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6호] 새로운 인연들

새로운

인연들

 

일상르포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옷깃을 스치지 않아도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시대다. ‘좋아요’와 ‘수락’만으로 친구가 된다. 페이스북 얘기다. SNS와 인터넷 매체의 위력이 갈수록 확장되면서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교류를 하고 사업 홍보를 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굳이 통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하철 안이나 길을 걸으면서 스마트폰을 하는 사람들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나도 페이스북을 통해 온라인 만남을 꾸준하게 하고 있다. 자주 글을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을 벗어나 직접 얼굴을 마주보는 경우도 간간이 있다. 

  

처음 봐도 어제 본 듯한

지리산에서 그림을 그리는 고등학교 친구의 소개로 페북 비공개 그룹에 가입한 적이 있다. 대략 5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그룹 이름은 ‘국수방’이다. 모임은 단순하다.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입되어 있다. 나름 ‘선주후면’을 즐기는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다양한 국수집을 소개했다. 
지리산 자락 함양의 어탕국수, 섬진강의 재첩국수, 두부두루치기에 비벼 먹는 진로집 국수, 멀리는 라오스의 국수까지, 냉면 짜장면 짬뽕 비빔국수 스파게티는 수시로 등장했다. 온라인에서 소식을 전하던 이들이 4년 전인가 갑자기 계룡산 동학사 입구 식당에서 번개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경향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은 10여 명, 대개는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개중에는 오래전부터 삼삼오오 오프라인 만남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별다른 화제도 없이 깔깔거렸다.
처음 봤어도 어제 본 듯한 분위기였다. 아마도 각자가 올린 페북의 내용을 꾸준하게 읽어 왔기 때문에 일상의 근황이나 관심사 정도는 학습이 된 덕분이다.
“전시회 준비는 잘되고 있나요?”
“지난 번 나온 책 잘 읽었어요.”
“요즘도 해외출장 자주 가시나요?”
“아들은 대학생활 잘 적응하나요?” 
“집 앞에 있는 슈퍼마켓 아저씨는 평안하신가요?”
페북에 올라왔던 내용들을 복기만 하면 일상의 대화는 수월하게 이어 갈 수 있었다. 물론 대개의 사람 관계가 그러하듯 자리에 모인 모두가 친화력을 갖기는 어렵다. 때로는 도를 넘는 사업적인 접근으로 관계가 멀어지는 이도 있고, 어울리기 쉽지 않은 성격으로 소원해진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SNS를 멀리하면서 근황을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지난 봄 지리산에 사는 친구가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미술부였고 나는 문예부였다. 인연만 보자면 40년 가까운 관계다. 그렇다고 은밀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살가운 관계는 아니다. 1년에 서너 차례 만나는 정도다. 친구는 전시회 개최를 페북을 통해 알렸고 많은 페친들은 전시장을 찾았다. 나는 사람이 뜸한 시간에 전시장에 갔다. 지리산 풍경들이 화폭에 고즈넉하게 담겨 있었다. ‘귀가’라는 전시 타이틀이 다소 쓸쓸하게 느껴졌지만 돌아갈 곳을 생각할 나이가 됐다는 점에서 쓸쓸함과 외로움은 친근하게 다가왔다.
전시장에서 주요 관심사는 그림이 얼마나 팔렸냐는 것이었다. 전업작가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작품 판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여러 작품 아래에 일명 빨간딱지가 붙어 있었다. 판매가 된 작품들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림이 맘에 든다며 덥석 사더라고.”
페북에 올려놓은 그림 몇 점만으로 그 사람은 산수화의 매력에 빠졌던 모양이었다. 또 어떤 사람은 형편은 넉넉하지 못하지만 작품이 맘에 든다며 할부로 구매할 수 있냐는 문의까지 있었다고 한다. 모두 페북 친구라고 했다. 그의 페친들은 입소문으로 전시회를 알렸고 그림을 적극적으로 공유했으며 급기야 작품 판매까지 이어졌다. 지리산에서 매일같이 듣는 바람소리 새소리만으로 외로움을 달래기는 부족할 것이다. 그림 그리는 시간 이외에는 술 마시며 야구 중계 보는 게 유일한 낙이라는 친구의 입장에서 볼 때, 페북 친구들은 위안이고 격려이고 말벗이다.

