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9호] 커피와 도시 건축

커피와 도시 건축

 

그래서 나는 오늘도 커피를 마신다

 


 

어릴 때부터 도서관 가는 걸 즐겨하는 아이였다. 학교 숙제도 거기에서 했고, 시험기간도 도서관에 좀 기웃거렸고. 휴일 날 딱히 할 일 없으면 도서관에서 동화책이며 그림책이며 뭐 그런 것을 보고 자랐다. 책은 좋아하는데 넉넉히 사 줄 형편이 안 되니 전집이든 단행본이든 집에 거의 없었다. 그러니 맨날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일단 책을 좋아했고, 그것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도서관이었고, 다행히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거의 매일 간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것이 계기되어 도서관 독서토론 모임도 했고, 그 모임이 아직까지 연결되어 내 인생 나름의 준거집단으로 남았다.

 

어른이 되어서는 도서관보다 서점 죽돌이를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쭈그리고 앉아서 보고 싶은 신간을 보다가 나올 때 한두 권 사 오는 것으로, 내 시간 떼우기는 늘 그러했다. 생각해 보니 영상보다 활자를 더 좋아한 것 같다.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 온 기억은 없으니. 죄다 남은 시간은 읽기, 뭐 그랬다 싶다. 

 

그만큼 도서관과 서점이 나에게 긴밀하여 책 냄새, 종이 냄새, 헌 책에서 오는 약간 시큼한 냄새까지 익숙하다.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공간의 힘을 좀 즐기는 편이라 어느 도시든 시간이 남으면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까지.

 

내가 도서관, 서점, 책, 책 냄새 등등에 대해 왜 이리 길게 쓰느냐 하면,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거기가 답답하거나 힘들거나 역하거나 토증이 나거나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왜 최근에 지은 공간에 가면 어제 같은 역한 기운으로 토증까지 올라오느냐 그것에 대한 궁금함이고 답답에 운을 띄운 것이다. 

 

어제 그 기운(두통에, 토증에, 현기증까지)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몸이 개운하지 않다. 거의 역대급이다. 이제 그곳에 다시는 안 간다. 아니 못 간다. 소비자가 거기(대형서점)에서는 소비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대형서점만 그런 게 아니라 세종국립도서관도 그렇다. 외적인 건축적 조형미는 와우, 할 만큼 멋지다. 근데 어디에 중점을 두고 건축 내부를 설계했는지 모르겠으나 1층 로비는 좀 그나마 숨을 쉬겠는데, 서고 1층과 2층을 진입한 순간, 숨이 턱 막힌다. 그래서 거기에서 책을 읽는, 어릴 때 내가 경험한 도서관과의 데이트는 꿈도 못 꾸고 미리 메모해 간 책만 대출해서 후다닥 나오기 바쁘다. 세종국립도서관은 신간까지 바로 갖추어진 규모의 도서관이라 그 매력을 버릴 수 없어서 가끔 대출하러 가는데 갈 때마다 오만인상 쓰고 나오고 생수 한 병을 한자리에서 다 벌컥거린다. 저게 도서관이야? 감옥이지. 근데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 거야? 

 

다시, 건축설계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 온다. 도대체 요즘의 건축가들은 설계를 할 때 어디에 중점을 두고 건축물을 짓는지 궁금했다. 일본이나 미국이나 프랑스나(내가 가 본 제법 큰 도시의 유일한 나라들) 고층, 심지어는 신축건물로 도서관이든 박물관이든 어디든지, 폐쇄공포증 같은 그런 울렁거림이 온 적이 없는데 기껏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아, 작년에는 호텔 교육장에서도 그랬구나.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통유리 창문을 망치가 있으면 부수고 싶었으니) 이런 증상이 와서 힘들게 하냐고. 어릴 때 이런 건물이었으면 내가 도서관에서 살았겠냐고. 

 

도대체 건축가들의 가치는 무엇이고, 그것을 용인하는 국가 시스템은 뭔지 정말 궁금해졌다. 이거 어디에다 물어봐야 하나. 이거 누가 좀 길게 설명해 줄 분을 찾아야겠다. 

 

커피나 한 잔 하자. 이 속 울렁거림을 가라앉힐 수 있는 가벼운 신맛 커피 한 잔 하자. 어떻게 신축 건축에서 데이고, 술 생각이 아닌 커피 생각이 간절해지냐. 바람 잘 통하는 도서관에서, 책 냄새가 익숙한 거기 그 서점에서 어릴 때 누린 그 행복을 다시 즐기고 싶은데 그런 건축물이 자꾸 사라진다. 숨 쉬는 건축이 그립다. 
시다모와 예가체프, 뭘로 할까. 가을은 익어 간다.

 


글 김향숙(문화·교육기획가·꿈꾸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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