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0호] 대전미술의 100년, 그리고 미래

달팽이의 걸음으로 나아간

대전미술의 100년,

그리고 미래

 

대전시립미술관 개관 20주년 기획전 개관식

 


 

  

대전현대미술의 중추 역할을 하는 대전시립미술관은 개관 20주년을 맞이해 대전현대미술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전시를 마련했다. 故강환섭, 故김수평, 김홍주, 故남철, 이건용, 故이종수, 故윤영자, 정해조, 조평휘, 故한정수. 이들은 모두 대전현대미술의 시작에 큰 영향을 끼친 대표 작가이면서 대전미술 10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계속해서 회자되는 작가이다. 이들의 작품에는 대전현대미술의 시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70·80년대 대전현대미술이 태동하기까지 총 열 명의 작가들의 움직임과 함께 대전미술의 뿌리를 한 번에 찾아볼 수 있다. 
개관 20주년 기획전은 내년 1월 20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로 지난 11월 16일에 전시 개막식이 열렸다. 행사 시작에 앞서 이건용 작가의 ‘달팽이 걸음’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이건용 작가는 한국 행위예술 발전의 모태가 되며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꼽힌다. 그가 선보인 신체 드로잉 퍼포먼스 ‘달팽이 걸음’은 1979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선보이며 이름을 알린 이건영 작가의 대표작이다. 달팽이의 느린 걸음을 통해 디지털 시대 문명의 빠른 속도를 가로질러 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통로 중앙에 세로로 길게 놓인 붉은 종이 위에, 이건용 작가가 맨발로 섰다. 개관식을 찾은 사람들이 그를 에워싼다. 마치 레드카펫 위에 서서 플래시 세례를 받는 스타처럼 여유로움이 뿜어져 나온다. 이건용 작가는 양 손에 붓과 물감통이 들려 있다. 붉은색에 대비되는 파란색을 붓에 가득 묻히고 자신이 서 있는 반대쪽 끝을 향해 가로로 물감을 칠하며 앞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쭈그리고 앉아 물감을 칠하는 그의 행동은 거침이 없다. 중간중간 붓의 움직임이 뻑뻑해질 때쯤 “간이 안 맞아”라고 외치면 그를 따르던 남자가 물감을 채워 준다. 쉬지 않고 붓질을 하다 힘에 부칠 때면 “이제 달팽이 걸음은 그만해야겠어. 힘들어”라고 말하며 관객에게 웃음을 던져 주기도 한다. 
관객은 그의 움직임을 따라 함께 걷는다. 그가 물감을 칠하며 지나쳐 간 길 위엔 발자국이 남아 있다. 달팽이가 길을 가듯 천천히 이동한 그의 흔적은 뒤뚱뒤뚱 걸었지만 올곧다. 작가가 지나온 삶 그리고 작품세계와 맞닿아 있는 듯하다. 
달팽이는 느리다. 느린 만큼 한 걸음 한 걸음이 신중하고 무게감 있다. 흔적도 진하게 남는다. 빠르게 걷는 것은 시간을 단축할 수는 있지만,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이루어 낼 수는 없다. 대전시립미술관 개관 20주년 기획전을 통해 달팽이의 걸음처럼 느리지만 진한 흔적, 농밀함이 담긴 대전현대미술의 역사를 만나 볼 수 있다.

 


글 사진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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