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7호] 원도심, 변화를 목도하며 넋두리하다

원도심,

변화를 목도하며 넋두리하다

 


 

현대식당 자리도 공사가 한창이다

옛 주택을 고쳐 사용한 식당은 다시 볼 수 없다

 

흔히,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 사이 중앙로 1.1Km 구간을 중심으로 좌우를 원도심이라 칭한다. 대전역 주변 소제동과 인동, 원동, 옛 충남도 관사촌이 있던 테미까지도 확장하지만 중심공간은 여하튼 그렇다. 그 사이에 은행동과 대흥동, 선화동이 물리적으로 원도심 핵심 공간이라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연구 끝에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토대로 정서적 정의를 하다 보니 이렇게 조심스럽다.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인다. 원도심활성화정책을 통해 막대한 행정, 재정 자원을 투여했을 때부터다. 그 여파인지 모르겠지만 본격적인 활성화 정책을 펼친 후 10여 년이 흐른 지금, 물리적인 공간 변화로 그 결과를 수렴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은 골목 안에 오랜 세월을 쌓아 올린 단독 주택이나 옛 상가건물이 사라지고 다세대 주택이나 주상 복합 건축물이 들어서거나 업종, 인테리어가 변하는 것부터 대규모 건축 공사나 개발 사업 등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대전 중구 대흥동에 은행나무길이라고 부르던 골목이 있다.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 가을에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다가 강한 바람에 흩날리면, 정말이지 예뻤다. 중교로에서 은행나무길로 들어서는 초입에 고미술품을 파는 ‘백제당’이라는 건물이 있었는데 최근 사라졌다. 매물로 나온 것을 보고 ‘참 갖고 싶은 건물’이라고 생각했는데 허망하게 자취를 감췄다. 그 백제당 건물은 노란 은행잎을 닮아 외관이 따스했다. 현관 앞에 내놓은 오래된 물건이 앞을 지날 때마다 눈길을 붙잡곤 했다. 무슨 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가게 안에 들어갔던 추억도 있다. 조명이 어둡지 않았는데 가게 안을 채운 고미술품이 빛을 흡수하며 해질녘 풍광처럼 채도를 차분하게 가라앉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공터만 남았다. 건물이 무너진 직후 드러난 맨땅을 보면 묘한 ‘피로감’을 느낀다. 곧바로 건축이 이어지지 않고 1년, 2년 묵어서야 비로소 땅이 지닌 본연의 느낌이 묻어난다. 땅과 태양빛이 적절하게 교류하며 뒤섞여야 하는데 건물이 땅 위에 올라서면서 그런 교류를 차단해 그런지도 모르겠다. 땅의 표피를 구성하는 것은 내려앉아 쌓이는 햇볕인 모양이다. 흙으로 빚은 도자기 표면에 유약을 바르는 것처럼 말이다. 옛 백제당 옆에 불 때던 아궁이 흔적과 다락 흔적을 간직한 ‘내집’ 식당은 여전히 남아 영업을 한다. 뜻하지 않게 건물 주변에 공터가 생겨 버리니 건물이 더욱 도드라진다. 갑작스런 스포트라이트에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까까머리 중학생을 보는 듯하다. 같은 골목 ‘부여슈퍼’ 자리 2층 건물도 남았다. 주변에 제법 규모가 큰 다세대 주택 여러 채가 들어왔지만 용케 남아 자리를 지킨다. 전달할 내용만 정확하게 적은 부여슈퍼라는 간판도 떼지 않았다. 기억의 흔적이다. 은행나무길 지척에 우리들공원 쪽으로 움직이다가 골목에 접어들면 ‘현대식당’이 있다. 이웃한 정식당과 쌍벽을 이루며 닭볶음탕을 잘하는 집으로 유명하다. 그곳도 건물이 온데간데없고 회색빛 콘크리트 기초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식당 사장님은 걱정할 단골손님을 위해 친절하게 현수막을 걸었다. “현대식당이 새단장합니다. 9월초 만나요.” 아무래도 현대식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현대식 건물로 탈바꿈할 모양이다. 옛날 현대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방이 있었다. 1차로 손님을 받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또 방이 있었다. 손님이 꽉 차 넘치거나 단체로 예약을 하면 들어갈 수 있는 방이었다. 그 안채에서는 중정이 보였다. 식당을 하기 전에 옛날 중정이 있는 주택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정이 참 운치 있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쌓여 만들어 낸 느낌이었다. 사라질 줄 알았다면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건데, 안타깝다. 햇비 커피숍을 운영하다가 후에 이화수육개장이라는 식당이 있던 곳과 현대식당 남쪽으로 이웃했던 개인주택을 함께 터서 20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이 올라서는 공사가 한창이다. 건물이름을 ‘센텀시티’로 지은 모양이다. 