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9호] 애들아 함께 뛰어 놀자

애들아 함께 뛰어 놀자

 

공동육아 조합형 친구랑어린이집

 

 

얼마 전, 사립 유치원 비리 명단이 공개되면서 관련 기사가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고 있다. 기존 유아교육 기관 시스템이 가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정부는 사립유치원 비리 파문으로 비리 의심 어린이집 집중 점검에 나섰지만, 유치원 및 어린이집에 관한 신뢰를 얼마나 회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공립어린이집과 유치원 확충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상황이다. 대전에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공동육아 조합형 어린이집 친구랑어린이집이 있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이 유아교육 기관 시스템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거북이, 개구리, 햇살, 첫눈 (왼쪽부터)

 

부모와 교사가 함께 만드는 어린이집

대전 유성구 하기동, 이름조차 낯선 동네에서 친구랑어린이집을 찾아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충남대학교를 지나 낯선 동네에 도착해 짧은 터널을 통과하니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정자가 반긴다. 어느 시골 마을에 도착한 기분이다. 가을을 맞이해 옷을 갈아입은 나무와 풍경들이 눈을 트이게 해 준다. 동네 이곳저곳을 헤매다 친구랑어린이집을 발견했다. 
소담한 현판과 요즘 보기 힘든 흙모래 놀이터가 이곳이 어린이집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조금 전까지 놀다간 듯 조그마한 발자국과 장난감이 가득하다. 창문 너머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친구랑어린이집은 공동육아 협동조합형 어린이집이다. 일반 어린이집이 원장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원장제 시스템이라면, 친구랑어린이집은 원장의 역할을 교사회에서 순환하며 맡는 시스템이다. 교사회는 대표교사와 담임교사로 구성한다. 대표교사는 임기제이며, 부모들로 구성한 이사회에 참여한다. 이사장 역시 1년 임기제로, 매년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이사장을 맡는다. 일반적인 의사결정 구조부터 일반 어린이집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친구랑어린이집이 재밌는 점은 교사와 이사들 모두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평등한 관계와 편안한 상호작용을 위해 어린이집 설립부터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 역시 ‘선생님, ~의 엄마, ~의 아빠’가 아니라 개구리 등과 같은 별명으로 부르며 호칭의 벽을 허문다.
친구랑어린이집 교사 개구리 씨는 2015년 11월부터 친구랑어린이집에서 근무했다. 일반 유치원에서 근무하다 이직을 알아보던 중 선배 교사의 추천으로 면접을 봤다.  
“일반 유치원과는 운영 시스템부터 차이가 있어요. 가장 큰 차이라면 교사와 아동의 비율이 다르다는 거예요. 친구랑어린이집은 교사 한 명당 여섯 명에서 일곱 명 아이를 돌봐요. 그렇다 보니,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들여다볼 수 있죠. 아이의 개별성을 존중해 줄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은 점이에요. 나들이를 매일 진행하는데, 야외활동 장소도 아이들과 함께 결정해요.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환경이죠. 아이들과 같이 산다고 생각해요.”
친구랑어린이집은 차량을 운영하지 않는다. 매일 등·하원 시간이 되면 부모가 직접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고 간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에는 아이가 부모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이다.

 

아이가 아이답게 클 수 있도록

친구랑어린이집은 올해로 개원 20주년을 맞이했다. 일반 어린이집과는 다른 운영시스템으로 어려움도 있었다. 부모들 대부분이 현업에 종사하고 있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이 매끄럽지 않게 처리될 때도 있다. 
올해 친구랑어린이집의 이사장을 맡은 거북이 씨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이를 위해 모인 어린이집이지만, 부모가 더 성장하는 어린이집이라고 생각해요. 모두 처음 하는 일이기 때문에 배우면서 헤쳐 나가고 있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4세부터 7세까지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친구랑어린이집의 등원 약속 시간은 오전 9시 30분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등원하고, 하원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나들이에 나선다. 다른 어린이집과 비교해 바깥 놀이 활동이 많은 편이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원하는 만큼 마음껏 친구들과 함께 뛰논다. 
아이들이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하루는 바로 ‘아마 활동 날’이다. 아마 활동은 부모가 일일 교사 체험을 하는 날이다. 아빠와 엄마를 줄여 ‘아마’라고 부른다. 이날은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아이들의 모든 일상을 부모가 함께한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밥은 어떤 밥을 먹고 어떤 친구를 사귀고 있는지, 교사들의 고충은 무엇인지 배우는 날이다. 
거북이 씨는 어린이집에 다녔던 아이가 재롱잔치를 하는 모습에 회의를 느껴 재롱잔치가 없는 어린이집을 찾다가 친구랑어린이집을 알았다. 여느 다른 어린이집과 다르게 재롱잔치가 아이들이 무대에 서는 날이 아니라, 부모와 함께 노는 날이라는 것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 이사회 활동이나 일일 교사 체험을 하면서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첫눈 씨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가 다른 어린이집을 다녔을 때는 가기 싫다는 말도 자주 해서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아이가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게 보여요. 그런 발전이 참 기분 좋죠.”
요즘 어른보다 아이들이 바쁘고 힘들게 사는 시대다. 놀이에 집중된 어린이집 시스템 때문에 혹여 아이가 뒤처지진 않을까 하는 불안함은 없냐는 질문에 햇살 씨는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어요. 그런데 졸업한 친구 중에는 한글을 다 떼고 졸업한 친구들이 많아요. 그리고 아이를 키워 보니까, 아이가 진심으로 원해서 공부를 시작할 때 흡입력이 정말 놀랍더라고요. 아이가 진정으로 원할 때 교육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이를 전적으로 믿기 때문에 걱정은 내려놨어요”라고 이야기했다.
개구리 씨는 “시기별로 아이들에게 채워 줘야 하는 게 있어요. 유아기 아이들은 스스로 느끼게 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시기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친구랑어린이집의 이사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이사회를 한다. 하지만 일이 많은 편이다 보니 이사회 이외에도 자주 만나고 소통한다. 하원할 때 잠깐 틈을 내 회의하기도 하고, SNS를 통해 수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사회는 매달 운영비를 공개하고, 부모들에게 전달한다. 공정한 절차와 투명성으로 다진 신뢰는 20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오전 내내 흐렸던 하늘이 맑게 개면서 어린이집 지붕 위로 따뜻한 가을 햇볕이 쏟아졌다. 놀이터에서 모여 흙을 주워 담고, 철봉을 올라타며 뛰어놀던 아이들은 점심시간을 알리는 소리에 재빨리 교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골목을 빠져나오는 내내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글 사진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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