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1호] 내가 아닌, 누구라도 얻을 수 있는 것들

내가 아닌,

누구라도 얻을 수 있는 것들

 

피프 카페 황진철 바리스타

 


 

 

항상 궁금했던 공간이 있다. 대전여중을 지날 때면 은은한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 바로 카페 ‘Pay It Forward(이하 피프)’다.
저녁마다 피프 앞을 지날 때면 카페 안에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열심히 무언가에 몰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뭘 저렇게 열심히 하나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분위기가 참 따뜻해 보였다. 문틈으로 기분 좋은 웃음이 간간이 흘러나올 때면 길을 지나던 나도 다시 한번 힐끔 돌아보곤 했다. 
피프의 사장이자, 자신을 바리스타라 소개하는 황진철 씨는 지난 4월, 대흥동 골목에 카페를 열었다.
진철 씨가 피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조금 특별하다. 서로 나눌 수 있는 재능을 나누고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 공간에서 진철 씨가 나눌 수 있는 재능은 영어다. 그는 저녁이면 피프에 사람들과 모여 무료로 영어 스터디를 진행한다. 
“저는 지금까지 영어로 인해 받은 혜택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무료 미국 인턴십, 외국계 기업 인턴, 조기 진급. 모두 영어로 인해 받은 혜택이었어요. 새로운 경험의 기회 역시 늘 영어 구사 능력 덕이었죠. 아마 제가 영어를 못했다면 갖지 못했을 경험이고 혜택이에요. 그래서 ‘내가 받았던 혜택을 누군가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서 피프를 시작했어요. 영어만 할 수 있다면 모두 가질 수 있는 기회니까요.”
마음을 먹고 공간을 열기까지 준비 기간은 부족했지만,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에 서둘러 대흥동 대전여중 앞에 공간을 마련했다. 피프가 자리를 잡은 대흥동은 대전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학창시절을 보낸 익숙하고도 의미 있는 공간이다. 
“제가 살던 동네에서 무언가를 시작한다고 생각했을 때 굉장히 편안하다고 느꼈어요. 익숙하고 좋아하는 동네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제겐 의미 있는 일이죠. 제 기억 속 대흥동을 단어로 꼽아 보자면 인간적, 커뮤니티, 학생들, 인심, 동네, 이웃 이런 것들이에요. 그만큼 편안하고 집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릴 적 추억이 가득 어려 있는 대흥동에서 공간을 운영하며, 누군가에게도 자신이 경험한 기회를 나눈다는 것. 그가 늘 꿈꿔 왔던 일이다. 준비 기간이 길지 않았던 탓에 아직은 공간을 유지하는 정도지만, 그의 서글서글하고 쾌활한 성격 덕에 단골손님도 꽤 있다. 사람들과 모여 영어 스터디를 진행할 때가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하다는 그는 피프가 대흥동에서 좀 더 북적이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계획이 있다면, 외국인들과 함께 원도심 투어를 진행하고 싶어요. 대전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대전에 대해 알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하지 않잖아요. 얼마 전에 알게 된 요르단에서 온 커플은 캠핑을 좋아하는데, 막상 대전에서 하려니 캠핑장이 어디 있는지 몰라 그저 캠핑장이 없다고만 생각했대요. 가까운 곳에 원하는 것이 있는데 정작 알 방법이 없으니 대전을 제대로 여행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우리 동네에 소문난 맛집도, 소개해 주고 싶은 공간도 정말 많아요. 외국인들이 대전에서 그리고 대흥동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부족한 게 많아서 당장은 어렵겠지만, 시간이 지나 피프가 좀더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뒤에 원도심 투어도 꼭 진행하고 싶어요.”
인터뷰 중에 진철 씨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몇 번이고 자리를 떴다. 가만히 앉아 그의 행동을 좇았다. 단골손님의 방문에 더없이 반가워했고, 피프를 처음 방문하는지 쭈뼛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선 손님에게는 말 한마디 더 건네며 어색함을 녹여 주었다. 종종 공간은 사람을 닮는다는 생각을 한다. 텅텅 비어 있든, 물건으로 가득 차 있든, 공간은 사람의 성향과 분위기를 닮는다. 그의 밝은 웃음과 사근사근한 말투는 피프의 전부처럼 보였다. 비록 테이블도 몇 개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지만, 그를 닮은 맑은 공간에 언제고 사람이 북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두 볶는 고소한 냄새와 여유가 피프 안에 가득 찼다. 문이 잠시 열린 틈을 타, 고소한 냄새와 함께 그의 상냥함이 피프 밖으로 퍼져 나갔다.

 


글 사진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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