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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5호] One day
#1
누군가 그랬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지는 두 가지 질문으로 알 수 있다고.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는지. 이 두 가지로 무언가 단정 짓기는 힘들겠지만, 중요한 요소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관계는 마법 같아서, 내가 어떤 냄새를 지닌 사람이냐에 따라 밀물처럼 관계가 시작되기도 하고 썰물처럼 모두 밀려 사라지기도 한다. 몇 번쯤 수평선 너머 사라진 관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으며, 억지로 애쓴다고 딱히 되는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여전히 따듯하게 대해 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말이다.인간이 달라질 수 있냐는 질문을 일반론으로 물으면 가당찮다며 고개를 젓겠지만, 제대로 무너져 본 인간이 다시 일어나면 그전과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겠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끄덕이겠다. [원 데이]는 사랑 이야기이지만, 관계에 실패한 한 남자가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철저히 남자 시점에서 만들어진 헐리우드 발 [파이란]으로도 읽힌다.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 덱스터에게는 무려 18년 동안 자신을 믿고 사랑해 준 엠마라는 여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 무리한 설정이 전혀 무리 없이 넘어가지는 것은, 짐 스터게스의 외모와 앤 해서웨이의 연기력, 그리고 근래 [라이엇 클럽]으로 돌아온 여성감독 론 쉐르픽의 섬세한 연출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2
연애를 하지 않을 때 견디기 힘든 것 중 하나는, 오늘 내가 누구와 만났고 무엇을 먹었고 무슨 생각으로 어떤 일을 하며 지냈는지 나 혼자 알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와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때로는 갑갑하고 더 쓸쓸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평생 혼자 살아가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반대로 연애가 끝나면 그 모든 것을 함께 겪은 증인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고, 그간 서로가 나눈 일상의 기억들이 다시 각자에게 소급되는 과정이 괴로워 방바닥을 구른다. 이제는 신조어도 아닌 썸을 타는 엠마와 덱스터는 서로에게 ‘친구’라는 명패를 걸어 놓고 관계를 시작한다.덱스터가 수많은 여자를 만나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뒤에야 엠마에게 돌아간 것은, 유일하게 그녀만이 그가 살아온 시간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덱스터의 선택은 엠마에 대한 확신이라기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상황에 와서야 패를 던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어리석음에 대한 벌처럼, 함께 살게 된 얼마 후 엠마는 세상 밖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덱스터는 자신 때문에 모든 게 망가졌다며 울부짖는다. 그는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엠마와 친구가 아닌, 연인으로 함께 살았다면 그녀가 그렇게 되었을까.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내내 자신만을 바라봐 준 그녀를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지나 버린 시간 앞에 부질없는 가정들이다. 처음 덱스터가 엠마를 친구로 곁에 둔 것은 그녀가 연애에 서툴렀기 때문이었다. 연애에서 서툴다는 것은, 서툴지 않은 것만큼 종종 문제가 되곤 한다. 어느 순간 무언가를 했거나 하지 않은 것이 곧 미숙함의 방증이 되어, 시간이 지나서야 그때 그렇게 하거나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아찔함 같은 것 말이다.
관대하지 못한 상대는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해, 타이밍이라든지 인연이라든지 하는 단어들을 내세워 성급히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극 중 엠마의 첫 등장은 고스란히 그렇다. 서툰 티를 내지 않으려는 말과 행동은 쉽게 들키고, 덱스터는 이미 벗은 바지를 추스른다.
그녀가 앤 해서웨이기에 그 모습도 사랑스럽지만, 엠마에게 선을 긋는 덱스터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역시, 서툴다는 것이 그녀에게 기댈 만한 여지가 없다는 것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만한 나이는 아니었다. 이후 엠마는 사려 깊은 여자로 성장하고, 덱스터는 TV 사회자로 승승장구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리막길을 걷는다.
#3
가능성만 가진 이들은, 모든 것을 가진 이만큼이나 오만하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은, 아무것도 제대로 겪어 보지 않았을 때만 느낄 수 있다. 자신은 뭐든 하면 될 것 같은 젊음이라는 가능성, 부모는 자신을 영원히 돌봐 줄 거라는 착각, 동료들이 항상 자신의 주변에 머물러 줄 거라는 믿음 같은 것들은, 노력하고 받아들이고 가꾸지 않으면 유효한 것들이 아니다.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던 20대 중반의 덱스터는 시간이 지나며 그것들을 하나씩 잃어 간다.영원히 자신을 응원해 줄 것만 같던 엄마는 투병 후 돌아가시고, 함께 일하던 동료는 TV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사랑해 줄 사람을 찾아보라는 충고를 날리며 하차를 권한다. 그리고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현실적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관객은 망나니처럼 살던 그가 언젠가 그렇게 될 줄 알았을 거다.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았던 것은 그의 엄마였다. 그녀는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이 인기와 술과 약에 절어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이 영화가 말하려는 핵심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네가 솔직히, 전혀 좋은 사람 같지가 않구나.’ 덱스터가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상황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덱스터의 행동에만 집중한다.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좋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고, 좋은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꼭 덱스터의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는 의문은, 그에게 일편단심인 엠마라는 존재 앞에 무색해진다. 그녀는 그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한때 그녀마저, 사랑하지만 망가진 그를 좋아할 수 없다며 눈물짓기도 한다. 가꾸지 못한 관계와 젊음의 가능함이 모두 사라진 후, 현실 앞에 껍데기만 남은 덱스터는 사랑하지 않는 여자에게 사랑을 구걸한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 채 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풍족한 그녀의 삶 속에 기생하며 행복해지려고 한다.
