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4호] 사랑한다는 것은 환희를 완벽하게 알고서 파멸하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환희를 완벽하게 알고서

파멸하는 것?

 

로와의 책탐

《결혼의 변화》, 산도르 마라이

 

 


 

이보게, 사랑의 시간도 죽음처럼 시계나 달력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 노여워하거나 아니면 담담하게 서로 헤어지고 다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네. … 아니면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탓에 함께 붙어 지내면서 서로의 생명력과 생활력을 앗아간다네. 병이 들고 서로 상대방을 죽이고 숨을 거둔다네. 그렇다면 눈을 감는 최후의 순간에는 과연 이해하는가? 서로에게서 뭘 원했던가? (355쪽) 

 

멀리서 구경할 때는 재밌어 보여도 막상 직접 겪어 보면 일생에 한 번도 많은 것 같은 경험이 있다. 콜라에 밥 말아 먹기, 연애 선수와 사귀어 보기, 주식에 전 재산 몰빵하기 같은. 결혼은 어떨까? 많이들 분위기에 휩쓸려 한 번쯤 하고, 누군가는 결단코 하지 않고, 누군가는 여러 번 하는 그것. 결혼을 해 본 사람일수록 더 열렬한 비혼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나는, 결혼이란 “어쩔 도리가 없는 탓에 붙어 지내며 서로의 생명력과 생활력을 앗아가는 것”이라는 적나라한 표현을 소설에서 발견했을 때 풉, 하며 마시던 커피를 뿜고 말았다. ‘이런 팩폭이 있나!’ 더군다나 이 대사가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한 캐릭터가 내뱉은 말이라 더더욱. 책 제목이 《결혼의 변화》라니, 결혼식장에서 시작해서 가정법원에서 끝나는, 용두사미의 과정을 보여 주려나?

 

