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2호] 특별한 근황을 위해 필요한 요소

특별한 근황을 위해

필요한 요소

 

독립서점 삼요소 조규식 대표

 

 

삼요소는 3가지를 한다. 책과 음료를 팔고, 사람들을 모은다. 사람들을 모아,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이야기도 듣는다. 이 3가지 중에 가장 중한 것이 사람이다. 낯선 이들이 모여 일어나는 진지하고도, 무겁지 않은 화학 작용. 아무럴 것 없는 일상에 특별한 근황을 더해 주는 삼요소의 비결이다.

 


 

대전 서구 갈마동 906번지. 둔산여고 네거리를 지나 언덕길을 올라가면 길 끝쯤 건물 2층에 이런 글귀가 간판에서 빛나고 있다. ‘어제는 책을 읽다 끌어안고 죽고 싶은 글귀를 발견했다.’ 검정 간판에 하얀 글씨가 콕 마음에 와 박힌다. 박준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 나오는 글귀이다. 대낮보다는 저녁에 불 켜진 간판을 올려다보면, 왠지 모르게 헛헛한 퇴근 후, 저 안으로 들어가 책장이라도 뜯어먹고 싶어질 듯하다. 독립서점 삼요소의 삼각뿔 로고 속에는 쓸쓸한 시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3가지가 다 있다. 삶을 조금 더 가치 있게 해주는 3가지, 북(책), 베버리지(음료), 커뮤니티(공동체)를 담은 이름 ‘삼요소.’ 요즘 인기를 끄는 드라마의 가부장적 아버지가 강요하는 피라미드 꼭대기가 아닌, 3개의 점을 잇고, 세 개의 선이 모여 이루는 균형과 여유. 그런 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삼요소의 시작점, 조규식 대표를 만났다.

 

 

이제 1살, 삼요소 맑음

조규식 씨는 서점을 운영하는 일이 행복하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요. 하기 싫은 걸 하는 게 거의 없다 보니까 정신 상태가 맑고 여유가 있어서 좋아요.”
모든 것에서 만족스러우나, 경제적인 면에서 지속이 가능한지가 고민이다. 그래도 3년은 해 볼 생각이다. 서점 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을 물었더니, 삼요소 덕분에 만난 여자친구 얘기를 한다. “여기서 여자친구를 만났기 때문에, (삼요소는) 제 역할을 다했어요.”
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삼요소는 처음 문을 열었다. 그러고 1년. 2018년 12월 22일 1주년 행사를 했다. 25명이 모여 삼요소의 1년 생일을 축하했다. 하고 싶은 대로만, 누구의 말도 신경 안 쓰고 만든 삼요소의 1주년 기념일은 그에게 자신의 생일보다 특별했다. 함께한 분들이 낭독도 하나씩 준비했다.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작년 김연수, 김금희 작가 등 조규식 씨에게는 아이돌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을 아무것도 아닌 이 작은 서점에 초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대전이 고향이고, 20대는 서울에서 보냈고, 영화를 전공했고, 몇 년 직장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나왔다. 그때 조규식 씨는 32살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에 팟캐스트에서 독립서점 사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점 인터뷰 책도 읽고, 돌아다녀 보고, 독립서점 사장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책도 보고, 모임도 하고, 행사도 하고, 재미있겠다 싶었다. “회사 집, 회사 집, 하는 게 싫고 독서모임을 하고 싶었어요. 어디서 찾아야 될지 몰라서 못 했고요. 책 읽고, 영화 보고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서점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6개월 뒤 문을 연 것이 삼요소다.

 

 

이날이 특별한 근황이다

조규식 씨는 커뮤니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독서 모임 ‘위리드’, 글쓰기 모임 ‘창작과 비명’, 영화 모임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를 꾸리고 있다. 조규식 씨를 제외 정원 7명, 영화 모임은 2개 반, ‘위리드’는 현재 3개 반, ‘창작과 비명’은 11기까지 진행했고 현재 ‘신 창작과 비명’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글쓰기만이 아닌 다양한 창작을 진행하며 8주 안에 각자의 작품을 완성해 간다. 올해는 새롭게 시작한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이라는 영상 제작 모임을 따로 모집 중이다. 그리고 ‘고독한 독서가들’이라는, 신청자를 받아 하루 30페이지씩 책을 읽어 카톡으로 인증 사진만 올리는 프로젝트가 있다. 이 모든 모임을 그가 이끈다. 매번 책도 읽어야 하고, 챙겨야 할 것이 많지만 그는 이것을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삼요소의 공동체는, 느슨하며 독립적이다. 책이나 영화로 이어지는 하나의 테마를 놓고 마주하며 소소한 감상들을 나눈다. 그리고 각자가 추구하려는 일을 격려한다. 
“모임이 가장 재미있어요. 그게 아니면 다른 곳이랑 삼요소가 차별되는 것이 없죠.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없고, 그날 주어진 책이든 주제든 이야기 나누고 딱 끝이거든요.”
대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향을 가졌다. 다양한 사람이 서로 다른 동기로 모여서, 평생 만나지 못했을 서로를 마주한다. 직업, 나이, 성장 배경 다 다른 사람이 무작위로 하나의 공통된 주제만 가지고 만나서 이야기 나눈다. 이렇게 대화하며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확장한다. “마음 둘 곳 하나 정도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해요.” 
위계가 없는 관계. 다양한 사람을 편견 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평상시 모임을 할 때 근황 이야기를 먼저 나눠요. 어떤 분이 자기는 일상에 별다른 재미가 없는데, 이날만 기다린다. 이날이 특별한 근황이다, 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조규식 씨는 뿌듯했다. 삼요소라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또 다른 가능성을 환기하는 ‘특별한 근황’이 되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삼요소 주변에는 원룸이 많다. 도심에 있으면서도 너무 붐비지 않는 위치에, 마이너한 취향의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된 셈이다. 주인장의 말에 따르면 선뜻 들어오기 뭣할지도 모르겠다는 건물 1층은 갈비집이다. 그렇다 해도 생각보다 뭣하진 않다. 마이너한 이들의 눈에 쏙 들어오는 간판이 있으니. 게다가 배너의 삼각뿔, 입구의 삼각뿔이 제대로 찾아왔음을 알린다. 2층에 올라 유리문 너머 카운터와 함께 주인장의 모습이 바로 보인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왼쪽으로는 당신이 찾던 널찍하고 차분한 테이블이 놓인 공간이, 오른쪽으로는 따뜻한 조명 아래 책들이 가지런히 놓인 공간이 펼쳐진다. 이 공간의 외침은 간단하다. 책을 끌어안으라. 소설책과 시집이 너무 안 팔려 고민이라는 조규식 대표의 고민을 덜어줄 자 누구인가. 삼요소에서 3가지의 가치가 더해진 특별한 근황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글 사진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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