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9호] 소제동의 변화를 이야기하다

소제동의 변화를

이야기하다

 

소제동 좌담회

  

  

평일 오전, 소제동을 찾았다. 여느 동네가 그렇듯 평일 오전 소제동은 한적하다. 한창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인 대전전통나래관 주변은 흙바람이 날린다. 
대전역동광장 바로 앞에 있는 소제동은 일제 강점기 때 철도관계자가 많이 거주해 ‘철도관사촌’이라고 불린다. 관사 건물 대부분은 1930년대에 지었고, 100여 채 이상이었으나 6·25전쟁의 폭격 등으로 약 40여 채가 남았다. 한눈에 봐도 세월을 느낄 수 있는 건물은 주민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지난해부터 소제동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30대들이 주로 사용하는 SNS를 보면 이곳의 변화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사람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 올렸다. 주변의 몇몇 친구들은 최근에서야 우리 지역에 소제동이라는 동네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 정도로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뜸했던 작은 동네가 주말이면 가게마다 사람이 북적인다. 소제동이라는 공간 안에 녹아 있는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생각조차 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잘 만들어진 유니크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사진을 찍고 돌아오면 그만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았다. 소제동의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유현민 소제창작촌 전 디렉터, 소제창작촌 이정민 8기 입주작가, 소제창작촌 2창수 8기 입주작가, ㈜윙윙 이흥일 커뮤니티 매니저가 함께했다. 소제창작촌 입주작가를 초대한 것은 그들이 소제동을 주제로 전시를 한 차례 벌였기 때문이다. 시선의 깊이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이흥일 매니저는 도시재생 관련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어 소제동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었다.
대전전통나래관 앞에 모여 소제동 곳곳을 돌아봤다. 소제동 골목, 골목마다 이미 문을 연 음식점과 카페가 있었고, 공사가 한창인 곳도 여러 곳이다. 공간마다 각각의 콘셉트를 가진 인테리어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부분의 가게가 외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부 인테리어에 힘을 쏟았다. 요즘 유행하는 카페에 자주 보이는 인테리어다. 
SNS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와 보고 싶을 법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쉬이 느껴볼 수 없는 오래된 풍경에 녹여낸 현대식 인테리어는 조화를 이룬 듯하지만, 왜인지 불편한 기분이 든다. 마을에 터줏대감으로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킨 ‘대창이용원’과 바로 인근에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들어선 ‘솔트’라는 공간을 함께 지켜보는 마음이 결코 편하지 않았다. 골목 곳곳에는 새롭게 단장한 카페들이 보이고, 주변으로 공사 현장 여럿이 보인다. 속을 텅 비운 채 지붕과 기둥만 남겨놓은 공간은 소제동의 지금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 이 자리에 작가님들을 모신 건,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소제동의 변화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서예요. 작가적 시선으로 봤을 때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지난 6월에 진행한 〈Flash Back〉 전시 준비를 하면서 한차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2창수 저는 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생존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삶의 방식이 사회나 자본 등의 거대한 힘으로 짧은 시간에 달라지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도시재생은 같은 조건에서 많은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주는 것이잖아요. 소제동에는 굳이 높은 아파트를 지을 것도 아니고, 최첨단 시설이 들어와서 인구를 늘리는 것도 아니면서 민간 자본이 들어와 이런 식으로 개발하는 건 자칫 원주민에겐 폭력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정민 소제동은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이렇게 빠르게 변하면 옛 모습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기억으로만 남겠죠. 소제동은 자료를 찾고, 공부할수록 재밌는 동네예요. 1927년에 메운 소제호 이야기도 그렇고요. 소제동은 전국에서 관사가 가장 많이 남아있을 정도로 역사적 가치도 있는 동네인데 급하게 변화하고 사라지는 모습이 안타깝더라고요. 
 
청년은 어떻게 생각해요? 오늘 함께 돌아보면서 어땠는지 궁금한데요.
 
이흥일 저는 원래 전라북도 정읍이 고향이고, 대학을 대전으로 오면서 대전에서 살고 있어요. 이번에 소제동 방문이 처음인데 소제동에 카페가 많이 생겼다는 건 친구들에게 들었어요. ㈜윙윙에서 일하면서 도시재생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데 카페가 과연 지역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저는 소제동을 돌아보면서 카페들보다 골목에 전시한 그림들이 훨씬 인상 깊었어요. 소제동에 실제로 사는 주민과 가게 모습을 스케치해 전시한 걸 보고 이런 스토리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랫동안 소제동에서 터를 잡고 계셨던 유현민 디렉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현민 감각적인 카페나 식당이 늘어나는 건 워낙 반복적이고, 많이 봐온 현상이기 때문에 새롭다는 느낌은 없어요. 결국은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기다릴 것인가의 문제인데, 지금 소제동에 들어온 팀들은 그저 빠르게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그런데 문화라는 것이 그렇게 단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지금 소제동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문화가 아니라 상업적인 행위일 뿐이죠. 얼마 전에 KBS ‘다큐멘터리 3일’을 소제동에서 촬영했어요. 카메라 감독이 할머니에게 소원이 뭐냐고 묻더라고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나 스물여덟 번 이사했고, 지금 여기가 좋으니까 끝까지 여기서 편하게 살게 해 주세요”라고 대답하시더라고요. 그 한마디로 지금 변화와 이곳에 사는 주민이 처한 운명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정민 저는 개인적으로 공공기관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소제동 관사를 민간에서 사드릴 때까지 왜 방치했는지가 의문이에요. 소제동은 문화예술 쪽으로도 재조명해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걸 활용해서 대전 문화예술의 기반을 마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제는 그런 의미가 다 사라진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유현민 이전에는 대전시에서도 관사 매입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었지만, 매입하지 못했어요. 근래에 매입하려고 했는데 이미 관사 대부분이 팔린 상황이라 매입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벌어진 거죠. 소제창작촌이 독립적으로 더욱 활발하게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다른 지역과 연결하고, 해외 예술가들과 네트워크 하는 문화예술 운동과 같은 움직임이 절실하게 필요해요. 이런 문화예술 운동의 힘이 커지면 관에서도 자연스럽게 대책을 마련하고 비전을 설정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2창수 작가는 대전에 자주 오시지만 청주에 사시잖아요? 외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요즘 소제동의 느낌은 어때요?
 
