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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7호] 이제는 생태계 구축을 고민할 때
이제는
생태계 구축을
고민할 때
‘마을극장 및 독립·예술영화 생태계 조성 지원사업(이하 마을극장 조성사업)’은 허태정 대전시장의 민선7기 공약사업 중 하나다. 대전시의 영상문화 생태계 활성화가 목적인 마을극장 지원사업은 지난 6월 공모를 시작했다. 제출 서류 검토, 발표평가, 현장 평가를 거쳐 1개 단체를 최종 선정한 후 10월 말 개관할 예정이다. 이번 마을극장 조성사업에는 시비 4억 5,700만 원을 투입한다.
주말이 오면 영화관엔 사람이 북적인다. 익숙한 풍경이다. 이제 천만 관객은 새롭거나 놀라운 기록도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18 문화향수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 영화 관람률은 75.8%로 2016년 대비 2.5% 증가했다. 대중음악·연예 분야는 21.1%를 차지했으며, 미술·전시회는 15.3%, 연극이 14.4% 순이다. 통계가 보여 주듯 영화는 예술 장르 중 가장 대중적인 영역이다. 그에 반해 고전영화, 예술영화, 독립영화 등 다양한 영화를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영화는 중요한 문화 산업군에 포함돼 철저하게 ‘자본’ 논리에 영향을 받는다. 생태계 전반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많은 제약이 있다. 대중 예술이 지닌 일반적 한계다. 문화 예술이 지닌 생명력은 다양성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현재 영화 생태계는 결코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 예술 장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상품으로 존재할 뿐이다. 몇몇 제작사와 배급사, 멀티플렉스 상영관으로 이어지는 독과점 형태 구조는 수용자가 예술로써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예술이 가진 준공공성을 고려하면 올바른 현상은 아니다.
허태정 시장의 민선7기 공약사업인 마을극장 조성사업은 이런 현실 제약을 타파하며 다양한 작품 감상의 기회를 시민에게 제공하고, 지역 활성화에 도움을 주기 위한 사업이다. 흥행성과 수익성보다는 영상작품의 예술적·문화적 가치와 역사성, 비평, 다양성과 실험성을 가진 작품을 상영하고, 공공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지역 특성에 따른 다채로운 프로그램 편성으로 작품과 감상의 다양성을 제공하면서 시민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 교육적 사명을 실현하며, 이를 매개로 공동체 복원과 마을활성화까지 꾀하는 것이 마을극장의 역할이다.
대전시는 마을극장을 다양한 독립·예술영화 상영만이 아니라 지역 영화인의 커뮤니티 장으로 활용하면서 지역의 새로운 영상작가 육성과 지역 영상산업계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영화를 벗어나 지역사회의 편협한 장르 중심 예술 생태계 속에서 다양한 예술 장르가 동반 성장해 전체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기대를 낳게 한다.
대전에서 오랫동안 독립예술영화 극장을 운영한 강민구 대표는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마을극장은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전용 상영관으로 공공적 성격을 가져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공적 자금을 들여 마을극장 설립을 지원하다는 것은 ‘공공성’을 전제로 한다. 마을극장 운영을 통해 유무형의 공공 편익 증대를 꾀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일찍부터 협동조합의 형태로 커뮤니티 영화관을 설립해 운영했다. 일본은 일본영화 전성기인 1960년대까지 작은 마을에도 영화관이 있어 지역 문화·오락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일본 최초의 영화생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영화관 ‘시네마 린’이 있는 도호쿠 지방 이와테현의 미야코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텔레비전과 비디오 등을 활발하게 보급한 1980년대부터 일본의 작은 영화관들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미야코시도 1991년 마지막 영화관이 폐관했다.
미야코시에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1994년 ‘미야코 시네마 클럽’을 조직해 독자적인 영화 상영 활동을 시작했다. 미야코시에 상설영화관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당시 이와테현의 6개 지역 생활협동조합이 합병해 만든 조합이 대형 쇼핑센터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상설영화관이 필요하다는 주민의 요구와 논의 끝에 대형 쇼핑센터 건물 2층에 영화생활협동조합이 임대 운영하는 방식으로 영화관을 설립했다. 1996년 시네마 린을 기반으로 ‘미야코영화생활협동조합’이 출발했다.
시네마 린은 일본 유명영화부터 다큐멘터리 영화, 독립영화 등도 특집 편성해 정기적으로 상영한다. 2013년 미야코 영화생협 조합원은 17,000여 명이었다. 미야코시 전체 인구 중 30%에 달하는 숫자이다. 미야코 영화생협은 협동조합 원칙에 따라 영화관 운영 이외에 지역 사회를 위한 기여활동에도 힘썼다. 영화관을 찾기 어려운 노인을 위한 찾아가는 이동영화관 사업을 비롯해 동일본 대지진 이재민을 위한 순회 상영회도 100회 넘게 진행했다.
일본 이외에도 캐나다, 미국 등에서 협동조합 방식으로 영화관을 운영한다. 지역 주민이 문화공백을 메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생태계를 만들었다.
대구에 있는 독립영화 전용관 오오극장도 대구·경북 영화영상협동조합법인이 운영한다. 오오극장은 관객, 지역 영화 제작자, 미디어 활동가까지 20여 명의 조합원이 함께 만드는 극장이다. 오오극장은 GV, 세미나 등을 진행하고, 커뮤니티 카페 삼삼다방을 운영하며 꾸준히 지역주민과 소통한다.
“마을극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커뮤니티 시네마라고 생각합니다. 커뮤니티 시네마 활성화를 위해선 먼저 커뮤니티 시네마, 협동조합 등에 대한 교육을 선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극장에 대해 관심이 있더라도 주민이 극장 운영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극장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죠. 주민들에게 충분한 교육을 통해 전문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 주고, 각 구마다 예술영화 전용관, 독립영화 전용관, 고전영화 전용관 등 특색을 살린 극장을 설립해 함께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민구 대표는 10월 개관을 목표로 하는 마을극장을 시작으로 각 구별로 마을극장을 설립하고, 극장 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 공고문에 따르면 마을극장 조성사업은 다가오는 7월 초에 발표 평가와 현장 평가를 진행하고 7월 중순 최종 운영 단체를 선정할 예정이다.
마을극장 개관은 다양한 작품을 관람하길 원하는 시민에게는 분명 즐거운 소식이다. 적지 않은 예산을 투여하는 사업인 만큼 지속가능한 운영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지역에서 시도해 성공한 사례가 없고 ‘영화’라는 익숙하지만 낯선 장르에 대한 공적 지원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극장 하나를 설립하는 것에 매몰되기보다는 교육을 포함한 프로세스를 치밀하게 계획하고 적절한 점검과 관리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전시가 마을극장을 설립 운영하는 데 공적 자금을 지출하기로 결정한 이유와 기대를 분명하게 하고 시민과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글 이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