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1호] 아티언스 대전, 실험을 실험하다

아티언스 대전,

실험을 실험하다

 

아티언스 대전 2019

 

 

지난 10월 10일 오후 6시, 대전예술가의집에서 아티언스 대전 2019의 개막식이 열렸다. 강현욱 작가가 개막공연으로 ‘누구의 음성인가’를 펼쳤고, 이후에는 대전예술가의집 건물 외벽에 레이저 빔을 투사해 아티언스 대전 2019의 시작을 알렸다. 아티언스 대전은 과학도시 대전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만든 과학과 예술의 융·복합 프로젝트다. 9회째를 맞은 올해는 ‘실험을 실험하다’를 주제로 과학과 예술이 만날 수 있는 조건을 세밀하게 검토하고자 했다. 예술감독 선임, 2년 연속 지원 작가 선정, 체험존 운영 등 새로운 시도로 시민을 만났다.

  


  

강현욱, 누구의 음성인가(개막공연)

  

과학 예술의 융합, 근본적으로 성찰

아티언스 대전은 올해 처음으로 예술감독을 선임했다. 아티언스 대전을 총괄하는 전문가에 대한 필요가 있었고, 올해 사업비가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나며 대전문화재단은 예술감독을 공모했다. 그 결과 기계비평가이자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이영준을 예술감독으로 선정했다. 
이영준 예술감독은 ‘실험을 실험하다’를 올해 아티언스 대전의 주제로 택했다. 섣부른 융합 대신 과학과 예술이 만날 수 있는 조건을 세밀하게 검토하고자 했다. 과학의 관점에서 예술은 어떤 정당성을 지니는지, 예술의 관점에서 과학의 실천과 담론은 과연 객관적인지 따져 보는 것이 이번 기획의 핵심이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과학과 예술의 융합 시도에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함을 인식했다.
올해 아티언스 대전은 시각 예술 중심으로 대전예술가의집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과거 원도심 일대를 진행 장소로 삼은 적이 있었고 공연, 연극, 영화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 것에 비교하면 올해 아티언스 대전이 무엇에 어떻게 집중하고자 했는지 드러난다. 
전시는 특별전, 주제전, 체험존으로 이루어졌다. 특별전은 지난 10월 10일부터 20일까지 대전예술가의집 누리홀에서, 주제전과 체험존은 31일까지 대전예술가의집 전시실과 로비, 앞마당에서 진행했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가 대폭 늘어났다는 점과 체험존 운영은 이번 아티언스 대전의 변화 중 하나다. 

  

구부요밴드, AT 수상레저의 과학과 예술(좌) / 김정은, Tyndall Tuner(우)

  
특별전으로는 에릭 아르날 부르취 작가가 ‘Deep Are the Woods’라는 이름의 빛을 이용한 작업을 선보였다. 관객들은 어두운 공간을 지나며 빛의 모양과 분위기를 바꾸며 빛과 물리적으로 관계 맺었다.  
주제전은 ‘분자적 과학과 원자적 예술’을 주제로 진행했다. 구부요밴드, 김정은, 김태연, 러보랩, ADHD, 소수빈, 손여울, 엠마누엘 페랑, 얀 토마체프스키가 참여했다. 이전처럼 협업 연구기관과 1대 1 매칭으로 협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관심 분야와 필요에 따라 매칭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생명의 비물질적 내부 정보가 외부로 발현되는 과정과 절차에 주목한 김태연 작가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이효준 박사의 식물실험에서 실마리를 얻어 협업 작업을 진행했다. 
주제전 참여 작가들은 3개월에 걸쳐 전시를 준비했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추구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이에 대전문화재단은 올해부터 2년 동안 협업을 이어 가는 작가를 따로 선정했다. 현재 박정선, 구민자, 이유리, 김해인 작가가 프로젝트를 이어 가고 내년에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체험존은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다. 과학과 예술의 융·복합 실험을 어렵게 느낄 관객을 위해 체험존을 구성했다. 체험존에서는 송호준 작가가 ‘On/Off Everything’과 ‘압축하지마’를 선보였다. ‘On/Off Everything’은 ‘On/Off’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시민들은 설치된 콘센트에 직접 자신의 전기전자장치를 연결할 수 있다. 작가는 “실제 인스톨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라며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라며 작업을 설명했다. ‘압축하지마’는 대상이 랜덤하게 움직일수록 압축이 되지 않는 영상 압축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개막식에서는 작가가 참여자들과 함께 직접 압축되지 않는 움직임을 찾았다. 
그간 지속적으로 진행해 온 아티언스 캠프는 올해 ‘예술+과학 해커톤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다. 전문가, 청소년, 시민 모두를 대상으로 각기 섹션을 운영하며 과학과 예술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김태연, 생명의 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좌) / ADHD, Stretch(우)

