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6호] 용기는 마주한 벽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일

용기는 마주한 벽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일

   

박주희 자전거 여행가

   

   

“어린 시절, 대장부 노릇을 하며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었다. 자라나는 키만큼 용기도 커지는 것이라면 좋았겠지만,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그 용감무쌍하던 시절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새로운 길을 나설 때마다 거대한 벽을 마주봐야만 했고, 그 벽을 넘지 못해 다시 뒤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_《두려움이 키운 용기》 작가의 말 중에서

 


  

 

해보지도 않은 일에 불가능은 없다
지난 5월에 박주희 자전거 여행가의 강연을 듣고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은 어쩌면 블루마블 같은 거라고. 블루마블은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만큼 길을 옮겨 간다. 어느 길이 나올지 몰라 조마조마 하고, 그러니 주사위 하나 던지는 것도 신중하다. 우리는 매일을 그렇게 게임하듯 앞으로 나아간다. 박주희 여행가도 주사위를 던져 가며 국경을 넘었다.
박주희 여행가는 누구보다 겁이 많던 사람이었다. 걷다가 벽을 마주하면, 그 벽이 아무리 얇거나 낮다 하더라도, 두드려 보거나 뛰어넘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뒷걸음쳐 다른 길을 찾았다. 케냐 해외봉사 당시에도 그녀는 미숙한 영어실력으로 외국인과 대화하는 게 두려워 한참을 피해 다녔다. 보다 못한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도와줘 가까스로 영어를 사용하며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 제게 많은 변화를 일으켰어요. 사실 처음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지인들이 그러더라고요, 소극적이던 사람이 좋은 쪽으로 변했다고. 케냐에 가기 전에는 세계여행은 꿈도 못 꿨죠. 저에게는 이 사회 밖으로 나간다는 게 깜깜한 곳에 나 자신을 밀어 넣는 일처럼 느껴졌거든요. 아주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세계여행에 대한 약간의 용기를 얻을 수 있었죠.”
제주도 자전거 일주에서 겪은 경험도 세계여행을 향한 꿈을 심어줬다. 길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의 속사포 제주방언이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세계여행을 위한 짐을 싸고 있는 자신을 마주했다. 
그녀가 처음 세계여행, 자전거 세계 일주를 떠난다고 했을 때 모든 이가 뜯어말렸다. ‘여자 혼자서는 위험해’, ‘자전거 일주는 힘들어서 못할 거야’ 등 다양한 걱정의 소리가 쏟아졌다. 당시 여성 자전거 여행자는 없었기에 다들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애써 잠재운 두려움을 다시금 키워 냈다. 그러다 자전거 배낭 여행자를 만났고, 그녀는 의문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만 말하지? 이들은 하고 있는데?’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떠나고자 한 여행인데, 그렇다면 더더욱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수많은 걱정과 우려를 뒤로하고 중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두려움과 용기를 같은 위치에 두고 길을 걷다 
“익숙한 공간에서는 겁 많은 제 자신을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환경에 있어야 다시 성장할 거라 믿었죠. 상황이 바뀌니까 제 자신도 바뀌어 나가더라고요. 이전에는 제가 무언가를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 두려웠어요. 그래서 되도록 책임지지 않으려 주변 사람들, 특히 부모님의 선택에 따라 움직였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그런데 여행은 오롯이 내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져야만 하는 상황이잖아요. 여행을 계속할수록 저는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갔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여행은 더 녹록지 않았다. 짐을 실은 자전거를 타고 매일같이 비포장도로와 가파른 길을 마주해야 했다. 매순간 나타나는 갈림길에서의 선택은 그녀의 몫이었다. 후에 따라오는 고된 결과 역시 온전히 그녀가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후회하기도 했지만, 선택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하나를 선택하고 나니 다른 비슷한 하나는 쉬워졌다. 박주희 여행가는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시도해 볼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하다 말한다. 시도를 거듭하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갈 수 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말레이시아를 여행할 당시 제 뒤로 어떤 남자가 계속 쫓아오더라고요. 처음엔 무서워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 사람이 제 옆으로 오더니 대뜸 ‘너는 내가 머릿속으로만 계획하고 생각한 것을 실천하고 있다. 너를 보니까 나에게도 용기가 생겼다’라고 말하더라고요. 이야기를 나눠 보니, 은퇴를 앞둔 교사였는데, 저처럼 자전거 세계여행을 하고 싶었대요. 은퇴 후에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를 보니 확신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분의 말을 들으면서 ‘아 나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일 수 있구나’ 싶었죠.”
여행을 다녀온 박주희 여행가는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여행 중에 수백 번도 더 만난 두려움이란 녀석과 부딪치며 용기라는 그릇을 키워 나간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날개에 있는 작가의 말 마지막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용기라는 것에 모양새가 있다면, 아마도 그 등허리에는 분명 두려움이란 것이 찰싹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여행 이후, 요즘의 최대 관심사는 등허리에 붙은 두려움과 함께 잘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 두려움이 용기를 꼿꼿하게 세워 내리라 믿으면서.”
두려움은 용기를, 그리고 자신을 갉아 먹는다는 생각에 치워 버려야 할 것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과 싸워 이기려고 한다. 두려움을 이겨 낸 사람만이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두려움과 싸워 이기는 것 또한 용기 있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방법이겠지만, 함께 공존하는 것 역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박주희 여행가는 그 두려움을 옆에 두고 조금씩 용기를 키워 나갔다.
“잔걸음밖에 못하던 사람이 계속 나아가고 도전하다 보면 걸음이 커지고, 그러다 어느 순간 점프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일단은 먼저 발을 담가 봐야 해요. 지레 겁먹고 발조차 담가 보지 않으면 그 물이 뜨거운지 차가운지 알 수 없잖아요. 발 담그는 일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처음부터 멀리를 보고 시작하는데, 당장 앞에 있는 것부터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조금 느리더라도 벽을 하나씩 깨 나가다 보면 어느새 멀리 보이던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 이주연 사진 이주연, 박주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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