《결혼의 변화》는 사랑에 실패한 세 남녀-한 남자와 두 명의 전 부인들-의 하소연을 엮은 소설이다. 세 개의 장마다 화자가 다른데, 각각 자신의 막역한 한 명의 친구에게 들어 달라며 쏟아 붓는 독백을 그저 이어붙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독자는 마치 화자가 마주앉아 말하고 있기라도 하듯, 중얼중얼 끝도 없이 풀어놓는 이야기에 하염없이 빠져들게 된다. 전 부인1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다 들어주고 나면 그녀를 가슴 아프게 했던 전남편의 하소연이, 그게 끝나고 나면 둘 사이를 갈라놓았던 전 부인2가 차례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더니 각자의 사연을 듣다 보면 비난할 대상은 없고 오히려 셋 모두의 인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로에게 주는 상처, 갈등, 결국 누구 하나 승자가 되지 못한 사랑 게임. 그렇게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내가 ‘들은’ 이야기들이 두터운 책 두 권, 합하면 685쪽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이렇게 길었던가?’ 하고 말이다. 그만큼 재미있게 썼다. 하긴, 원래 남의 연애 이야기, 그것도 잘 나가는 듯하다가 처참히 깨진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는 법 아니던가.
첫 독백자는 열정적 사랑의 화신이자 남주인공 페터의 첫 부인, 일롱카다. 착하고 정숙한 여자. 그녀는 “온전한 한 사람이 필요하다(134쪽)”라며 남편 페터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모두 가지고 싶어 했다. 그녀는 그게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사랑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는 없다(134쪽)”면서. 나도 그랬듯 첫사랑이나 풋사랑에서는 흔히들 그러하고, 바로 그런 점이 상대방을 질식시켜 헤어지곤 한다. ‘너뿐이야’라는 주문에 서로를 속박하며 옭아매는 것. 그러나 마법은 시간이 지나면 풀리고 눈꺼풀에 덮인 콩깍지도 말라비틀어져 떨어져 버리는 순간이 온다. 남편 페터를 12년간이나 기다려 온 다른 여인이 있다는 사실, 그녀의 물건인 보라색 끈 한 조각은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그의 지갑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음을 알게 된 때가 그랬다. 페터는 지갑 속의 돈은 부인에게 주저 없이 꺼내 줄지언정 그녀 사진은 지갑 속에 가지고 다니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여기서 일롱카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다. 페터의 마음을 점령하기로. 그녀의 야심을 고해소에서 전해 들은 늙은 신부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언제나 상대방의 영혼을 빼앗으려 하는데, 그것은 죄입니다. … 누군가가 우리에게 자진하여 내놓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죄인입니다.(102쪽)” 그런 사랑은 이기심과 허영심일 뿐이라고. 
‘사랑’에 빠진 그녀가 그런 조언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페터의 영혼을 얻으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끝에 그녀가 얻은 것은 “지상에도 천상에도 … 오직 나한테만 맞는 유일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234쪽)”라는, 씁쓸한 사랑의 진리, 그리고 전남편 페터가 매달 초 입금해 주는 생활비가 전부다. 단 한 번의 열정적 사랑에 인생을 모두 태워 버리고, 숨 쉬고는 있지만 살아 있지는 않은 듯한 삶을 유지하는 일롱카. 카페 문 닫을 때까지 그녀의 하소연을 들어주던 친구는 얼마 후 페터에게 접근해서 하룻밤을 함께 보낸 후 일롱카의 이야기를 페터에게 전한다. (헐. 옛 남자 얘기는 여자 친구에게 너무 구체적으로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 하더라도 ‘A씨’라 할 일이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남자’라고 알려 줘서는 안 될 듯. … 그건 그렇고, 친구의 옛 남자와 섹스하는 기분은 대체 어떤 기분일까?)
두 번째 독백자는 페터. 부유한 귀족이자 모범시민인 그에게 “교육이 체험이 아닌 정보(257쪽)”인 소시민 출신 일롱카는 처음부터 왠지 2% 부족하게 느껴졌다. 같이 살면 살수록 느껴지는 “미묘한 작은 차이들(256쪽)”, 게다가 그녀의 과도한 애정. 숨이 막혀 오던 중 페터 지갑 속의 보라색 끈 조각을 일롱카가 발견하면서 페터가 십수 년 전에 애써 봉인했던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서 잠자는 괴물(321쪽)”, 즉 감정과 본능이 다시 기지개를 켰다. 부활한 그것은 저항의 의지도 능력도 사라진 페터를 한 사람에게 굴복시키고야 만다. 세 번째 독백자인 유디트에게 말이다. 일롱카와의 이혼과 유디트와의 재혼은 시간문제였다. 
하녀 출신 유디트는 “본능이 더 막강한 탓에 지성은 참 별 볼일 없다(670쪽)”는 사실을 딱히 배우지 않았어도 몸으로 알고 실천한 사람이었다. ‘작은 주인님’을 결국 남편으로 만들기에 성공했지 않나. 그렇다면 유디트는 페터를 사랑했을까? 그들도 서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몇 년간 살아보기 전까지는. 결혼하기까지 무려 12년을 기다린 사랑이라니, 대단한 열정이 아닌가? 하지만 유디트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금, 이탈리아 로마의 어느 호텔의 침대 위에 어느 남자와 함께 누워 지난날을 회상하는 중이다. 페터의 전 부인2로서 그녀는 이렇게 고백한다. “일평생 심한 갈증에 시달렸는데 막상 갈증을 해소할 길이 열렸을 때는 혐오감이 일었다(475쪽)”라고. 그녀는 신분 상승의 의지와 사랑을 착각했고, 그것은 그녀조차도 깨닫지 못했던 것.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알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녀가 “침대 속에서도, 침대 밖에서도 시중을 들었음(448쪽)”을 페터가 알아차린 후 그들의 이혼 역시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세 남녀는 사랑에 실패했다. 셋 중 가장 결혼 경험치가 높은 페터가 캐릭터 대표로서 결혼이란 이런 것이라 말한다.
  

