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142호] 당신이 미처 보지 못한 필리핀, 아이들이 경험한 필리핀
당신이 미처 보지 못한 필리핀,
아이들이 경험한 필리핀
필리핀 청소년여행학교
세부, 보라카이, 팔라완. 휴가철이 다가오면 타 여행사들이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필리핀의 대표 휴양지다. 세계 유명 휴양지로 뽑히며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장소들이다. 공감만세에서도 매년 여름과 겨울, 방학 철마다 필리핀 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하지만 우리가 판매하는 여행지는 이름조차 낯선 키앙안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일대를 돌아보는 청소년여행학교다. 한국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는 아니다. 바다보다는 산에서 시간을 보내고, 호텔보다는 마을에서 홈스테이하며 이들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아이들은 당신이 미처 보지 못한 필리핀을 돌아보며 어른이 그저 스쳐 지나간 것들을 통해 생각을 키워 나간다.
어른들이 스쳐 간 장소에 머물다
마닐라를 방문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필리핀은 다른 동남아에 자리한 나라들과는 다르게 그 나라 특유의 냄새가 없어 보인다. 베트남은 커피숍에서 조차 베트콩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태국은 공항에서부터 화려한 불교국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반해 필리핀은 우리나라 도시들과 다른 점이 많지 않다. 공항에서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마닐라 중심으로 이동한다. 이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빌딩들과 화려한 조명이 불을 밝힌 호텔&카지노 단지가 보인다. 러시아워로 악명 높은 도로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익숙한 편의점 간판도 눈에 띈다. 그리고 그 간판들 사이사이 골목을 따라 죽 늘어선 높이가 낮은 주거단지가 보이지만, 그곳에 누가 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나의 첫 필리핀 여행 또한 그러했다. 이민 간 친구를 보기 위해 방문한 필리핀은 다른 나라에 비해 특색이 없어 보였다. 필리핀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도시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본 필리핀은 진짜 필리핀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나는 상대적으로 비싼 호텔에 묵었고, 낮에는 호텔에 비치된 안내책자에 나온 관광지를 둘러봤다. 카지노에 들러 보기도 하고, 마사지숍을 찾는 일정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가 만난 현지인 대부분은 나에게 무언가를 서비스해 주는 사람이었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었다.
공감만세 청소년여행학교 프로그램으로 필리핀을 다시 방문하면서 내가 보지 못했던 필리핀이 보이기 시작했다. 호텔이 아닌 현지인의 집에서 숙박하며 내가 스치듯 지나간 자리에 누가 사는지 알게 되었고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보게 됐다. 마사지숍에서는 알지 못했는데, 필리핀 사람이 얼마나 긍정적인지 알게 되면서 그들에게 배울 점이 하나씩 생겨났다.
질문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다
지난 1월, 청소년 아이들과 다시 한번 필리핀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청소년이라기에는 아직 어린 5~6학년 아이들과 함께였다. 필리핀에 방문한 아이들이 물어 오는 질문은 비슷한데, 그중 나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은 ‘왜 필리핀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지’이다. 이 질문을 받을 때는 곰곰이 생각한다. 경제 전문가가 아닌 내가 어떻게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줄 수 있을지 고민되고, 혹여 내가 한 한마디로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 줄까 염려돼서다. 이런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아이들과 그 이유를 함께 찾아가는 방식이다.
지난 청소년여행학교 때 내셔널 뮤지엄을 찾았다. 마닐라에 자리한 내셔널 뮤지엄은 예술관, 고고학관, 역사관, 자연사관 등의 네 개 분야로 나뉘는데, 이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예술관이다. 시간 흐름에 따라 전시된 작품은 필리핀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필리핀은 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3개 국가의 식민통치를 당했다. 제국주의가 병처럼 번지던 시기, 스페인이 3세기 동안 필리핀을 식민통치했다. 그다음은 미국이었다. 1989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하며 국제사회의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갔고, 이에 따라 필리핀의 영유권도 자연스레 미국에 넘어갔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일본이 필리핀을 점령하고, 종전 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필리핀은 경제적으로 미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1965년 마르코스 정권이 들어서며 강권 정치가 시작됐는데, 이 시기 오랜 식민통치로 지역 유지들이 농지 대부분을 점령해 국민의 절대 다수가 빈곤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농지개혁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마르코스 대통령은 외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도입했고 필리핀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낸 듯 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도약은 대통령 부부와 그 측근의 부정부패로 무너져 내리고, 대외 채무가 늘어나며 국가 경제가 파탄에 이른다. 이에 1986년 2월, 피플파워 혁명이 일어나 대통령 부부가 하와이로 망명한다.
필리핀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역사와 닮은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인지 그림과 함께 필리핀 역사를 살펴보며 한국의 역사와 비교해 보곤 한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이대인 아이들은 유럽풍 초상화에서부터 식민통치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을 감상하며 저마다 무언가 한 가지씩 배우는 게 있는 모양이다.
