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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6호]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
나는 답답할 때 과학책을 읽는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정모 지음 / 바틀비
얼마 전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계절이 바뀌거나 환경이 변할 때 연례행사처럼 겪는 일이다. 보통 주사 맞고 약 먹으면 2~3일이면 낫는다. 증세의 주기는 예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다만 몸이 더 부실해졌고, 이젠 병이 다 나아도 남은 약을 모두 먹는다는 것 말고는.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의 글을 읽고 나서부터다.
그 역시 항생제 남용은 걱정하지만, 무조건 항생제가 나쁘다는 사회적 인식을 경계한다. 그의 말처럼 항생제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말라리아, 결핵, 폐렴, 콜레라, 이질뿐만 아니라 가벼운 피부염으로 죽는 사람이 수두룩할 것이다. 나처럼 몸살이 심해져 어디엔가 염증이 생겨도(무조건 목이 붓는다) 가벼운 항생제를 먹곤 한다. 그는 이렇게 조언한다.
“결핵 환자에게 의사 선생님이 항생제를 6개월 처방했다면 6개월을 먹어야 한다. 몇 달 되지 않았는데 다 나은 것 같아도 그것은 나은 게 아니다. 항생제 때문에 결핵균의 활성도가 일시적으로 억제되어 증상만 사라진 것이지 결핵균이 완전히 사멸된 것은 아니다.” 내성은 약을 오래 먹어서가 아니라 근절되기 전에 투약을 중단해서 생긴다. 그의 글을 읽은 뒤로 나는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조제한 약은 무조건 다 먹는다.
세상을 읽는 비판적·과학적 사고
그러고 보면 우리 주변은 잘못된 상식과 비과학적인 일투성이다. 우리는 그것을 과학적 사실, 혹은 진실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음이온이 건강과 몸에 좋다는 게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음이온을 발산한다는 광고에 속아 게르마늄 팔찌를 사고, 라돈 침대에서 라텍스 베개와 이불을 껴안고 잠을 청하곤 했다. 사실 음이온이나 게르마늄, 라돈에는 죄가 없다. 모든 광물은 자연 방사선을 함유하고 있고, 그것이 생활 방사능 오염의 원인이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상식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항생제가 감기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으며, 거꾸로 항생제를 오래 먹으면 내성이 생긴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은 지구온난화를 허구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인류와 지구의 생명체가 오랜 시간 진화를 거친 것이 아니라 어느 한순간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음이온을 비롯해 수맥, 바이오리듬 등 과학적 근거가 없는 건강 이론과 치료법이 판을 친다. 세상은 21세기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지만, 여전히 미신과 사기가 기승을 부린다.
이정모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은 우리의 삶과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현상과 사건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제시한다. 물론 그 비판적 사고의 자양분은 과학적 관찰이다. 때로는 상식이라는 범주로, 때로는 과학이라는 현미경으로 세상을 관찰하자고 제안한다. 가끔은 진지하지만, 중간중간 양념처럼 뿌린 유머와 위트는 과학이, 혹은 과학적 관찰이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신과 사기가 범람하고, 가짜가 판치는 세상일수록 과학적 사고와 과학적 관찰이 중요하다.
개 안에 늑대 "말 안 들으면 문다"
몇 년 전, 고위 관료가 식사 자리에서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라고 했던 말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던 적이 있다. 저자는 특유의 촌철살인으로 이 발언이 얼마나 비과학적이며 위험한 발언인지 조목조목 반박한다. 책으로 나오기 전에 신문에서 칼럼으로 먼저 접했던, 이정모라는 사람을 알게 한 <개 안에 늑대 있다> 제하의 글이다.
“개는 사람에게 충성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충성스런 보살핌에 걸맞은 보상을 하는 것뿐이다. 스스로 주인이라 착각하는 사람의 행실이 바르지 않으면 개는 그 사람을 무리의 아랫것으로 간주한다. (…) 잘 기억하시라. 다시 말하지만 개가 인간을 선택했다. 자기 대신 사냥하고 지키라고 선택한 것이다. 말 안 들으면 문다. 개 안에 늑대 있다.”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이 특검에 출두하며 민주주의 운운했던 장면은 유명하다.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그 순간 청소원 아주머니의 한마디 말이 방송을 타고 전국에 전파됐다. “염병하네.” 코미디 같으면서도 전 국민이 힘을 모아 이 사회의 암 덩어리를 도려내던 시절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다. 염병은 장티푸스다. 염병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의 해법은 이렇다. “염병을 막으려면 온 국민이 5년에 한 번은 꼭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매년 5월쯤 보건소에 가면 공짜로 접종받을 수 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염병도 마찬가지다. 원인균을 박멸해야 한다. 잊지 마시라. 5년에 한 번이다.”
책을 읽으면서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대덕연구단지에 대통령을 모셔와야 한다고 설레발 떨었던 지역 과학계의 모 인사가 떠올랐다. ‘짝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애절한 칼럼을 쓰기도 했는데 그 글의 게재를 막았던 나의 행동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얼마나 애절했는지 마지막 문장을 떠올리면 지금도 내 가슴이 저려 온다. “건강 챙기십시오.”
최근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취임사도, ‘과학기술과 IT를 통한 창조경제 구현’이라는 슬로건도 최순실의 작품이었다. 그때 대덕연구단지에 모셔 와야 할 사람은, 그리고 연서(戀書)의 대상은 박근혜가 아니라 최순실이어야 했다. 칼럼 따위가 아니라 영험한 무당의 점괘를 상신했어야 한다. 과학을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삼을 때 빚는 촌극이자 참화의 한 장면이다.
과학자는 결국 실패하는 사람이다 (출처: pxhere)
과학자는 결국 실패하는 사람
생화학자인 저자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을 거쳐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을 맡고 있다. 쉽고 유익하면서도 촌철살인의 칼럼과 대중강연을 통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과학적 사고가 스며들기를 바라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2018년 1권을 펴내더니 올해 초 2권을 펴냈다. ‘후덕한’ 몸매에 수염을 길러 ‘털보 과학관장’이라는 친근하고 귀여운(?) 별명을 얻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는 “떠들지 마세요”라는 안내 방송이 없다. 서울시립과학관에는 “만지지 마세요”라는 팻말이 없다. 저자는 시끌벅적한 박물관, 만지고 망가뜨리는 과학관을 꿈꾼다. 박물관과 과학관은 답을 찾는 곳이 아니라 질문을 찾는 곳이다. 이곳에 와서는 실패를 경험하고 가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왜냐고? 과학자는 결국 실패하는 사람이고, 실패와 오류를 극복하는 것이 과학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매일 실패하는 사람들이다. 제대로 된 가설을 세우는 데 실패하고 관측, 관찰, 실험에 실패한다. (…) 매일 실패하다가 어쩌다 한번 성공한다. 그게 논문으로 남는다.”
누군가의 추천사처럼 이정모는 과학을 이야기하지만, 인간을 말한다. 유머로 가득하지만, 통찰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정이 넘치고 정의롭다. 이런 과학자가 있어 과학 읽기가 재미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과학을 모르지만, 답답하면 여전히 과학책을 읽는다.
글 김형석(《나는 외로울 때 과학책을 읽는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