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5호] 진지하게 해석해야 할 공간이다

진지하게

해석해야 할 공간이다

 

테미오래 개관

 


 

도지사공관

잘 가꾼 정원, 특정 시기 건축 양식과 문화를 더러내며 그 가치를 스스로 자아낸다

 

‘테미오래’가 문을 열었다.
적잖은 사람에게 관심을 끈 공간이다. 대전광역시는 82억 원을 들여 옛 충남도지사 공관을 비롯한 건물 열 채를 매입했다. 공공예산으로 부동산을 취득할 때는 마땅한 근거가 필요하다. 테미관사촌 매입은 ‘건축물이 지닌 역사성’이 근거였다. 여기에 희소성과 공간 자원으로서 가치 등이 덧붙었다. 옛 충남도청 건물, 도지사 관사 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과 맥이 같다.
이후 31억 원을 시설비, 7억 원을 운영비로 확보해 조성 사업비로 총 120억 원을 들였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다.
대전광역시는 이 공간에 시민 공모를 거쳐 ‘테미오래’라는 새 이름을 붙이고 지난해 가을, 운영 기관을 선정했다. 몇몇 민간단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사)대전마을기업연합회가 수탁했다. 운영 계획과 각 공간에 들어갈 콘텐츠를 확정하면서 공간 일부를 시민에게 개방했다. 테미동산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던 지난 4월 6일이다.
개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간 관사촌에서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은 도시자 공관과 1호, 2호, 6호 관사였다. 추억의 사진과 트래블 라운지로 구성한 5호 관사_빛과 만남의 집은 문이 닫혀 있었고, 7호, 8호, 9호 관사는 아직 운영 전이었다.
홍보 자료 등에 따르면 7호 관사는 청년 문학, 연극인, 다원 예술 레지던시를 진행하는 문화예술인의 집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8호 관사는 주민참여 레지던시를 진행하는 시민문화예술인의 집, 9호 관사는 유투버 코워킹 스페이스, 10호 관사는 해외 작가 레지던시를 진행하는 세계 작가의 집으로 쓸 계획이다.

 
도지사 공관_ 시민의 집
개관식이 끝나고 옛 도지사 공관 정문 앞은 시민 쉼터를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정원에 키 작은 나무 몇 그루가 울긋불긋 꽃을 활짝 피웠다. 조화였다. 개관식이 남긴 흔적이다. 테미에 벚꽃은 활짝 폈지만, 공관 정원은 여전히 회색빛이 남아 조화가 내뿜는 인위적인 색채는 더욱 도드라졌다. 도지사 공관 1층에 영상이 계속 돌아간다. 빛으로 뿜어져 나온 공관 모습이 내부 벽면을 타고 흘렀다.
시가 발행한 자료에 따르면 도지사 공관은 커뮤니티 공간, 시민 중심 문화 교류와 기획 토론 등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전시실과 아카이브실, 세미나실, 안내실을 둔다는 계획이다.
도지사 공관은 잘 가꾼 정원, 특정 시기 건축 양식과 문화를 드러내며 그 가치를 스스로 자아낸다. 여기에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기,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다양한 이야기가 쌓였다. 굳이 새롭고 특별한 기능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활용계획에서 밝힌 것처럼 공관이 지닌 가치를 잘 갈무리하고 시민과 공유하면 충분하다. 갈무리하고 공유하는 방식이 중요할 뿐이다.

 

1호 관사_ 역사의 집

죽헌 최문휘 회고 대전연극사 특별자료전 <돌아 봄, 내다 봄>
최문휘 선생이 모은 각종 자료를 방마다 구석구석 배치했다 

 

1호 관사_ 역사의 집
1호 관사는 도지사 공관 바로 옆이다. 도지사 공관이 지닌 운치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규모도 작지 않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지역 연극계 원로인 최문휘 선생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린다. 테미오래 개관과 함께 시작한 대전연극 100년 아카이브전 영상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죽헌 최문휘 회고 대전연극사 특별자료전 <돌아 봄, 내다 봄>이다.
벽면에는 오래된 연극 포스터를 걸었고 지역 극단을 소개한 자료도 패널로 제작해 붙였다. 최문휘 선생이 모은 각종 자료를 방마다 구석구석 배치했고 연극 의상도 전시했다. 한쪽 방에는 최문휘 선생이 사용할 책상과 컴퓨터도 두었다.
“주말에는 최문휘 선생님이 직접 오셔서 방문하는 시민을 만날 거예요. 아마, 평일에도 종종 나오지 않으실까, 생각해요.”
역사의 집에서 만난 조훈성(문학박사) 전시 책임자의 얘기다. 역사의 집은 도지사 공관과 함께 근현대사전시관과 대전연극, 문학 기록관으로 활용한다. 이번 대전연극 100년 아카이브전도 이런 계획 위에 있다. 이번 전시는 7월 31일까지 계속 이어진다.