뮤지엄을 관람하며 아이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이다. 물론 이에 대한 대답은 아이들에게 주어진다. 적극적인 아이는 길게 대답하기도 하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는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기도 하지만 매일 밤 아이들이 쓰는 수기를 읽어 보면 제법 아이들에게 생각할 거리가 된 듯하다.
문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들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 계단식 논이 있는 키앙안은 청소년여행학교에서 꼭 방문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고유한 문화가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다시 복원될 수 있는지, 그리고 문화를 잃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키앙안에 사는 이푸가오족은 삶의 터전을 찾아 떠돌다 산지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2천 년 동안 깎아지른 산을 따라 거대한 계단식 논을 일구며 산다. 척박한 산지를 따라 이어진 계단식 논은 자연스레 감탄을 자아내는데, 이러한 모습이 알려지며 1995년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많은 여행객이 계단식 논을 보기 위해 밀려들자,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는 유명 여행지처럼 쓰레기 문제, 여행객들이 일으키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게다가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던 사람들이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일보다는 여행객을 상대하는 서비스 직종으로 업종을 바꾸기 시작했다. 빠르게 계단식 논이 무너졌고 마을은 점점 고유의 문화를 잃어 갔다.
지난 2000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 청년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바로 SITMo다. 이들은 삶의 뿌리인 무너져가는 계단식 논을 복원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정부, 시민사회, 산악부족 등과 만나 고유의 문화를 잃어버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함께 논하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원봉사자를 받아 이 문제를 국제적으로 환기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행 동안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바로 SITMo 회원이다. 아이들은 마을 주민의 집에서 생활하며 논 복원 활동에 참여하고, 이푸가오족의 전통 공연을 보며 함께 어울려 춤을 춘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들은 도서관 설립을 위한 봉사활동도 이어나갔다. 이푸가오족의 문화를 기록한 기록물을 살펴보고 이 기록들이 도서관 자료로 남을 수 있게 정리하는 일이었다. 이곳에서도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많은지 질문을 쏟아 냈다.
“농기계도 많은데 여기는 왜 아직도 손으로 농사를 지어요?”
“도서관 목록은 왜 만드는 거예요?”
아이들의 질문에 답해 주는 이는 SITMo 회원들이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산지에는 농기계가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지금까지 손으로 일구어 낸 고유의 농법을 유지하기 위해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또한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일이 바로 도서관 설립이다.
키앙안에서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아이들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문화를 몸소 실천하고, 기록·보관하는 일. 사흘 동안 SITMo와 했던 활동이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지켜 내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다시 마닐라로 향했다.
함께 잘 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수도꼭지만 돌리면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지고, 푹신하고 뽀송한 침대에서 뒹굴던 아이들에게 필리핀 공정여행은 조금 불편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여행 첫 방문지로 찾는 바공실랑안은 특히 그렇다. 도시정화라는 이름으로 집을 빼앗긴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한 이곳은 60년대 한국의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필리핀 생활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 배운다.
이곳에서도 아이들은 젊은 활동가들과 함께 생활하며 다양한 경험을 한다. 바공실랑안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 결성한 단체, YES-BS는 케이터링, 어린이교육센터, 업사이클링 수공예품점 등의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며 함께 잘살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들은 오가닉팜을 찾았는데, 이곳에서 지속가능한 유기농 농법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경제적 안정이 건강한 식생활로 직결되는 현상이 날이 갈수록 두드러진다. 이는 필리핀도 마찬가지인데, 경제적으로 열악한 사람이 모여 마을을 형성한 이곳에서 채소를 먹는 건 특히나 더 어려운 일이다. 오가닉팜에서 일하는 YES-BS 멤버 한스는 “우리는 누구나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들이 찾은 지속가능한 농법은 나무껍질을 곱게 갈아 일정시간 저장고에 보관해 천연 비료를 만든 뒤, 이를 흙과 섞어 화분을 만들어 유기농 채소를 키워 내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아스팔트 위에 세워진 도시에서도 유기농 채소를 먹을 수 있다.
흙을 만져볼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오가닉팜 봉사활동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2시간 남짓, 화분을 만드는 일이지만 이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지속가능한 환경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배운다. 또한, 자신들이 당연하게 여겨 왔던 일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땀흘리는지도 배운다.
필리핀에서 보내는 열흘의 시간 동안, 아이들은 어른이 그저 스쳐 지나쳤던 공간에 머물며 생각을 키워 나간다. 지금까지 누린 편리함을 감사하고, 다른 나라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때로는 생전 처음으로 논을 밟으며 농사를 지어 보기도 한다. 아이들과 생활하며, 낯선 경험이 얼마나 많은 배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나 또한 배운다. 어른보다 빠른 속도로 세상을 배워 나가는 아이들에게 필리핀은 특별한 학교와 같다. 글자로 들어왔던 단어를 몸소 체험하며 스스로 가치를 정립해 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여행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낯선 곳에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잠시나마 현지인과 함께 살아 보는 것. 아이들이 열흘간 살아온 세상은 책이 전할 수 없는 큰 세상을 아이에게 선물한다.
글 사진 오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