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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3호] 따뜻하고, 유쾌하게
따뜻하고,
유쾌하게
극단 호감
어느덧 짧았던 해가 길어지는 걸 보면서 새로운 계절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추위는 막바지에 달했다. 새로운 계절이 다가오는 길목에서 창단 공연을 앞둔 극단 호감을 만났다. 대흥동 중부경찰서 맞은편에 위치한 소극장 고도에서는 두 배우의 연습이 한창이다. 창단 공연을 앞두고 김도윤 배우와 조광래 배우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왼쪽부터 조광래 작가 겸 배우, 김도윤 배우, 정준영 대표
젊은 연극인 세 명이 모여 ‘호감’
대전에서 활동하는 청년 연극인 정준영, 김도윤, 조광래 세 사람은 뜻을 모아 극단을 창단했다. 대전에서 15년 동안 연극인으로 활동한 정준영 대표는 오래전부터 극단 창단을 고심했다. 개인 사정으로 잠시 연극계를 떠나기도 했지만, 젊은 연극인들이 함께하는 모임을 만드는 등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 왔다.
“관객과의 소통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어요. 연극은 종합예술이잖아요. 그렇다면 관객에게 그만한 가치와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데 ‘과연 잘 전달하고 있나’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고민 끝에 극단을 창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지금 내가 하는 예술을 자기만족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그만한 값어치를 제공하고 싶었어요. 꾸준하게 좋은 작품을 선보이는 게 목표죠.”
극단 호감은 ‘청년 예술인이 모인 창작 집단’이다. 배우, 연출가, 작가가 함께하는 호감은 극단의 색깔을 나타내는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세 사람은 연극인뿐 아니라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예술인과 소통하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연극 이외에도 시민이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호감. 들을수록 친근하고 익숙한 단어다. 정준영 대표는 지인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호감’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김도윤 배우는 “호감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좋았어요. 따뜻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호’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호호 아줌마>라는 만화 아시죠? 그 만화를 진짜 좋아했거든요. 웃음소리도 ‘호호’ 하고 내잖아요. 추울 때 ‘호~’ 불어서 손을 따뜻하게 해 주기도 하고요. 호감이라는 뜻 자체도 좋고요. 호감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느낌처럼 사람들에게 위로와 유쾌함을 전달하는 극단이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정준영 대표가 “꿈보다 해몽이죠”라고 이야기하자 한바탕 웃음이 지나간다.
따뜻한 봄에 전하는 이야기
극단 호감의 창단 공연 <당신이 무슨 색을 좋아했더라...>는 조광래 배우가 집필한 작품이다. 조광래 배우는 정준영 대표와 함께 연극을 했던 사이다. 우연히 오랜만에 만난 조광래 배우에게 정준영 대표가 극단 창단 의사를 밝히고, 함께하길 제안했다. 조광래 배우 역시 무대를 잠시 떠나 있을 때였다. 조광래 배우가 가지고 있던 집필에 대한 욕망을 정준영 대표가 끌어내 주었고, 첫 작품이 만들어졌다. 조광래 배우는 자신의 첫 희곡 작품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른다.
“원래는 시나 소설을 주로 썼어요. 희곡은 이번이 처음이죠. 이번 작품은 운전을 하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반도체 업체에서 근무하다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작품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됐죠. 연극을 통해서 관객에게 사회 전반에 흐르고 있는 악순환들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두 남녀의 로맨스로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아픔을 공유하는 거예요.”
<당신이 무슨 색을 좋아했더라...>는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우연히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이다. 서로 다른 아픔을 가진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여자 주인공 역할을 맡은 김도윤 배우는 “작품이 시간과 기억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자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고통이나 아픈 기억들을 쥐고 있을 것인지, 흘려보낼 것인지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고, 공감할 수 있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시작 앞에 서서
여전히 ‘예술을 하면 배고프다’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많은 예술인이 하고 싶은 작업을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하기도 하고, 금전적인 이유로 꿈을 접기도 한다. 예술인들을 위한 많은 지원 사업이 있지만, 자원은 한정적이고 제한적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쉽게 도전에 나설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관객 확보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금전적인 지원도 중요하겠지만, 언제든지 공연을 올릴 수 있도록 관객을 확보해 주는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서, 공연을 즐기기 어려운 취약계층에게 관람권을 지원하는 거죠. 그 사람들도 문화를 즐길 권리가 있으니까요. 실제로 러시아에서는 그런 식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해요. 대신에 평가 제도를 도입해서 공연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점수를 매기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공연이 이어지고, 입소문을 타면 좋은 파동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오랫동안 대전에서 연극배우 활동을 한 정준영 대표는 무엇보다 관객 확보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관객 확보를 위해 다양한 홍보 채널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18 문화향수실태조사’에 따르면 대전의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은 86.3%로 서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 조사는 만 15세 이상 남녀 1만 558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이다. 문화예술행사별 관람률은 영화가 81.4%로 1위를 차지했고, 미술전시회는 21.9%, 대중음악·연예는 20.9%, 연극은 12.2%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영화가 다른 문화예술에 비해 접근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수치에서 두 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 고민과 대책이 필요하다. 정준영 대표는 “실제로 원도심에 소극장이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대전이 작년에 연극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고요”라고 이야기했다.
지역 문화예술 중 가장 보완이 시급한 항목으로 관람비 인하가 30%, 작품의 질 향상이 26.8%를 차지했다. 작품을 즐기는 사람 중에서도 좋은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서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김도윤 배우는 “좋은 공연을 즐기기 위해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는 인식에 대해서는 연극인들이 먼저 반성하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환경이지만, 작품을 조금 더 공부하고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할 필요가 있죠. 배우들도 위기의식을 느낄 필요가 있어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극단 호감을 통해서 대전에 좋은 예술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인식을 심어 주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앞으로 극단 호감은 단원을 수시로 모집하고, 관객들에게 양질의 공연을 제공하는 데 힘쓰고자 한다. <당신이 무슨 색을 좋아했더라...>를 페스티벌 등 2인극이 설 수 있는 무대에 올려 많은 관객을 만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에는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조광래 배우가 집필 중이다.
조광래 배우는 “두 사람을 만나고 난 이후에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작업하면서 뇌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관객들에게 작품 안에 있는 감정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창단 공연을 시작으로 계속 행복하게 함께 작업하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출발선에 선 세 사람에게는 무대에 대한 설렘과 함께 부담이 녹아 있다. 다가오는 3월 5일부터 12일까지 8일 동안 대전 소극장 고도에서 극단 호감의 첫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글 사진 이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