   
과학과 예술 사이 설 자리 찾기

올해 아티언스 대전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는 국제컨퍼런스였다. ‘테크네를 위한 프로토콜: 과학과 예술이 하나였던 때를 상기하며’를 주제로 지난 10월 11일 옛 충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진행했다. 아티언스 대전 2019의 전체 주제가 ‘실험을 실험하다’인 만큼 컨퍼런스에서도 예술과 과학이 다시 만나기 위한 조건을 검토했다. 사회를 맡은 이영준 예술감독은 “서로 거리가 먼 과학과 예술이 만나려면 프로토콜을 따지고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컨퍼런스는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예술과 과학이 만날 수 있는 채널은 한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다층적인 담론이 필요할 것이라 판단했다. 과학철학자이자 리츠메이칸대학 교수 폴 뒤무셸은 로봇공학의 윤리에 대해, 한국기계연구원 로봇메카트로닉스 연구실 송성혁 박사는 소프트 로봇을 중심으로 로봇과 인간에 대해 발제했다. 숙명여자대학교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 임소연 연구교수는 성형수술과 포스트휴먼에 관해 다루었다. 쥐스틴 에마르, 송호준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며 과학과 예술이 어떤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지 설명했다. 
송호준 작가는 ‘작가와 엔지니어 사이에서-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했다. 예술가와 과학자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새로운 존재라 할 수 있는 송호준 작가는 라이브 스트리밍, 사운드 퍼포먼스, 대량생산, 하드코어 엔지니어링 등 사회에서 직접 작동하는 형태로 작업과 그 과정을 공유하며 기존의 예술, 디자인, 기술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의문을 제기해 왔다. 종합토론 시간에 송호준 작가는 공학과 예술의 경계에 관한 질문에 “카테고리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쥐스틴 에마르 작가는 예술가의 임무에 대해 설명했다. 작가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관용, 포용,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라며 “예술가의 임무는 현실을 다른 자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컨퍼런스는 무선송수신기를 사용해 영어와 한국어로 동시통역을 진행했다. 컨퍼런스는 주한프랑스문화원의 인적·물적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대전문화재단 김경완 담당자는 “내년이면 10회를 맞는 아티언스 대전은 국제적 행사로 도약을 준비하는데, 올해 진행한 국제컨퍼런스는 그 초석을 닦는 역할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컨퍼런스 이외에도 주한프랑스문화원, 주한프랑스대사관이 전체 행사 진행에 도움을 주었다. 

  

손여울, 데이터로부터의 색(좌) / 러보랩, GESTURE Ⅱ(우)

  
아티언스 대전,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

개막식과 국제컨퍼런스 개회사에서 대전문화재단 박만우 대표는 대전이라는 도시에서 아티언스 대전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했다. 1980년대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1993년에는 대전 엑스포가 열렸다. 당시 리사이클을 주제로 한 기획전시에서 백남준은 과학기술과 예술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근원적 성찰을 안겨 줬다. 박만우 대표는 “아티언스 대전은 정부출연 연구기관 설립, 대전엑스포 개최와 같은 대전의 역사와 백남준의 지적 유산을 계승한다”라고 설명했다. 
연구기관과 예술가가 만나 색다른 결과물을 도출하는 아티언스 대전은 대전의 도시 특색을 살린 고유 프로젝트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아티언스 대전의 사업비는 약 2억 2천만 원이었다. 올해는 약 4억 원 정도로 사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티언스 대전은 그간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재정비했다. ‘실험을 실험하다’라는 주제로 그간 진행해 온 실험에 의문점을 제기한 것이다. 과학과 예술이 각자 지닌 인식과 실천의 도구로 상대를 봤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번 아티언스 대전의 기획 역시 결과를 예측하고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제컨퍼런스에서 이영준 예술감독은 “전시된 작품 중 이미 실패한 작품도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후의 인터뷰에서 “실패는 배우게 만들며, 다양한 시도를 가능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소수빈, 신-생태계의 휴리스틱(좌) / 에릭 아르날 부르취, Deep Are the Woods(우)

  
내년 10회 아티언스 대전은 국제적 행사로 도약을 계획한다. 대전문화재단 김경완 담당자는 “올해 사업은 내년 사업을 안정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초석으로의 역할이 컸다”라고 설명했다. 내년에는 공연예술 쪽으로 장르가 확장될 가능성도 있다. 연구기관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대전문화재단은 지난여름부터 협업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현재 아티언스 대전의 협업기관인 한국기계연구원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외에도 한국지질자원연구소가 업무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실험을 실험한’ 아티언스 대전은 이제 2020년을 준비한다. 

