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6호] 지역출판정책, 지역성장을 이끌다

지역출판정책,

지역성장을 이끌다

 

2019 고창한국지역도서전

 

 


 

 

1.
지역 몰락과 궤를 함께하는 허약한 지역출판 생태계는 비단 우리만 맞닥뜨린 문제는 아니었다. 많은 국가가 민, 관 차원에서 대책 마련에 나서는 걸 보면, 해결할 과제인 것만은 틀림없다.
‘2019 고창한국지역도서전’에서 열린 지역출판포럼에서 저널리즘학연구소 서보윤 연구위원과 제주대학교 이서현 교수, 신구대학교 김정명 교수가 나서 유럽과 미국, 일본 사례를 통해 우리 지역출판 생태계를 돌아볼 수 있는 시사점을 제시했다. 특별 초청한 미야기 카즈나로 씨도 오키나와 출판현황과 역사를 소개하며 우리나라 지역출판계와 활발한 교류를 제안했다. 오키나와에서 온 미야기 씨는 로컬 편집자이며 지역 신문에 원고를 게재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한다.

 

2.
포럼 첫 발제자로 나선 미야기 씨는 오키나와 출판 현황을 시대별로 정리해 발표했다. 1950년대 전후 암담한 오키나와 출판계에 파장을 일으킨 책은 《철의 폭풍》이었다. 오키나와타임즈에서 발간한 이 책은 군사 당국이나 전쟁사 전문가가 아닌, 의지와 상관없이 오키나와 전쟁 소용돌이에 놓였던 오키나와 주민 증언을 기반으로 정리한 전쟁기록이다. 미야기 씨는 “이후 출판한 전쟁기는 《철의 폭풍》 수법을 답습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훌륭한 책이었다”라고 소개했다. 이후 진보적인 지역 잡지 창간이 많았던 1960년대 미국점령기와 《컬러 오키나와 역사》와 같이 일러스트와 사진을 아끼지 않고 배치한 대형본 시대였던 1970년대를 소개했다. 값비싼 대형본 출판 붐이 일고 베스트셀러를 쏟아 낼 수 있었던 것은 인쇄기술 발달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미야기 씨는 “정치와 경제 이외에 오키나와 문화를 알고 싶고 알리고 싶다는 독자 및 저자 의향이 반영된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오키나와 관련 책이 늘고 출판사보다 편집자가 각광을 받는 시대를 연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는 본토에서 온 이주자가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오키나와 관련 서적을 출판하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소형 출판사와 함께 손쉽게 구하고 누구라도 읽을 수 있는 책도 늘었다. 미야기 씨는 이런 90년대 특징을 ‘오키나와 출판계의 다층화’라 칭했다. 2000년대는 오키나와 전쟁을 비롯한 예능 관련서와 민속, 역사, 자연,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다종다양한 책을 출판하기 시작한 것을 특징으로 꼽았다.
2019년에는 지역출판 활성화를 위해 지역출판사가 모인 ‘오키나와출판협회’를 설립했다. 그 전인 1994년에는 오키나와 소재 출판사 소속 편집자가 모여 ‘오키나와현산본네트워크’를 설립했다. 현산본은 현산품에서 따온 말로 일본 본토에서 출판해 오키나와에서 판매하는 서적과 구별해 오키나와에 있는 출판사가 만든 책을 일컫는다.
미야기 씨는 발제를 통해 독특한 역사 문화적 배경을 지닌 오키나와 지역출판 흐름을 정리하며, 지역 콘텐츠를 독자와 나누는 다양한 방식과 함께 우리나라 및 동아시아 지역과의 교류 필요성을 제안했다.

 

3.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저널리즘학연구소 서보윤 연구위원은 유럽 국가 중 세계 5대 출판시장에 속하는 독일, 영국, 프랑스 사례를 들며, 우리 지역출판 활성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했다.
독일은 출판 관련 산업이 베를린에 집중하지 않았고 국가가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해 개입하지도 않는다. 서보윤 연구위원은 “독일은 정부개입보다 관련 종사자 자구책 마련과 다양한 주체 간의 활발한 협업이 특징이다”라며 “우리 지역출판도 지역 단위 공동체를 정립해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풀어 갈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영국 지역출판사는 지역 출신 작가, 지역 배경 작품 등을 조명해 지역문화 창출에 기여하고 있으며 지역 서점과 도서관이 문화 활동 공간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각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가치를 창출하고 활성화하는 데 지역출판이 중요한 구성 요소로서 작용한다는 얘기였다. 서보윤 연구위원은 “지역출판이 서점, 도서관과 함께 지역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우리도 잠재력 있는 지역문화를 활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수도권집중화가 매우 심하고 정부 주도로 관련 정책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가장 유사한 점이 있었다. 반면, 가장 큰 차이는 각 산업내 참여자 간 역할을 분명히 하고 지역 단위에 역할을 부여해 협약 방식으로 함께 문제를 풀어 간다는 점이었다. 정부 기관 혹은 지자체가 따로 정책을 추진하거나 그마저도 정권이 바뀜에 따라 일관성 없이 수시로 바뀌는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분명히 있었다.
서보윤 연구위원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지역에서 쓰는 9,0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있으니, 이를 단순히 할당이나 신청·선발 방식이 아니라 지자체, 민간단체, 산업 내 참여자 간 상호 합의를 통해 추진하는 방식으로 지역출판 문제를 해결하고 진흥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4.
제주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이서현 교수는 미국 사례 발표를 통해 정부 직접 지원보다는 ‘로컬 퍼스트(Local First)’ 캠페인 기조 아래 주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는 경향성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출판 및 독서와 관련한 진흥 프로그램을 개별 조직보다는 출판사, 서점, 도서관, 비영리조직, 지역사회 구성원 등 다양한 주체가 협업을 통해 진행한다는 특성도 설명했다.
이서현 교수는 “출판 환경의 방점이 ‘출판사’ 혹은 ‘저자’ 중심에서 ‘독자’와 ‘독서 환경 조성’으로 옮겨가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신구대학교 김정명 교수는 일본 지자체에서 보여 준 ‘책’을 활용한 지역재생 전략을 소개했다. 일본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는 책마을을 만들기 위해 ‘책이 있는 삶의 거점’이라는 콘셉트를 기반으로 ‘책 읽는 사람, 책 쓰는 사람’을 늘리고 이를 통해 마을을 활성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외에도 일본 문부성은 10개 마을을 독서마을로 지정해 사업비를 지원한다.
김정명 교수는 “지역재생을 위해 축제나 관광에 관심을 두는 지자체가 많은데 책과 출판을 매개로 한 고려를 해 보면 지역문화 개발 및 지역민 의식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글 이용원 사진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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