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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9호] 이제, 자본은 본격적으로 공간을 소비한다
이제, 자본은
본격적으로
공간을 소비한다
도시재생 코스프레
소제동
1.
짧은 시간 이루어진 개발 결과물로서 ‘공간’은 효율성과 경제성을 중시하며 유사한 형태를 띤다. 한강의 기적이라 칭하는 시기부터 현재까지 이루어진 이런 개발 결과물을 바라보며, 더는 후진국에 살지 않는다는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끼는 시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면서 획일성을 띤 그 공간을 일상적으로 바라보고, 때로는 그 안에 머무르며 적잖은 지루함과 피로감을 느꼈다. 성장의 상징물 같았던 거대한 콘크리트 건축물 군락을 두고 ‘성냥갑 같다’라고 표현하며 비아냥거렸다. 공공 기관이 일부 구역, 일부 건축물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디자인 심의를 시작한 것이 이 즈음이 아닌가 싶다. 다른 국면으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팔릴 만한 것을 기가 막히게 찾아 독점하려는 ‘자본’이 지닌 ‘촉’과 제한 없는 ‘증식을 향한 욕망’은 그 어떤 영역보다 빠르게 이 변화를 눈치챘다. 일반적인 도시가 자아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오랜 시간이 쌓이며 독특한 느낌을 담은 ‘공간’에 눈길을 돌렸다. 최근에는 이런 행위에 긍정적으로 ‘재생’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한다. ‘재생’은 ‘투기’나 혹은 ‘무분별한 개발’이라는 수식보다 훨씬 긍정적이다.
최근 ‘촉’과 ‘증식을 향한 욕망’을 강하게 지닌 자본이 눈독을 들이며 소비하는 공간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도심 확장으로 택지개발이 이루어지고 공공기관이 대규모로 이전하며 몰락의 길을 걸었던 옛 도심이나 개발이 이루어진 구역 안팎으로 섬처럼 남은, 조붓한 골목길과 조그만 마당을 가진 주택단지 등은 자본이 노리는 좋은 투자 대상지로 변모한다.
이런 공간에 눈길을 던진 주체가 자본이 먼저는 아니었다. 앞서 눈길을 돌린 이들이 있었다. 작업 공간이 필요했던 예술가와 시대 흐름과 상관없이 자기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낸 가게 등 자기공간을 갖고 싶은 이들이었다. 이제 한참 전 이야기지만 홍대 앞이나 대학로가 대표적인 예다. 이것을 가능케 한 전제 조건은 편리함을 양보하며 얻을 수 있는 저렴한 임대료였다. 여기에 덧붙여 공간이 지닌 감성은 이런 이들과 잘 어울렸다. 예술가가 풀어낸 감성과 공간을 채운 소프트웨어에 저렴한 상품가는 뻔하게 일반적인 것을 싫어하는 이들을 끌어들였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아는 바와 같다. 결코 쉬운 낱말이 아님에도 우리나라 많이 이가 알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난다.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상품가도 높아지며 먹고 마시는 것 이외에 다양한 문화는 소멸한다. 이곳에서 돈 보다는 더 큰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다른 장르를 보여주었던 초기 파르티잔들은 모두 내몰렸다. 더 많은 자본이 더 큰 덩어리로 들어가면서 내용은 사라지고 그럴듯한 껍데기만 남는다.
새로 짓는 건축물에 아무리 디자인을 고려해서 외형적 변화를 꾀한다고 해도, 지금은 익숙하지 않은 공간 형태와 그 안에 스민 시간이 만들어낸 독특한 감성을 흉내내기는 어렵다. 새롭게 짓지 못하고 이미 있는 걸 가질 수밖에 없다. 잊지 말아야 한다. 자본은 제한 없는 증식을 욕망한다. 앞에 내세우는 모든 가치는 이에 복무할 뿐이다.
2.
때마침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 문화 전반을 뒤바꿔 버린다.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사진을 손쉽게 찍을 수 있고 이를 즉각적으로 불특정 다수와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생겼다. ‘SNS 활동’을 통한 ‘인증 욕구’를 풀어내는 행위가 일반적인 문화로 자리 잡는다. 주체적으로 놀이문화를 만들어내는데 익숙하지 않은 다수는 이 놀이를 따라하며 분리되거나 뒤쳐지고 싶지 않은 욕망을 충족한다. 소비활동을 통해 충족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욕망이다. 명품 소비 등 과거에도 유사한 형태가 있었지만 현재는 상대적 저비용으로 욕망 충족이 가능하다. ‘소확행’이라는, 날선 비평의식을 무력화시킬 시대 논리도 이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쇠락한 공간에 다시 많은 사람이 돈을 쓰고 인증하기 위해 다시 북적거리니 ‘재생’이라는 개념을 서슴없이 적용한다. 모두를 헷갈리게 만든다. ’도시 재생’에 관한 깊이 있는 사유 결과를 시민이 함께 공유하지 못하고 행정적으로 짧게 정의해버린 데서 오는 폐단이다.
