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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4호] 기록으로 만나는 그때 그 시간
기록으로 만나는
그때 그 시간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전
<1919 대전감옥소> 콜로키움
1919년 3월 1일 서울,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선천, 원산까지 7개 도시에서 독립선언식과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천도교, 기독교, 불교 지도자들이 민족대표 33인 이름으로 발표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3월 1일 이후로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가 일어났고, 3월 중순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지 꼬박 100년이 흘렀다.
대전시립박물관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특별전 <1919 대전감옥소>를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선보였다.
대전감옥소는 1919년 5월 일제에 의해 설치되었다. 일제는 대전이 경부선과 호남선을 교차해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대전에 감옥을 신설했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현재 대전 중구 중촌동 일대에는 총면적 3만 4,000평, 구내면적 1만 4,000평 규모의 감옥소가 있었다. 1932년 대전감옥소에서 대전형무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번 특별전은 3·1운동이 있었던 해에 세워진 대전감옥소의 기록과 흔적을 모은 일종의 ‘아카이브’이다. 일제 강점기 대전형무소의 규모와 시설 등을 알아볼 수 있는 모형과 당시 제작된 건축 도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등을 소개한다.
지난 3월 1일 대전근현대사전시관 기획전시실4에서는 특별전 기념 콜로키움이 열렸다. 이번 콜로키움은 대전시립박물관 고윤수 학예연구사와 대전광역시 안준호 학예연구사가 진행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전
<1919 대전감옥소> 전시 포스터
고윤수 학예사는 ‘수형기록카드로 본 대전형무소’라는 주제로 이번 전시를 소개했다.
“일제 강점기 수형기록카드는 총 네 가지 양식이 있습니다. 대전형무소 수형기록카드의 경우 시기상 1930년대 전후에 도입된 양식의 카드가 가장 많습니다. 앞면에는 사진이 붙어 있고, 뒷면에는 개인정보, 수형 사실 등 자세한 정보가 적혀 있습니다.”
이제는 수형기록카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꼭 독립운동을 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절도, 보안법 위반, 의사 사칭 위반 등 수감된 이유도 다양하고, 재감된 사람도 많다. 특별하게 독립운동을 하거나 민족적 의식을 가지고 일제에 항거하지 않았더라도 수감된 사람도 있다. 고윤수 학예사는 “현재의 관점에서 투사해 그들을 이해하고,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안준호 학예사의 콜로키움 주제는 ‘건축도면으로 보는 대전감옥소’였다. 안준호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를 위해 대전형무소 도면을 분석했다. 안준호 학예사에 따르면 “대전형무소는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건축물이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획기적인 건물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며 건축도면을 통해 대전형무소 곳곳을 설명했다.
대전형무소의 면면을 건축도면을 통해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건축도면에는 일본어뿐 아니라 영어 등 외국어가 쓰여 있다. 건축 당시 유학을 다녀왔던 사람이 참여했을 수 있겠다는 추측을 해 본다.
취사장, 목욕탕, 간수 휴게소, 1인 독방 등 다양한 건축도면이 남아 있다. 그간 가늠하기 어려웠던 대전형무소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콜로키움이 마무리되고 고윤수 학예연구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전시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준비했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잘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1919 대전감옥소>는 다가오는 6월 30일까지 진행한다.
글 사진 이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