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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5호] 경관 공공성을 생각하다
경관 공공성을
생각하다
대전 중구 큰길 대종로로 이어지는 작은길, 중교로 끝에는 대흥동성당이 있다. 바로 직전 블록 모퉁이 건물에는 얼마 전까지 ‘이화수 전통육개장’이라는 식당이 영업을 했다. 그 전에는 ‘햇비’라는 카페였다. 크진 않아도 단아하게 세월이 쌓인 건축물이 예쁘고 그 앞에 너른 잔디밭이 여름이면 빛을 발해 많은 사람이 눈길을 주던 건물이다. 식당이 들어서면서 잔디밭이 검은 아스팔트 주차장으로 바뀌고 식당 간판으로 건축물 본연의 모습이 많이 가려진 것에 아쉬워하는 이도 많았다.
이화수 전통육개장 건물은 상가용 건물이 아니라 주택이었다. 대전에서 ‘대신라사’라는 유명 양복 원단 판매점 대표가 1960년대 전후반에 지은 집이다. 이후 시간이 지나 2005년에 본래 모습을 최대한 살려 카페 ‘햇비’를 열었고, 2014년부터 지난겨울까지 이화수 전통육개장으로 운영했다.
그리고 지금, 낮은 건물들 사이로 고층 도시형생활주택이 들어설지도 모를 상황이다.
건물이 무너지는 건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건물이 머물던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난겨울, 대전 중구 대흥동 이화수 전통육개장 앞에 장소 이전 현수막이 붙었다. 공간 규모를 줄여 대흥동 다른 공간으로 옮겼다. 식당이 떠나간 공간은 간만에 호젓했다. 주택에서 카페로 다시 식당으로, 그리고 다음은 무엇일지 많은 이가 궁금해했다. 지난 3월 어느 날, 공간 앞에는 현수막 여러 장이 꽃샘추위의 드센 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현수막에는 공사를 반대하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현수막 뒤로는 공사용 가림막이 옛 이화수 전통육개장 건물과 바로 이웃한 옆 건물까지 둘러쌌다.
철거는 빠르게 진행했다. 건물이 무너지는 건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건물이 머물던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텅 빈 공간은 어색했다. 항상 있던 건물을 바라보던 눈은 갈 곳을 잃고 더 먼 곳을 바라본다. 무너진 것은 건물뿐이 아니었다. 그곳에 건물과 함께 쌓인 수많은 사람의 기억과 경험을 담은 시간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대흥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이곳 토박이라 밝힌 한 시민은 추억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무언가 새롭게 생기는 걸 나쁘게 볼 수만은 없지만, 저로서는 조금 불편하기도 해요. 골목마다 어릴 때부터 봐 오던 것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걸 보는 게 편할 수만은 없죠. 대흥동을 안락한 공간이라 생각해 왔는데 점점 상업적인 공간으로 변해 가는 것 같아요. 이곳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가진 사람들은 오랜만에 대흥동을 찾지만 생소하다고 느껴요. 그만큼 공유하던 것들이 사라져 버리고, 그저 잠깐 머무는 동네가 되어 버린 것 같아요.”
주변 상인들 사이에서는 일찌감치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누구는 영업에 피해가 있을까 우려했고, 어떤 이는 자기 땅에 건물 올리겠다는데 어쩔 수 있겠느냐 말했고, 또 다른 이는 상권이 지금보다 나아질 거란 기대도 품었다.