짝을 짓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도움을 받아 종족 보존을 위해 세상을 새롭게 다지길 요구하는 법칙, 사랑의 입김을 통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커다란 맹목적인 법칙에 단순히 복종했을 뿐일세. … 더없이 불쌍한 존재, 우리들은 과연 스스로를 위해 무엇을 바랐던가?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주었으며 서로에게서 무엇을 받았는가? (356쪽) 

 

페터는 또한 이런 이야기도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환희를 완벽하게 알고서 파멸하는 것을 뜻하네.(435쪽)” 그래서 “진실한 사랑은 언제나 아주 위험하다네(430쪽)”라고. 그래서 페터는 용기 없는 사랑을 택했고, 사랑한 듯 사랑 없는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겪고 사랑에 실패했다. 알면 뭐하나, 삶이라는 건 맛보기 체험학습만으로는 결코 만족스럽게 채워지지 않는 것을. 사랑은 결혼이라는 강렬한 햇빛에 스러져 버릴 무지개이고 열정적 사랑은 유통기한이 짧은 것을.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발견했을 때마다 내가 그래 왔듯이, 이번 책도 나는 저자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찾아보았다. 이번 작가도 1989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다. 어째서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작가들이 취향인지 모르겠다. 저자는 무려 120년 전인 1900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카사 지역(지금은 슬로바키아) 귀족으로 태어난 산도르 마라이(Sándor Márai). 많은 유럽 지식인들이 그랬듯, 마라이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 후에 조국을 떠났고 1948년부터는 미국에 정착한 망명 작가다. 그는 사실 ‘발굴된’ 작가에 가깝다. 그가 남긴 46권의 책은 헝가리어만 쓰였기에, 살아생전에는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카프카에 관해 최초로 평론을 남긴 평론가’ 정도였을 뿐. 
마라이가 1942년에 헝가리어로 출판했던 소설 《열정》이 무려 50년 뒤이자 작가 사후인 1992년에야 프랑스어로 번역된 후에는 작가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결혼의 변화》를 비롯해서 《유언》, 《이혼 전야》 등 그의 다른 작품이 줄줄이 발굴되고 번역되어 읽혔고, 세계인의 마음을 파고들었으며, 지금은 “20세기 최고의 유럽 작가”로 불리고 있다. 정작 작가는 1986년에 부인이 타계하고 그 후 양아들도 세상을 떠난 1989년, 권총으로 스스로의 삶을 정리했다. 그에게는 영원한 타지로 인식되었던 미국 샌디에고에서, 혼자서. “나한테는 혼자서 죽을 권리가 있어. … 그것은 커다란 권리일세.(390쪽)”라는 페터의 목소리에 작가 산도르 마라이의 의지가 엿보인다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마라이는 다른 소설 《열정》도 사랑과 결혼, 열정을 이야기한다. 《열정》에는 한 여자와 두 남자가 등장한다. 친구의 부인을 사랑한 한 남자, 영혼을 공유한 줄로 알았던 친구와 사랑하는 부인이 서로 사랑에 빠져 자신을 배신해 왔었음을 알게 된 남자, 그리고 두 남자를 모두 사랑한 여자. 두 남자의 우정, 남녀의 사랑, 배반, 도망쳐 버린 남자와 남겨진 남자, 그리고 무려 41년의 기다림. 과연 누가 승자고 누가 패자이며 누가 배신당한 걸까. 《결혼의 변화》처럼 독백에 가까운 대사가 이어지는 《열정》에서는 사랑과 정열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 엿보인다.

 
말해주게. 어느 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열정》, 273쪽)   

 

인간의 심리와 숨겨진 욕망을 이토록 예리하게 드러내던 소설가의 작품이 더는 없으리라는 사실이 아쉽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아무리 고상한 체 해 봐야 결국 욕망 덩어리에 불과하고, 결혼이란 게 서로를 속박만 한다는 사실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정말이지 “인간은 지옥의 끓는 물 속에 떨어져 부글부글 끓다가도 어느 날 천상의 도움을 받아 다시 살아나게 되면, 잠시 눈을 깜박인 다음 옛날에 하던 짓을 그대로 계속할(576쪽)”것만 같다. 결혼, 이혼, 사랑의 갈구, 그리고 되풀이되는 사랑의 실패라는 바보짓도 말이다.

 


글 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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