하지만 사랑 없는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아내의 외도로 3년 만에 막을 내리고, 덱스터는 다시 엠마가 있는 파리행 기차를 탄다. 그 사이 엠마는 훌륭한 작가가 되어 있다.
#4
일상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각자 다른 느낌들이 전해진다. 평가라기보다, 서로를 느끼고 인식하고 판단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중엔 분명 남들보다 더 관심이 가고 궁금한 사람이 있다. 꼭 유쾌하거나 예쁘고 잘생겨서가 아닌,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은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조금 더 궁금해진다. 반면 이야기를 나눠 보면, 그 이상 알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 사람도 있다.선입견일 수 있지만, 덱스터 엄마의 느낌처럼, 전혀 좋은 사람 같지 않은 이와는 잠시 함께하는 것조차 힘든 일이다. 그 사람의 사랑 이야기라면 더더욱 궁금하지 않다. 엠마가 있는 파리로 향한 덱스터의 눈가엔 이제 주름이 가득하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40대가 되었다. 엠마를 만난 덱스터는 여전히 허풍을 떨지만, 이미 잃은 것들에 대해 조금은 초연해 보인다. 처음 엠마를 자신의 상대로 보지 않았던 그는, 이제 그녀 앞에 앉아 간곡한 눈으로 서로가 잘 어울리지 않느냐며 설득한다. 발로 뻥 차 버리면 될 것을, 엠마는 잘 사귀던 파리의 젊은 음악가를 버리고 덱스터를 선택한다.
그와 달리 그녀는, 다 가진 자신에 대한 오만으로 타이밍을 놓치는 어리석은 짓 같은 것은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 이제 바닥을 치고 올라온 덱스터는 누군가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엠마는 자격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그를 받아들이지만, 영화는 아직 부족하다는 듯 엠마를 스크린 밖으로 빼 버린다. 이로써 엠마가 가지고 있던 덱스터에 대한 모든 기억이 사라진 것이 된다. 덱스터에겐 자신을 기억하던 훌륭한 친구이자 연인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 없이 살아가야 하는 일만 남은 그의 눈에, 그제야 아내를 잃고 10년을 버틴 아버지가 보인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가장 현명한 길은, 계속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밖에는 없다고. 그 사람이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눈물에 젖어 고와진 눈으로 끄덕이는 덱스터의 모습을 보며, 영화에서 처음으로 그의 다음 삶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화면은 두 사람이 친구로 지내자던 처음 그날로 돌아가, 촌스럽지만 순수한 엠마의 모습을 비춘다. 어느 날에, 오래전 어느 날로 돌아가 그 둘의 시작과 동시에 그들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작을 응원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5
작은 벌레 한 마리가 껍데기만 남은 채 모기장 밖에 달라붙어 있다. 겨울이 오자 여기저기 온기를 찾아다니다 결국 저렇게 된 것 같다. 톡톡 건드려 봐도 앞발 몇 개가 모기장을 움켜쥐고 떨어질 줄 몰라, 시간이 지나면 떨어지겠거니 내버려 두었다. 사랑에 대한 글을 쓰려다, 몇 주를 보냈다. 이젠 시간이 지났으니 뭐든 쓸 수 있을 줄 알았다.겨울이고 새해니까 이 영화에 대해 쓰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웹을 뒤적이다가, 메일함에서 오래전 그녀에게 이 영화를 보냈던 기록을 발견했다. 그때 우리는 언제까지나 행복할 거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대전에 오기 전까지 나는 저 마른 벌레처럼, 아직 온기가 남은 그 기억들에 달라붙어 있었다. 껍데기만 남은 줄도 모르고 무엇도 포기하지 않으려 열심히 움켜쥐어 덧없이 계절을 보냈다.
하지만 유효하지 않은 의지는 얇은 모기장 하나 뚫지 못했다. 시간에 못 이겨 기억은 조금씩 사라지고, 사랑했었다는 느낌만 어렴풋이 귓가에 맴돌 때쯤, 산들바람에 날려 껍데기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 후 한 번도 사랑에 관한 언급을 한 적 없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달라진 내 시선만큼 엠마와 덱스터도 달라져 있었다. 서툴러서 아름다운 몸짓이 보였고,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지 몰라 애쓰는 표정도 보였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에게 했던 질문을 기억한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 하밀은 ‘그렇단다.’ 말하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지만, 당신은 어떤가. 나는 사랑하기 위해, 그 사랑을 잘 해내기 위해, 사랑하려는 이에게 응당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책의 한 구절을 빌리며, 내 대답을 전한다. 새해에는 당신과 나에게 좋은 일만 있길 바란다.
#FIN
“내 생각에 ‘사랑’은 그다지 대단한 미덕이 아니라네. 사랑에 동반되는 모든 악을 생각해 봐. 수많은 고뇌를 일으키고 파멸과 불명예로 끝나는 경우도 있잖나? 그 결과는 치명적이기까지 해. 괜한 간섭일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는 이 감정을 초월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사랑’의 열정을 토대로 다른 열정을 일깨워야 해. 사랑에 따라오는, 우리에게 필요한 열정들 말이네. 말하자면, 인간애, 자비, 친절, 우정, 존중 같은 것들. 그걸 나눌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라네.”Jonathan B. Wight,
‘Saving Adam Smith’ 中
‘Saving Adam Smith’ 中
글 이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