 먹어요?’ 하는 질문도 받아 봤죠. 라면 먹는 영상이 방송되기도 했고요. 물론 음악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사람들이 ‘예술하면 배고프다’라고 생각하는 게 여태껏 봐 온 것들이 굶주린 예술가였으니까요. 나는 어느 정도 이야기를 부풀릴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자꾸 그런 모습만 비춰지는 게 아쉽죠.”
음악하면서 배고프고, 힘들고,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은 그저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고, 그 좋은 마음이 여전하기에 이어 온 것도 사실이다. 관객이 조금 적으면 어떻고, 앨범이 잘 안 팔리면 어떤가. 물론 좋아하는 일로 돈도 벌면 좋겠지만 어쨌든 좋아서 하는 일인데 단순히 상업성과 시장성에 치우친 시선으로 바라볼 이유는 없다.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고 여태껏 이어 온 이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혹시몰라 전영국 씨는 “내일도 좋은 공연이 있으니 오세요. 이렇게 대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연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다들 일도 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공연이 활성화되어서 여러분도 자주 찾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공연이 끝나고 군데군데 모인 사람들 사이를 지나 공연장을 벗어났다. 공연장과 달리 바깥 공기가 차가워 벗어 두었던 외투를 다시 걸쳤다. 돌아가는 길에 버닝햅번의 노래와 혹시몰라의 앵콜곡을 번갈아 흥얼거렸다.

 


글 사진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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