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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6호] "돈보다 사람이란다"
"돈보다
사람이란다"
구미집 이득순 씨
‘식당’이라는 표현보다는 ‘집’이라는 표현을 훨씬 많이 쓰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보다 공동체성이 좀 더 남아 있던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술을 마시는 곳도 밥을 먹는 곳도 ‘~집’이라고 불렀다. 손님을 맞는 주인도 가게를 찾은 손님도 ‘~집’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거래’보다는 ‘관계’라는 측면에서 접근했던 듯하다.
음식점 신고를 위해 관청에 갈 때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신분증이랑 챙길 것은 모두 챙겼는데, 정작 가게 이름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득순 씨는 서류를 앞에 두고 그제야 가게 이름을 생각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고향 ‘구미’였다. ‘구미집’이라고 가게 이름을 정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구미가 당긴다’라고 할 때 ‘구미’라는 낱말도 함께 떠올랐다. 음식점과 제법 잘 어울렸다. 그렇게 시작한 ‘구미집’은 시대에 맞춰 이름을 ‘구미식당’으로 바꿨지만 3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켰다.
“지금 식당 자리에서 전에는 옷 장사를 했어요. 저 옆에서 4년, 지금 자리에서 2년 더 하다가 그만두었지요.”
대전 서구 용문동 서우아파트 남쪽에 있는 ‘구미식당’은 주변 공간이 다양하게 바뀌는 동안 별다른 변화 없이 그 모습 그대로 머물렀다. 야트막한 단층 건물에 파란색 페인트로 지붕을 칠했다. 요즘 하늘과 무척 잘 어우러진다. 규격 없이 자유분방한 형태가 조형적으로도 무척 아름답다.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주인집이 있다. 주인 언니와 인연도 30년이 넘었다. 큰소리 내지 않고 친언니보다 더 가깝게 지낸다. 서로 욕심 부리지 않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때문이라고 이득순 씨는 생각한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변하기 전, 용문동에는 다양한 공장이 많았다. 주택지라기보다는 공장단지에 가까울 정도였다. 타올 공장도 있었고 직물 공장도 있었다. 서림타올, 대광타올, 문광타올, 삼영직물, 이화직물, 청해직물 등 지금도 줄줄 꿸 만큼 명료한 기억이다. 이득순 씨 남편도 결혼 초기 이화직물에 다녔다. 타올 공장과 직물 공장에 다니는 여공이 옷가게 주요 고객이었다.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공장이 하나둘 용문동을 떠나 신탄진과 금산 마전 쪽으로 옮겼다. 옷가게를 접으며 다른 곳으로 이사 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사 가려고 고민하는데 누가 와서 그러더라고요. 서대전우체국을 새로 짓는데 임시 사무실이 요 근처, 지금 테니스장이 들어선 곳으로 온다고. 그곳에 직원이 적지 않으니 밥집을 하면 괜찮을 거라고요. 그래서 식당을 한 거죠.”
장사는 제법 괜찮았다. 마침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유등천 수질 개선 공사도 시작했고 주변에 서우아파트를 짓는 등 공사장이 늘었다. 식당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공사 현장 식당 구실을 했다. 지금처럼 칼국수와 콩국수 등을 전문으로 하기 시작한 건 주변 개발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다.
마침, 가게 옆에는 국수 공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젖은 면을 가져다가 국수를 말아서 팔았다. 국수 공장이 문을 닫은 후에는 직접 밀가루를 반죽해서 면을 뽑는다.
“기계로는 납작하게 눌르기만 하고 수제비는 직접 손으로 뜯고 칼국수 면은 칼로 잘라서 만들어요. 이게 기계로 다 뽑아 쓰는 것하고는 맛이 달라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구미집에 가장 유명한 메뉴는 ‘콩국수’다. 직접 국산 콩을 사다가 삶아 주문이 들어오면 갈아서 낸다. 고소한 맛이 아주 일품이다. 가격도 저렴하다. 칼국수와 수제비 등은 5,000원이고 콩국수도 6,000원이다.