 
그냥 만나서 배회하는

나도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페친들이 몇 명 있다.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둘이나 셋이서 번개 모임을 갖기도 한다. 이들과는 두 시간가량 술잔을 기울이다 헤어진다. 공통분모의 관심사가 많은 경우에는 간혹 시간이 길어질 때도 있지만 그래 봐야 세 시간이다.
“지난번 시집 잘 봤어요. 아들은 군대에 갔나요?”
“휴학한 지 2년째인데 아직도 안 가네요.”
“군대 가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어차피 가야 할 군대라면….”
“그렇긴 하지만 피 끓는 청춘이라서 고민이 많겠죠.”
“자식 키우는 게 수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주변 페친들의 근황을 살펴보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마지막으로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며 몸을 챙길 나이가 됐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아주 가끔 만나는 페친 중 하나는 글을 쓰는 이다. 나름 비슷한 업계에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단둘이 만날 때가 있다. 그는 서울에 살고 나는 대전이 주된 생활 터전이라 거리의 중간쯤 되는 천안에서 두세 번 만난 적이 있다. 천안역에서 가벼운 악수를 하고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마땅한 술집을 찾는 일이다. 이렇다 할 연고가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적극적으로 맛집 정보를 확인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20분 남짓 헤매면서 식당을 찾는다. 장고 끝에 악수라고, 만족할 만한 집은 아니어도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그 집의 분위기에 젖어든다.
“금연은 잘되고 있나요?”
“열하루 지났어요.”
“쉽지 않아도 맘먹고 끊어 보세요. 저는 아들이 담뱃갑을 베란다 밖으로 던지는 수모 속에서도 담배를 폈는데, 벌써 끊은 지 8년이 넘었네요.”
“습관이 안 돼서 그런지 글이 잘 안 써지네요. 물론 핑계지만.”
“하긴 그래요. 막힐 때 한 대 빨면 풀어지는 느낌이 있기는 했죠.”
일상의 대화가 그렇듯 새롭지 않은 대화를 이어 가면서 각자 작업하고 있는 작품 얘기에 대해 묻고 답한다.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글쓰기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대화는 중간중간 끊긴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는 술 한 잔으로 달랜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식당의 인테리어에 대해 평가하고 주인의 이력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는 소설책과 희곡집 그리고 동화책을 낸 작가다. 소재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고 상상력이 풍부하다. 쓰기의 층위가 다양해 나의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올 여름에도 중년의 사내 둘은 천안역 어디쯤을 배회하며 일상사 절반과 농담 절반을 섞어 가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지 모른다.

 

외롭지 않은 관계 맺기

페이스북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자기 과시와 배설이 난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과도한 시선 끌기로 인정욕구를 채우려는 이들도 있다. 왜곡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혐오정치를 조장하는 이도 있다. 묻어 두어야 할 상처와 아픔을 드러내며 존재를 희화화하는 경향도 있다. 개인정보를 축적하는 기업의 운영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넘어가기에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반응의 정서를 읽는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반응이면서 각자의 정체성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에서 페북은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다. 때로는 가면 뒤편에 숨겨져 있는 민낯을 발견할 때가 있지만 온라인의 특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페북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알 수 없는 일, 물론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다. 급격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사이트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게 승자독식의 냉혈한 시장이다. 세상은 초연결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관계 맺기를 지향하는 인간의 속성은 새로운 친구 찾기로 이어질 것이다. 그 대상이 사람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대답하지 않는 자연과 사물이 될 수도 있다. 아마 그들과 이런 대화를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의자야, 언제나 내 엉덩이 아래에 있어서 숨이 막히지, 오늘은 너를 위해 하루 종일 서서 지내겠어.”

 


글 정덕재(시인, 르포작가)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