2창수 도지재생의 핵심 화두는 문화예요. 그런데 도시재생 이후에 그 도시에 남아있는 예술인은 거의 없어요. 상업적인 공간만 확보되기 때문이에요. 문화인은 경제력이 없거든요. 우리가 문화를 통해 도시재생을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10년 뒤쯤 되면 문화인은 도시 바깥으로 쫓겨나 있을 가능성이 커요. 지금도 반복적으로 보는 현상이죠. 수풀이요, 1평방미터 당 12종 이상이 있어야 자체 정화능력이 생긴다고 해요. 1평방미터에 열두 가지 식물이 있으면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 주면서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거든요. 도시 역시 마찬가지예요. 하나의 마을이 건강해지기 위해선 1~2%의 예술인, 1~2% 정치인 등등 수많은 작은 퍼센트가 모여서 100%를 만들어야 해요. 그런데 대전만 봐도 잘 사는 사람이 특정 동네에 살고 있고, 어려운 사람들이 특정 동네에 살고 있잖아요. 도시 계획이 잘못된 거예요.
하나의 마을 혹은 도시를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반드시 예술인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아 주는 핵심요소이자 소제동에서 실험해 봐야 할 문제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그 논의를 예술인 주거지 확보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년은 이런 변화에 핵심 소비자층이잖아요. 청년이 감각적인 공간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이흥일 제가 생각하기에 카페나 이런 감각적인 공간을 찾는 이유는 보기 좋아서도 있지만,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함도 있다고 생각해요. 유명한 곳을 내가 다녀왔다고 SNS를 통해 인증하는 것이 청년 사이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이제는 하나의 문화라고 할 수 있죠. 
유현민 그럼, 그런 감각적인 공간에 쉽게 싫증을 느끼나요?
이흥일 사실, 청년이 계속해서 찾는 곳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감각적인 카페가 아니라 문화가 있는 곳이에요. 전주의 한옥마을이나 부산에 옛날 교복을 입고 체험할 수 있는 초량이바구길 같은 곳들이요. 대전에도 다른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트렌디한 곳보다는 청년문화예술인이 모여 활동하는 하나의 구역이나 건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악, 전시 등 문화예술을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카페와는 다르게 한 번 소비하고 마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찾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익선동이 높은 임대료에도 아직까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천만 인구가 사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150만 인구인 대전에서 소제동을 익선동처럼 개발했을 때 지탱할 수 있을까요?
 
2창수 국가정책이 관광자원활성화에 힘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저는 가능하다고 봐요. 관광도시로 빛을 보기 위해선 커피만 마시고 떠나는 걸론 불가능하죠. 여기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이건 내국인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이제는 외국인을 상대로 관광자원을 활성화할 거예요. 개인적으론 대전역 인근이 다 외국인 간판으로 바뀌는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유현민 소제동에도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었어요. 소제동에 들어와 있는 팀들도 카페나 음식점만으로는 성공하긴 어렵다는 걸 아는 거죠.
 
더운 날씨에 오랫동안 소제동을 둘러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부탁드려요.
 
이정민 오늘 정말 더운 날이었지만, 소제동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어요. 많은 사람이 이런 변화를 한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흥일 앞으로 소제동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졌어요. 지금도 빈집이 굉장히 많은데, 감각적인 카페나 음식점들이 얼마나 사람을 모을지도 궁금해요. 개인적으로 커피나 음식을 소비하기 위한 문화보다는 청년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2창수 앞으로는 직업이 사라진다고 하잖아요. 1990년대 후반에 미래학자들이 2030년이 오면 1900년대에 있었던 직업 중 70%가 사라진다고 했어요.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건 일하는 사람 70%가 사라진다는 거죠. 그런데 현재의 도시재생은 소비 중심으로 변하고 있어요. 소제동 역시 마찬가지죠. 구매력을 가진 사람이 줄어들 텐데, 소비 중심으로 도시재생을 하는 건 문제 있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도시재생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산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유현민 소제창작촌도 8년째예요. 소제창작촌이 변화가 일렁이는 소제동에서 계속 가기 위해서는 집단의 퀄리티가 높아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건축, 미술 등 각 분야의 단체가 소제창작촌 공동 대표를 맡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훨씬 더 건강하고 의미 있는 일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 이지선 사진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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