“우리 가게는 카드를 안 받아요. 카드를 받으면 사람을 더 써야 하는데, 카드를 안 받는 대신 그냥 저렴하게 파는 거지요. 주인집 언니가 가게세도 많이 안 받고요.”
카드도 안 받고 주차장도 없는데, 그렇게 불편함에도 찾아 주는 손님이 이득순 씨는 고맙다. 점심시간 전에 찾아간 식당에는 이른 시간부터 손님이 그득했다. 그 사이에 섞여 점심을 먹고 조용히 물러났다가 다시 찾았지만 여전히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잠깐씩 찾아오는 작은 틈을 이용해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주문이 들어온 콩국수를 만들면서 콩물을 넉넉하게 내어 맥주컵에 한 잔 따라 내준다. 참 고소하다. 손님으로 식당을 찾는 이 대부분은 아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선선하게 건네는 인사말에는 따스함이 묻어난다. 30년을 넘게 용문동에서 살고 장사를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쉬었나, 그리고 매일 문을 열었어요. 그런데 몇 년 전에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더라고요. 병원에 갔더니 과로라고, 일을 지금처럼 하면 안 된대요. 그래서 일요일은 쉬고 낮에도 3시부터 5시까지는 문을 닫아요.”
문을 그냥 닫아 두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잠근다. 안 잠그면 쉴 틈 없이 손님이 몰려든다. 일요일마다 쉬는 것도 큰마음 먹고 결정한 일이다. 쉬는 날을 늘리는 건 생각지도 않는다. 30년 동안 식당을 찾는 단골을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가게 옆 국수 공장이 문을 닫은 후부터는 직접 밀가루를 반죽해서 면을 뽑는다
“식당에 오는 사람은 거의 다 아는 사람이에요. 뜨내기 손님은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밥 다 먹으면 직접 상도 내주고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도 살갑게 하지요. 돈보다는 그런 게 더 재미있어요. 그러니 내가 먹는 음식보다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지요.”
두부두루치기 같은 술안주도 있고 술도 팔지만, 구미집에서 술 취한 사람을 보기는 쉽지 않다. 식당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키는 원칙이다. 다른 곳에서 술을 많이 마시고 온 사람에게는 술을 팔지 않고, 구미집에서도 술자리가 길어지고 양이 많다 싶으면 정리한다. 동네에서 얼굴을 걸고 장사를 하는데, 혹여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오래 살아서 그런지 동네 친구들이 좀 있어요. 어버이날에도 자식들이 멀리 있다고 이웃 친구들이 치킨 사 준다고 왔더라고요. 베트남에 있는 손녀가 전화해서 어버이날인데 용돈도 못 드리고 죄송하다고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돈보다 사람이란다’, 오래 살아서 그런지 동네에 정이 많이 들었어요. 사람도 정 들고. 그냥 조용해서 살기 좋아요.”
매일 식당에 매여 답답할 것도 같은데, 바깥에 돌아다니지는 않아도 그렇게 친구들이 있어 괜찮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에는 집안일 좀 하고 교회에 다녀온다. 나머지 시간 대부분은 집에서 편하게 쉰다. 일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까지는 가게 문을 닫지 않고 계속할 생각이다.
“긍정적으로 사는 게 좋아요. 누구를 원망하겠어요. 내가 타고난 복이고 업이다 생각하는 거지요. 점심에 장사 안 되면 저녁에 되니까요.”
구미집 문을 빼꼼히 열고는 수줍게 카메라 앞에 잠깐 섰다가 이내 가게 안으로 물러난다. 가게 문을 닫고 잠시 휴식에 들어갈 시간이다. 아직 상 위에 남은 반찬과 빈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를 마치면 잠깐이지만 쉴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손님과 이득순 씨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으면 ‘구미식당’보다 ‘구미집’이 식당 이름으로 훨씬 잘 어울린다. 고객이 아닌 이웃을 대상으로 음식을 차리는 일은 어쩌면 단순한 노동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구미집 김치가 정말 맛있다는 이야기를 빼먹었다.
글 사진 이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