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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1호] 낡은 어느 골목 안 어느 건물 이야기
낡은 어느 골목 안
어느 건물 이야기
대흥동 140-1번지, 문화공간 주차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모였다 흩어지는 은행동.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게 온종일 번쩍이는 환한 빛은 정신을 쏙 빼놓는다. 수많은 인파 속을 지나 은행동 중심가를 벗어나면 금세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작고 오래된 건물이 모여 있고, 찾는 이도 많지 않은 동네는 조용하기만 하다. 이 조용한 거리 어느 골목에 유난히 눈에 띄는 주황색 건물 하나. 문화공간 주차의 새로운 공간이다.
대흥동 140-1번지,
문화공간 주차의 새로운 보금자리
은행동 스카이로드를 따라 애견거리 방향으로 중심가를 가로질러 나오면 시간 이동이라도 한 듯 낡고 작은 건물이 늘어선 거리가 나온다. 유난히 높게 지은 모텔 건물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범하고 올망졸망하다. 그저 묵묵히 오랜 시간 동안 얌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눈에 띄지 않아도 된다는 듯 무심하다. 그사이 한 좁은 골목, 평범한 건물 사이에 유난히 쨍한 색감을 자랑하는 건물 하나가 있다. ‘문화공간 주차’의 새로운 보금자리다.
언제 처음 이곳에 자리 잡았는지 모르는 건물은 한눈에 봐도 낡아 보였다. 문화공간 주차 직원들이 페인트칠한 주황색 몸과 머리에 얹은 파란색 함석지붕은 대비가 확연하다. 앞으로 툭 튀어나온 출입문 양옆으로 같은 크기의 창문이 나란히 걸려있다. 벽면 상단에 나무로 만든 뾰족한 귀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거대한 고양이 한 마리가 좁은 골목에 비집고 앉은 모양새다. 출입문 상단에는 ‘어서오십시오’라고 적힌 글씨가 덧칠한 페인트를 뚫고 존재감을 자랑한다. 출입문 유리에도 미세하게 횟집이라 쓰인 흔적이 보인다.
“제가 알기로는 이곳이 꽤 오랫동안 횟집 건물로 쓰였다고 해요. 저희가 처음 이 공간에 왔을 때도 건물 외벽에 횟집 간판이 있었어요. 그 이후에는 등산 의류 창고로 쓰이다, 저희가 이어받았어요. 낡고 오래된 탓에 이곳을 보수할 때 애를 좀 많이 먹었죠.”
문화공간 주차 정용민 이사 이야기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오래된 흔적이 매력적이었지만, 부서질까 걱정되어 아기 다루듯 조심스레 공사를 진행해야만 했다. 원래는 기둥을 없애려 했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했다. 내·외부를 페인트칠하고 조금씩 보수했을 뿐, 원래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려 노력했다. 내부에는 흙집 천장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한옥에나 있을 법한, 상량문이 적힌 대들보가 인상적이다.
“천장을 고치려고 뜯었는데, 이렇게 옛 모습을 간직한 천장이 나오더라고요. 기분이 묘했어요. 이야기 끝에 천장을 따로 보수하지 말자는 결론을 냈어요. 건물이 가진 역사를 살리면서 새로운 것을 불어넣는 것도 재밌는 작업일 것 같아요.”
어디?
그건 뭐에 쓰게?
지금이야 정성껏 손봐 말끔한 건물이 되었지만, 그 전엔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 공간이었다. 오래전에 지은 건물인 것은 맞는데, 워낙 평범해 자세한 사연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정용민 이사가 전한 약간의 증언을 가지고, 이 공간이 가진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저녁 무렵 동네를 헤맸다.
문화공간 주차 바로 옆에서 주차장을 운영하는 아주머니에게 건물에 대해 물었지만, 8년 전 대전으로 내려왔을 때도 건물이 제대로 쓰인 적은 없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8년 동안 건물은 그저 나이만 먹어 갔다. 아주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옆 골목에 건물 주인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아휴 나는 잘 몰라. 건물 산 지 이제 4년 정도밖에 안 됐어. 처음에 나한테 자꾸 건물을 사라고 하길래 살 마음 없다고 하다가 계속 안 팔리길래 뭐, 그냥 내가 사버렸지. 그러고는 우리 아들이 저기에 옷이랑 등산화 같은 거 쌓아 놓다가, 그 갤러리 한다는 사람들이 옛날 건물 찾는다길래 내어줬지 뭐.”
건물 주인아주머니도 자세한 이야기는 알지 못했다. 부동산 아저씨를 찾아가 보라는 말에 희망을 품고 아저씨를 만났지만, 급한 일이 있는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이라는 이야기만 하고는 사라졌다.
대단한 사연을 가진 건물은 아니지만, 건물이 지닌 시간의 무게가 무거워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건물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사람들에게 물으면 다들 ‘어디? 그 건물은 왜? 어따 쓸라고?’였다.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과 반응이었다. 대단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도 아니니 그도 그럴 만했다. 관심 갖는 이 하나 없는 골목과, 그 골목에 있는 낡은 건물은 그저 지나쳐 가는 익숙한 풍경 중 하나일 뿐이다.
88년이라는
시간의 무게
140-1번지 건물의 자세하고 정확한 이야기를 들려준 건 민원24에서 발급한 토지대장과 건축물대장이었다. 건축물대장에 따르면 1930년에 사용승인이 난 건물로, 부동산 아저씨의 말처럼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이다. 그 후 1988년에 시멘트와 슬레이트 지붕으로 만든 건물을 기존 기와집과 합쳐 2층으로 증축 공사를 했고, 1993년에 다시 한번 1층과 2층 모두 증축 공사를 진행했다. 건축물대장을 보면 93년 증축 당시 설명에 ‘1층 주택’과 ‘2층 미용실’이라 적혀 있다. 처음 증축 공사를 진행한 88년도와 93년도 사이에 미용실이 처음 문을 열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본다. 증축 공사를 마치고 1층 주택은 일반음식점으로, 2층 미용실은 사무실로 용도 변경했다. 아마 93년도 당시 증축 공사는 새로 들어설 식당과 사무실을 위해 진행했던 것 같다.
1930년 일제강점기에 지은 기와집을 두 번 증축 한 뒤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고, 미용실과 음식점, 그리고 사무실로 사용하기까지. 140-1번지 건물은 88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묵묵히 버텨 왔다. 가늠키도 어려운 그 시간은,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가 손주 손을 잡은 노인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그 무게가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확인한 사실만 놓고 보면, 아마도 이 건물이 가장 빛나고 한창때였을 시절은 식당을 운영하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장 많은 사람이 드나들며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기분 좋은 대화로 마음을 채우던 나날 말이다.
그 호시절을 보내고 새로운 시절을 맞이하기 위해 1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기다렸을 테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언젠가 다시 많은 이가 발걸음하게 될 날을 기다리며 긴 시간을 보내 왔다. 긴 공백기를 지나 새로운 이들이 문을 열었으니 어쩌면 다시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좋은 시절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그저 지나쳐 가는 익숙한 풍경에서 누군가 기억하는 추억 어린 공간이 될 수 있길.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우면서도 가볍다.
글 사진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