“도시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도시재생법 2조에서 국가가 법적으로 내린 정의다.
경제, 사회, 환경 등 한 단위에서 고민해야 할 개념을 모두 포괄한 듯 보이지만 기존 개발 방향성과 크게 달라진 전향적 태도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경제가 맨 앞이다. 내용보다 이미지를 소비하는 ‘자본주의적 상상력’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상상이 가져온 문제들을 인지한다면, 이제 다른 상상이 필요하다. ‘인문학적 상상력’이다. ‘자본’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둔 ‘재생’이 필요하다. 한 번 저지른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앞선 사례가 수도 없이 많은데,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건 더는 실수가 아닌 우매함이다.
중요한 사례로 참고해야 할 곳은 서울 이태원동 ‘경리단길’이다. 경리단길은 전국에 ‘~단길’을 유행시킨 원조격이다. 망리단길과 황리단길 등 명칭을 만들어낸 데도 영향을 끼쳤다. 그랬던 경리단길에 사람들 발길이 뜸해지면서 빈 점포가 늘고, 임대 상인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식당을 경영한 방송인 홍석천 씨까지 경리단길 살리기에 나섰지만, 그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보도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넓은 개념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이라 볼 수도 있다. 지금 기준이라면 소위 ‘재생’이 이루어진 곳이었다. 재생한 곳이 다시 몰락하고 다시 재생 대상으로 전락한 현실이다. 그것도 무척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이미지만 소비해버리는 세태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미지는 반복적으로 소비하기에는 쉽게 질린다. 이미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묵직한 내공을 키우지 못하거나 키울 생각도 없이 공간을 쉽게 소비해버리고 만다. 자본은 소비해버릴 다음 공간을 찾아 적절한 시간에 이동하면 그만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타이밍일 뿐이다. 자본증식이 극대화된 그 순간 말이다.
익선동은 일제 강점기 한옥 밀집 지역이었다
3.
최근 대전에도 선화단길 혹은 선화수길, 봉리단길이라는 별칭이 생기고 소제동을 ‘대전의 익선동’이라 부르는 사람도 생겼다. 소제동 바로 옆인 신안동이나 우리 도시 대표 달동네로 꼽혔던 대동 역시 많은 관심을 끈다. 모두 앞서 말한 자본이 눈길을 돌린 대상지 조건을 갖춘 곳이다. 커피숍과 음식점 형태 상업시설이 하나둘 들어서고 주말이면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스마트폰을 눌러대며 욕망을 소비한다.
소제동을 수식하는 새 낱말로 갖다붙인 ‘익선동’이 궁금했다. 그곳은 평일임에도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과거 주거지역은 두세 사람이 빗겨 걸으려 해도 불편할 정도로 좁은 골목이 이어졌다. 그곳이 사람으로 넘쳐났다. 움직이는 사람 쉽게 보기 힘든 쇠락한 마을에서 이곳을 본다면 분명 혹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더군다나, 그 쇠락한 마을이 주거지역이 아니라 상업지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제 원주민은 서넛 집도 안 남았어요. 거의 모두 다 빠져나갔죠. 집값이 더 오를 거라고 기다리는 분이나 직접 영업을 하시는 분들 말고는 다 나간 것 같아요. 벌써부터 임대료가 워낙 많이 올라서 슬슬 버티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이건 좀 과하다는 얘기도 나오고요. 돈을 쓰지 않으면 즐겁지 않은 곳이잖아요.”