중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대흥동 219-1번지 외 7필지는 지난 2월 22일 건축 허가가 떨어졌고, 아직 착공 신고는 하지 않은 상태다. 착공 신고가 들어오지 않아, 현재 정확한 공사 개요에 대해선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간략한 건축 규모만 이 관계자로부터 전해들을 수 있었다. 주민 사이에서 소문이 돈 고층 건물은 지하 4층과 지상 20층으로 계획하며 도시형생활주택 및 근린생활시설로 이용할 예정이다. 해당 토지 소유 회사에 전화해 직접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 했으나, 해당 회사의 관계자는 “현재로써는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다음에 다시 연락 달라”라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철거를 진행하면서 공사장 주변에 붙어 있던 공사 반대 현수막 대신 ‘안전제일’이라 적힌 펜스를 줄지어 세웠다. 펜스 너머로 철거 잔해와 흙먼지만이 나뒹군다. 생각보다 훨씬 넓은 공터 끝으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이웃 건물 벽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막 발굴을 끝낸 유물처럼 말간 얼굴을 드러낸 벽면에 철거로 몰려난 세월이 덕지덕지 붙었다.
4월이 다 끝나는 지금까지 별다른 공사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철거가 진행되면서 흙먼지가 날려 테라스 문을 닫아 놓았어요. 이제 앞으로도 테라스는 개방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공사가 시작되고 바로 뒤에 높은 건물이 들어오면 테라스를 이용할 수가 없겠죠?”
공사 예정지 뒤편에서 영업 중인 카페는 테라스를 개방할 수 없을 듯하다. 햇살 좋은 날이면 손님들이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은 옛날이 되었다.
“건물이 거리의 목적에 부합하느냐, 그렇지 않냐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 안에 경관 공공성 또한 당연히 존재하겠지요. 건축을 하는 데 있어 어디에 어떤 상징성을 가지고 그 건축물이 존재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유병구 씨엔유건축사사무소 소장의 이야기다. 많은 건물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대흥동 곳곳에는 근대건축물이 존재한다. 그리고 공사장 인근에는 대흥동성당과 대전여중 강당 등 문화재로 지정한, 역사를 지닌 건축물이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20층짜리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걸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철거를 진행하면서 공사장 주변에 붙어 있던 공사 반대 현수막 대신 ‘안전제일’이라 적힌 펜스를 줄지어 세웠다
해당 지역은 사유지고 상업구역이니, 절차를 거쳐 단독 주택이 들어서든 4층짜리 상업건물이 들어서든 20층짜리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든 문제될 건 없다.
다만, 이 구역에 우리는 이미 원도심 활성화 정책을 통해 어마어마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옛 충남도청사 활용과 옛 도지사관사촌 등 다양한 연관 사업과 연속 사업을 펼치는 중이라는 점이다.
원도심 활성화 정책 아래 엄청난 예산을 이 공간에 투여하던 그 즈음에 이 구역 논란의 중심에 ‘다세대주택(원룸)’이 있었다. 대흥, 은행, 선화동 등 원도심에 막대한 공공자금을 투여할 필요가 있을 만큼 이곳이 가치 있는 건 ‘역사성’에 기초한 ‘장소성’이었다. 이 사실을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것은 ‘경관’이었다. 이곳이 지닌 경관 차별성은 모두 그렇고 그런 도시 경관 속에서 다른 경험을 주었다. 시간의 흐름과 우리가 쌓아 놓은 다양한 기억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은 이 공간을 문화예술로 활성화하는 정책방향에 이유를 대 주었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단독주택이 사라지고 천편일률적인 다세대주택이 들어서면서 경관 차별성은 약해졌다. 어느 도시를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비슷한 경관으로 변해 가는 걸 많은 이가 아쉬워했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경관이 지닌 ‘공공성’을 구체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분명 진보였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은 지금 시점에 우리는 주변 모든 건축물을 내려다보며 위로 솟구칠 20층짜리 건축물 건설 계획을 마주하고 있다.
“행정에서 구체적인 도시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로경관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 문화예술의 거리라면 그 거리에 걸맞은 시설에 대해 고민하고 장기적인 시선으로 도시를 그려 나가야 합니다.”
씨엔유건축사사무소 유병구 소장의 얘기다.
우리는 수많은 논란과 과오를 저지르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여전히 제자리다.
글 사진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