  
2호 관사_ 재미있는 집, 6호 관사_ 상상의 집
2호 관사 뒤뜰에서 들리는 대숲 바람소리가 운치 있다. 운영센터로 활용하는 바로 옆 3호 관사에서 이어진 대숲이다.
2호 관사는 ‘재미있는 집’이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개관한 4월 6일부터 ‘작은만화도서관 이색전시회’라는 타이틀로 공간을 활용한다. 대전아마추어만화협회 DICU에서 주관한 전시다.
2호 관사 현관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 방에 ‘코난의 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부는 살해 사건 현장처럼 꾸며 놓았다. 다른 방은 인형의 방이다. 다양한 캐릭터 인형을 쌓아 두었다. 방문객이 캐릭터 인형에 파묻혀 사진을 찍도록 기획했다. 다른 큰 방과 작은 방 하나에는 책장을 설치하고 만화책을 꽂아 두었다. 눕거나 앉아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복도에는 각종 만화영화 포스터를 A3사이즈로 출력해 붙였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는 6호 관사 철대문은 양쪽이 맞물려 살짝 뒤로 밀렸다. 바람이 한 짓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대문 바로 옆에 판자로 지은 나무 헛간이 보인다. 요즘 보기 어려운 구조물이다. 6호 관사에 붙인 이름은 ‘상상의 집’이다. 4월 한 달 동안 전시를 진행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전이었다. 노상희 작가 작품으로 공간을 채웠다. 
방마다 빛을 활용한 작품을 설치했다. 한남대 재학생이 공간 안내자로 일하고 있었다. 건드리지 않은 여백 같은 복도 공간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포근하다.

  
우리가 공유하며 기억해야 하는 공간
일제 강점기 건축물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보존하는 것에 관한 논란이 없는 건 아니다.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혹은, 무시당했지만) 옛 충남도청 건물을 부수고 아파트 단지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던 걸 기억한다. 한때 우리는 일제 관련 건물 ‘폭파 이벤트’도 벌였다. 이해를 못 할 주장도 아니다. 
단순히 해체냐 존치냐는 이미 해묵은 논란이다. 아픈 역사도 엄연한 사실이고 유형의 대상을 없앤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쪽으로 사회적 합의를 보았다. 잘 보존해 기록하고 공유하며 기억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졌다. 서대문형무소와 옛 충남도청 등을 보존하는 이유 중 하나다.
논의 중심은 해체, 존치에서 활용 방안 단계로 넘어갔고 ‘남겨서 무얼 할 것인가?’라는 논의도 상당 부분 진척했다. 서울 서대문형무소는 당시 우리 독립운동가가 겪었던 고초와 권위주의정부 시절 어떻게 인권을 유린했는지 보여 주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기억해야 할 대상이 지닌 이야기를 공유하고 당대를 사는 우리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영감이나 계기, 힘을 준다. 적잖은 공적자금을 투여한 대상을 제대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모든 공공영역에서 보기에 따라 무거운 ‘영감과 계기, 힘’이라는 방향성을 갖고 공간을 해석하지는 않는다. 많은 것이 상품으로 전환하듯이 팔아야 할 ‘소비재’로 전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3호 관사(위), 7, 8호 관사(아래)

어떤 공간은 진지한 해석이 필요하다

소비해 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막대한 공공 예산을 투여한 공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부분을 확대한 춘화적 발상"
대량 생산이 주요 특징인 현대 사회에서 인류가 희소성과 독특한 감성을 지닌 복고 스타일에 열광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근대 유산이 관광자원으로 대두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소비’가 지닌 제어할 수 없는 왕성한 식욕과 이를 정확하게 짚어 끄집어내는 자본의 영민함에 소름도 돋는다.
근대 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어떤 공간은 진지한 해석이 필요하다. 소비해 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막대한 공공 예산을 투여한 공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테미관사촌이 대전이라는 도시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인지 시민이 해석하고 공유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 도시를 상상할 수 있는 계기와 영감, 힘을 주어야 한다. 흔히 이러한 영역에 ‘예술’을 접목하는 건, 다양한 해석의 결과물을 산출해 낼 수 있는 예술가가 지닌 역량 때문이다.
단순하게 시민이나 예술가에게 직접적인 문화예술 공간을 제공해야 했다면 더 접근성이 좋은 곳에 원하는 형태로 공간을 만드는 것이 나았다. 120억 원이라는 가용 예산이 있었으니 말이다. 의도된 이벤트가 아니라면, 거주를 목적으로 지은 건축물에서 전시 등 직접적 예술 활동을 벌이는 것은 아무래도 목적에 맞게 설계한 공간보다 불편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테미관사촌에 어떤 맥락을 가진 기능을 부여할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신영복 선생이 《강의》라는 저서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개인 감성 우위의 시대에 단편적인 이미지로 전체를 채색하고 부분을 확대하는 춘화적 발상을 경계해야 한다.

 


글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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