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6호] 책을 만든다는 것은, '답게' 만드는 일

책을 만든다는 것은,

'답게' 만드는 일

 

2019 고창한국지역도서전

정병규 출판학교: 지역, 출판, 대화

 


 

 

정병규 디자이너 강연이 시작된 건 밴드 프롤로그의 축하공연이 있고 난 후였다.
각 지역에서 공수해 온 막걸리와 좋은 노래 덕에 공연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화합의 장이었다. 그 즐거움과 열기에 한껏 취한 채 책숲시간의숲으로 향했다. 물론 강연자인 정병규 디자이너 역시 공연 열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롭고 느슨한 분위기 탓에 지역도서전 셋째 날 밤이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지역, 출판, 대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참석자에게 미리 받은 질문을 토대로 강연이 이어졌다. 강연은 정병규 디자이너의 오랜 경험과 함께 현재 출판시장과 출판 디자인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정병규 디자이너는 ‘한국 북디자인의 개척자’라 불리며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북디자이너로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었다. ‘2019 고창한국지역도서전’에서는 정병규 디자이너의 타이포그래피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다. 
정병규 디자이너는 지역출판을 “현실을 보면 절망이지만 미래를 보면 거기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그가 표현한 지역출판의 의미가 한국 출판계를 다시금 바로 세울 수 있는 희망이라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한민국 출판시장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그가 뱉은 첫 마디는 “한국 출판계는 사기”였다. 1975년부터 출판계에 뛰어든 그가 긴 시간 현역으로 활동하며 목격한 출판시장의 변화는 결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았다. 정병규 디자이너는 “세상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한다.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밝은 면을 이야기할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좋은 말, 도움 될 만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 부디 단행본과 신문을 나란히 놓고 본문 잉크 농도를 비교해 보라”며 간곡히 부탁했다. 이는 지역에서 출판하는 이들이 분명 확인하고 인식해야 할 문제이다. 
“두 손 모아 비노니, 찾아보기 만들자.” 그가 꺼낸 한국 출판의 두 번째 문제점으로, 많은 책이 찾아보기가 없다고 말했다. 정병규 디자이너는 “인덱스 편집은 본문 디자인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출판사의 특징을 드러내는 찾아보기 디자인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학자들도 평생 동안 읽는 책은 10권 이내다. 그 외에는 몇 부분만 골라 읽을 책들이다”라고 말하며 인덱스 디자인의 중요성에 관해 언급했다. 
그는 책이 살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 있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이다. 정성이 부족하면 언제든 그 책은 배신을 한다”라고 말하며 “책을 만드는 것은, 책의 격을 만드는 일이다. 격이라는 것은 ‘폼 나게’가 아닌 ‘답게’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강연 말미에 생물학적 눈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문화적 눈을 가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어떤 감정이나 영혼 없이 눈에 보이는 것, 표면적인 것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각자의 생각과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늦은 밤 시작한 강연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끊임없이 이어졌다. 여러 갈래에 발을 걸친 채 이야기가 마구잡이로 흘렀다. 그러나 그 시간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 몇 갈래로 나뉜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좋은 책을 만드는 일’이라는 커다란 바다를 향해 가고 있었다.

 


글 이주연 사진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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