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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4호] 발견되고 싶다
발견되고
싶다
발견되고 싶다
세계에는 뜯어먹을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배웠어
사람들의 주머니처럼
- 변선우, <태어나기를 피에로> 중에서
변선우 시인은 스물일곱이었다. 우선은 그 점이 부러웠다. 게다가 그는 스물여섯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 점도 부러웠다. 나도 10년 전에는 스물일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물일곱과 전혀 무관하다. 인생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는 걸 알겠다. 인터뷰를 하면서 젊은 시인에게 억세게 운이 좋다고 말해 놓고, 다시 생각해 보니 왜 그랬나 싶다. 운 아니다. 그건 그냥 그가 시인이라서 절로 그리 되었으며, 시인이란 오래 혼자 노래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는 얼마나 오래 노래를 불렀을까. 그러니까 그의 시가 우리에게 발견되어진 건 운이 아니라, 운명이다.
변선우 시인을 만나기 전에 《2018 신춘문예 당선시집》을 주문했다. 그 책에 그의 시 여섯 편이 실려 있다. 그중 시 〈복도〉가 2018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그의 블로그 ‘변상자’에 등단 이야기를 실어 두었다.
“블로그는 등단하고 나서 하기 시작했어요. 대전에 살다 보니 열패감이 있었어요. 항상 발견되고 싶었어요.”
‘열패감’, 낯익은 단어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도시, 대전. 대전은 모래에 덮인 도시처럼 숨겨진 느낌이다. 그의 말대로 바람이 불어 모래가 쓸려 가고 난 자리에 발견된 ‘무엇’처럼 시와 함께 변선우 시인은 나타났다.
그의 시와 산문을 만날 수 있는 블로그를 언제부터 시작했냐는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덕분에 시와 산문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산문은 재미있었다. 재치가 넘치고 활달한 산문은 시처럼 보여서, 가끔 블로그 카테고리로 다시 돌아가 보곤 했다. 카테고리를 확인하고서야 산문이구나, 한다.
아직 시집을 내기 전이라 변선우 시인의 시를 읽고 싶다면 이 블로그를 찾으면 된다.
“발표된 시를 블로그에 올려요. 일상다반사를 시로 쓸 수 있어요. 일상에서 나눈 대화도 시로 쓸 수 있죠.”
그는 영상을 찍듯이 시를 쓴다고 했다. 장면을 엮는 듯이, 첫 문장이 떠오르면 마지막 문장이 따라오게끔 쓴다.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학생이었지만 처음부터 시인을 꿈꾼 건 아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손미 시인의 수업을 들었다. 시 합평 시간에 ‘고루하다’ 등등의 악평을 받고 분에 못 이겼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서너 시간씩 시를 쓰기 시작했다.
강제로, 조금은 수줍게 테이블 위에 놓인
시인의 손을 야만스럽게 사진기로 찍어 대며,
손과 시의 상관 관계는 무엇일까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칭찬 받고 싶었어요.”
그는 솔직했다. 칭찬 받고 싶은 마음이 때론 전부니까. 사람을 움직이는 건 그 마음 하나인지도 모른다. 신춘문예가 전부는 아니지만, 여튼 괜찮은 칭찬임은 분명하다. 등단 후에 할머니는 한의원에 가고, 은행에 갈 때마다 우리 손자가 신춘문예 시인이라고 자랑을 한다. 일부러 그를 은행에 데려가기도 한다. 그가 글을 쓰는 걸 부모님은 그렇게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등단 소식을 듣고 조퇴를 한 아버지는 그를 안고 눈물을 보이셨다. 가까이 사는 작은아버지는 그날 케이크를 사 들고 집에 왔다. 누나의 결혼식에 축시를 읽었을 때 가족들이 감동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가족들이 ‘변선우 시인’을 발견했구나 싶었다.
그는 시 청탁이 들어오면 “은혜 갚은 까치처럼” 다 원고를 보내 주는 편이다. 서른일곱이 되면 어떤 모습일 거 같냐는 질문에 그는 까치처럼 대답했다.
“시집 두 권을 일단 냈을 거 같아요. 상도 하나 받았을 거 같고요.(웃음) 일단 계속 쓰고 싶어요. 열 살 단위로, 시집을 내는 게 목표예요.”
다부진 대답이었다.
도마동에 내내 살고 있는 그는 대전 토박이이다. 유천초등학교, 대신중학교, 대신고등학교, 한남대 학부와 대학원까지. 뿌리공원과 대청댐에 소풍을 가곤 했단다. 대전을 떠나고 싶지 않냐는 말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이곳이나 그곳이나 다르지 않겠다고 한다.
그의 시가 대전에 살면서 나오는 시였으면 좋겠다 싶다. 대전 사는 사람 욕심으로, 누군가 이 도시 가까이 어디쯤에서 그런 시를 쓰며 살고 있다 생각하면 위안이 되겠다.
“나는 자갈을 문다/여기보다 깊은 바닥이 있다(변선우, <비세계> 중에서)”
이 도시에도 “여기보다 깊은 바닥”을 캐내는 누군가가 있다니 왠지 속이 시원해지는 일이다.
글 사진 이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