   



 

불가능한 만남을 실험하는

실험

 

아티언스 대전 2019 이영준 예술감독

 

 

아티언스 대전은 올해 처음으로 예술감독제를 시행했다.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이영준이 예술감독을 맡았다. 어린 시절부터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현재 기계비평가라는 타이틀로 활동하고 있다. 이영준 예술감독은 아티언스 대전 2019의 주제를 ‘실험을 실험하다’로 정했다. 과학과 예술 사이에 큰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평소 생각을 풀어냈다. 그를 직접 만나 아티언스 대전 2019에 관해 이야기 들었다.

 

 


 

이영준 예술감독

   

아티언스 대전 예술감독으로 지원한 동기가 있나요. 그간 아티언스 대전을 어떻게 봐 오고 계셨는지요.
대전에서 과학과 예술 융합 시도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대전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과학기술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현대과학은 이해하기 어렵고 벽이 높아 예술과 과학 사이에 큰 불균형이 있습니다. 제가 그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번 아티언스 대전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실험을 실험하다’라는 주제를 선정하신 이유에 관해 설명 부탁드려요.
사람들은 과학을 쉽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모든 것에 과학이 스며들다 보니 오히려 과학의 존재를 모르게 돼 버렸습니다. 또한, 과학의 산물이 소비품이 됐습니다. 너무 쉽게 사서 쓰다 보니 과학을 쉬운 것처럼 생각하게 됐지요. 하지만 과학 자체는 쉬운 게 아닙니다. 과학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실험하듯 까뒤집어 보자, 과학에 대해 얼마나 잘 모르고 편견과 환상을 가졌는지 깨 보자, 하는 의도에서 ‘실험을 실험하다’라는 제목을 지었습니다. 

  

그동안의 아티언스 대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주제라고 느껴집니다.
이전 아티언스가 쌓아 올린 토대 위에 금년 아티언스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전의 아티언스 대전은 과학이 어렵다는 것을 좀 모르고 있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저는 과학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습니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에게 연락하기 망설여지는 것처럼 과학을 만날 때도 그렇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과학과 예술이 서로 만나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과학과 예술의 융·복합 실험에 당위성이 있을까요?
원래 만나야 하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만남을 끊임없이 시도해 보고, 그러다가 그 무모한 시도가 하나라도 열매를 맺는다면 그것이 아름다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높은 성벽과 같습니다. 과학을 이해하려면 성벽을 기어 올라가서 들여다봐야 하는데 예술가들이 하는 것은 성벽의 돌 세 개 정도 올라가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으로 과학이라는 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술은 과학에 겸허하게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아티언스 대전의 감독 역할을 하며 잘됐다 싶은 점과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예술가와 과학자가 만나서 풍성하고 생산적인 협업을 통해 참신한 작품을 만드는 것을 의도했으나 성과가 나오지 않은 점이 아쉽습니다. 성과를 내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예술가들도 협업기관의 특성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날같이 과학이 극도로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상황에서 자신이 누구와 협업할 수 있는지 모른 채로 진행한 것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몇몇 참여 작가는 오래전부터 과학자들과 대화를 진행해 왔고 그 과정의 대화록을 도록에 실을 예정입니다. 또한, 참여 작가들 자신이 영향받았거나 읽거나 공부한 과학에 대해 정리해 실을 예정입니다. 도록 하나는 볼 만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아티언스 대전이 유의미하게 성장하려면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준비 기간이 길어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으로 한 작가가 과학자를 3년 정도 만날 수 있다고 봅니다. 예술가는 과학이 어렵다는 걸 알아야 하고, 과학자도 예술이 어렵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다음에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생길 것입니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서 실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연구기관과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상호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심층적인 대화와 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도 많이 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를 바탕에 두고 나오는 작품이라면 실패작이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아티언스 대전이 대전이라는 도시와 시민에게 남기는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시민들이 평소 못 보던 새로운 예술을 볼 수 있다면 제일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전에 대전시립미술관과 대전이응노미술관 등이 있지만 광역시라는 도시 규모에 비하면 미술 문화 인프라가 너무 적습니다. 대전 시민이 낸 세금만큼 돌려받고 있는지 생각하면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티언스 대전으로 시민의 문화 향수 기회가 넓혀졌다고 생각합니다. 
대전에서는 과학도시답게 과학과 예술의 상호작용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도시는 대전밖에 없습니다. 또한, 작가들에게는 아티언스 대전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의 특권입니다. 개인이 연구기관과 협력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전문화재단에서 중간 역할을 맡아 주니 작가들에게는 좋은 기회이지요. 잘 활용하면 과학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 성수진 사진 성수진 대전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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