익선동 골목길 사랑방 같은 곳에서 만난 한 주민 얘기다. 사람이 모여 살던 주택지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익선동 한옥마을은 완벽하게 변모했다. 대부분 공간은 다양한 음식과 커피 등을 팔거나 소품을 파는 가게로 바뀌었다. 과거, 한옥 건물의 마당이었던 공간은 판매와 소비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바뀌었다. 우울한 여운이다. 익선동 골목 어귀에서 발견한 안내판 하나는 그 우울함을 더욱 증폭시켰다. 익선동 한옥마을과 기농 정세권 선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익선동은 원래 누동궁(樓洞宮)이라는 작은 궁이 있던 곳으로 왕족이 살았던 장소였습니다. 1920년대 경성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주거 공간이 부족했고 지금과 같은 한옥(당시 조선집)이 밀집한 곳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익선동을 개발한 기농 정세권 선생은 조선물산장려회를 이끌고 신간회와 조선어학회를 후원한 민족운동가로 1990년 건국훈장을 수여받은 애국자입니다. 익선동, 북촌과 같이 한옥집단 지구가 건설되면서 일본식 가옥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고 조선인들은 경성 외곽으로 쫓겨나지 않고 경성의 북촌(서대문안 청계천 이북지역)에 살 수 있었습니다. 현재 110채 한옥으로 구성된 익선동은 서민들의 100여 년 세월이 녹아 있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 중 하나로 콘크리트 빌딩 숲에 둘러싸여 ‘과거의 섬’을 이루고 있습니다.”
익선동은 안내판이 설명하는 역사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더는 아니었다. 고층빌딩 사이에 놓였던 ‘과거의 섬’은 과거도 현재도 아니며 미래일 수도 없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먹고 마시고 사야 할 공간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일제 강점기, 민족의식이 강한 정세권 선생이 지켜내 한옥마을을 형성하며 사람과 사람이 모여살던 주거지였던 곳이 말이다.
이곳 익선동을 돌아보며 드넓은 골프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초록빛 잔디밭이라 여길지 모르는 그 공간은 실제로는 잔디 단일종만 살아남은, 초록사막과 다름없다. 특정 계층에게 제공하는, 생태계 다양성이 완전하게 무너져버린 그런 공간이다.
소제동
4.
소제동을 ‘대전의 익선동’이라 부르는 이유가 전혀 근거없지 않다. 익선동을 개발한 글로우서울이 소제동에 들어와 재생을 주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7월에는 스타트업 회사 글로우서울이 60억 원을 유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회사 유정수 대표는 “투자유치로 대전을 제2의 익선동을 만들어 중부권의 핫플레이스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벤처스퀘어 7월 2일자 보도-
보도를 접한 후, 둘러본 소제동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둥실둥실 떠다녔다. 부산한 이야기를 정리하면, 소제동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와 옛 관사 건물을 비롯해 건물 수십 채를 사 들였고 이제는 건물을 사고 싶어도 사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그중 일부는 이미 음식점과 커피숍, 찻집 등으로 단장하고 손님을 맞았다. 인증 욕망을 풀어내는 각종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도 소제동 핫플레이스는 실시간으로 오른다. 주말에는 어지간한 식당과 커피숍은 자리 잡기가 어려울 정도다. 소위 핫플레이스 앞에는 여지없이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없는 사람들 풍경이 가득했다.
“요즘 소제동이 핫하다고 해서 왔어요.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가니까 저희도 한 번 와 봤어요. SNS에 인증도 해보고 싶고요. 일단 인테리어가 예쁘니까,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평일에 좀 한가할 때 다시 한 번 와보고 싶어요.”
주말 친구들과 모임을 가진 20대들 몇 명은 커피숍 몇 군데를 거치며 자리가 없어 당황한 참이었다. 오랜 세월 대전역 뒤에서 숨죽여 있던 마을이 지닌 독특한 감성과 애초 건축물에 부여한 기능을 완전히 달리하여 새롭게 기능을 부여하며 만들어낸 유니크한 인테리어는 발길을 끄는 데 분명 성공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단장을 끝마치고 문을 연 곳이 많지 않다. 평일 한낮 소제동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여전히 골목길 곳곳에 생활 흔적이 찐득하게 묻어난다. 개발을 마무리하면 100년 넘게 살이를 통해 쌓아온 흔적 중 무엇이 남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작지 않은 공간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짧은 시간에 인위적이고 획일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결코 자연스럽지는 않다. 공간은 절대로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100년 넘게 사람이 모여 살며 쌓아올린 감성을 몇 년 사이에 소비해 버리는 것은 또 다른 착취며 공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다양한 구성요소가 적절하게 존재하는 공간이 건강하다. 밥집, 찻집, 소품가게 뿐만 아니라 이발소, 슈퍼마켓, 과일가게, 도서관, 갤러리, 마을극장, 소공연장, 운동장, 공원, 주거공간 등이 적절하게 섞여 있어야 한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소비만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독점 공간을 만들고 자본 증식을 극대화하려는 행위를 ‘재생’이라 부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소제동이 소제동스럽게 적절한 시간을 두고 튼튼하게 재생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미 늦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