공사 가림막 시설 외벽에 친절하게도 사업 목적과 준공 후 효과를 밝혀 적었다. 내용을 보니, 주거공간 299세대와 근린상가 24개 점포가 공존하는 건물로 대흥동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이란다. 지하 1층부터 지하 4층까지 185대를 수용하는 주차공간이 들어서고 1,000여 명이 주거공간에 입주해 지역상권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효과를 내다보았다. 계획에 따르면, 공사는 2021년 5월까지다. 2년도 채 안 남았다. 이에 앞서 계룡문고와 NGO지원센터가 들어선 빌딩 길 건너편 대흥동쪽으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섰다. ‘메가박스’다. 이미 영화관은 개관해 손님을 맞는다. 내부 상가도 열심히 분양 홍보 중이다. 최근에는 메가시티 낙찰 소식도 들려온다. 한때 올리비아백화점이라고도 불렀던 이 건물은 대흥동 대표적 흉물 중 하나였다. 옛날에는 동백사거리, 지금은 중앙로사거리라 부르는 곳 모퉁이에 있다. 워낙 규모가 큰 건물이니 한눈에 들어온다. 공사를 하다가 중단한 상태로 10년 넘게 방치했다. 공사 초반 자금 조달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늘 자금이 문제다. 한때 공매를 통해 낙찰받은 그룹이 있었으나 잔금 처리 과정에서 어그러졌다. 역시 자금이 문제다. 결국, 다시 공매에 나서 이번 6월에 낙찰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최초 감정가에서 거의 절반이 떨어진 가격이었다. 이번에는 잔금처리까지 잘 이루어지고 공사를 마무리한 후 애초 계획처럼 상가가 그득 차 주변이 사람으로 넘쳐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으능정이에서 중앙로를 건너면 은행1구역이다. 이곳도 도시환경정비사업 시행 인가를 받은 것은 메가시티가 공사를 시작한 때와 비슷하다. 2008년이었다. 대전역세권 대표 사업으로 장밋빛 청사진을 담은 조감도를 선보였던 곳이다. 부동산 침체 등 수익성 악화로 사업 시행이 중단된 채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끌어오다가 다시 사업 재개 움직임이 있는 모양이다. 주거공간과 상업공간 비율을 조정하는 조례를 대전시가 통과시키면서 수익성이 개선되어 다시 사업을 재개하려는 활발한 움직임을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1차로 대규모 건축물도 준공하고 정비사업도 마무리하면 그 자체로 경관에 적잖은 변화를 줄 것이다. 이런 변화가 견인하는 2차 변화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도시는 유기체다. 상황과 조건에 맞게 끊임없이 소멸생성하며 변화한다. 시민이 인위적으로 개입할 여지는 원칙적으로 없다. 사유재산에 관한 완벽한 권리를 보장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최근 이런 원칙이 지닌 한계와 문제를 인식하며 일부에서는 제도 개선이나 대화를 통한 합의 등으로 변화를 모색하기도 한다. 일부에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는 일정 기간 전세금 동결, 대형 마켓에 들어서는 예술 마켓 등이 사례다. 이런 시도는 시민역량 강화를 전제로 한다. 제도 개선에 합의하고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려는 시도는 이해관계자가 비등한 수준의 힘을 가졌을 때 가능하다. 이 힘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하는 영역이다. 시민이 단순 소비자 위치를 벗어나 적극적으로 도시 미래를 상상하는 주체로 서야 한다. 경관에 큰 충격을 주며 변화를 견인하는 건축은 외관일 뿐이다. 그 안에 어떤 콘텐츠를 담을 것인가는 철저하게 자본 논리이다. 의사결정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이해 관계자 중 한 축은 분명 시민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딱딱한 건축물 안에 따뜻한 숨을 불어넣어 줄 콘텐츠 영역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멀티플렉스영화관을 전면에 내세운 건축물 안에 건물주와 공공기관, 시민이 함께 개입해 만드는 마을영화관이 들어서고 다시 건축을 재개할 것으로 보이는 메가시티나 센텀시티 안에 공공기관과 건축주, 민간영역이 힘을 모아 조성하는 문화예술이나 커뮤니티 공간이 들어서는 상상을 해 본다. 은행1구역 역시 10년 전 계획했던 수익성에만 기반한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도시형 마을을 담아낼 수 있는 인문학적 고려가 있기를 희망한다. 이제 다른 시대가 눈앞에 도래했으니 다른 사고와 접근이 필요할 때다. 원도심이 지닌 경관적 차별성과 이를 기반으로 한 경쟁력을 논하기에는 변화의 급류가 너무 거세다. 그 옛날 이집트 사람들이 나일강을 달랬던 것처럼 현명한 개입이 필요할 때다. 넋두리이기에 문단 나누기를 하지 않았다. 계획한 불편함이다.

 


글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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