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6호] 그날의 일을 제 나름대로 해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날의 일을 

제 나름대로

해명하고 싶었습니다

 

2019 고창한국지역도서전

그림책 학교 권윤덕 작가

 

 

“주먹밥을 건네는 아주머니에게서 음료수를 내오는 가게 아저씨에게서 죽은 몸을 닦아 주는 여공에게서 헌혈을 기다리는 시민들 틈에서… 작은 씨앗 망울들이 눈부시도록 하얗게 광장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_본문 중에서

 


 

 

버들눈도서관에서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 학교 프로그램이 열렸다. 권 작가는 우리나라 1세대 그림책 작가로, 위안부, 제주4·3사건, 5·18민주화운동 등 우리나라가 겪은 아픈 날을 그림책에 담아냈다. 버들눈도서관에서 진행한 그림책 학교는 권 작가의 신작 《씩스틴》을 가지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다. 
행사를 시작하고 권윤덕 작가는 직접 《씩스틴》을 낭독했다. 나긋한 목소리와 그만의 호흡에 참가자들은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씩스틴》은 5·18민주화운동을 당시 계엄군의 총 M16 ‘씩스틴’의 입장에서 풀어낸다. 씩스틴이라는 이름으로 가상의, 그러나 현존하는 가해자가 이야기를 끌어 나간다. 그림책 속 씩스틴은 국가를 지킨다는 신념을 가지고 거리를 헤집지만, 시민의 계속되는 저항과 민주주의를 향한 이들의 열망에 그 굳건한 신념은 무너진다. 
권 작가는 새 작품을 고민하면서 5·18민주화운동은 다루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이미 그날을 다룬 많은 작품이 세상에 나왔기에 잘 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5·18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새 작품을 고민하던 시기에 광화문광장에서는 계속해서 촛불집회가 일어났어요. 제가 5월에 겪었던 시위는 화염병과 돌멩이를 내던지며 과격하게 민주주의를 외쳤는데 광장의 촛불집회는 한없이 평화롭고 폭력이 일어나는 것을 끊임없이 자제하며 민주주의를 외쳤잖아요. 그것을 보며 그럼 광주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싶었어요. 분명 5·18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한편에서는 과격한 시위가 어떻게 민주화 운동이냐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으면 빚을 지는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계엄군의 총, 씩스틴을 화자로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권 작가는 그림책 속 한 장면을 보여 주며 참가자에게 질문했다. ‘아이들이 폭력은 나쁜 것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참가자는 누구 하나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권 작가 역시 책을 만들며 가장 고민했던 것이 폭력에 대한 생각이었다. 
“물론 폭력은 나쁜 일이에요. 생명을 해치는 일이잖아요. 아이들에게 물으면 폭력은 나쁜 것이라고 대답해요. 폭력이 나쁜 것이라면, 그럼 이 장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이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여러분이라면 폭력은 나쁜 것이라고 해맑게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 이 장면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시위 장면을 그리며 권 작가는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무서움을 덜어내기 위해 그림을 순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의 붉은색을 옅게 하고 미화하는 것은 해명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한 마음에서 멀어지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붉게 칠하고 과격하게 그리며 처음으로 돌아갔다. 
“작품을 만들면서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해 봤어요. 우리가 폭력을 쓰면 법의 재판을 받죠? 그리고 그 판단을 우리는 국가에게 위임했죠. 그런데 국가라고 하는 것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 자국민에게 폭력을 휘둘렀을 때, 우리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민주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저는 정의로운 폭력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전에 독립운동을 할 때도 당연히 무장을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정의로운 폭력이라는 것은 국가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인 거죠.”

 


글 사진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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