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2호]판교, 시간이 멈춘 마을을 거닐며 삶을 생각하다

판교,

시간이 멈춘 마을을 거닐며

삶을 생각하다 

 

 

 

40대에게 아련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20대에게는 낯설어서 흥미로운, 색다른 경험을 주었다. 중첩되지 않은 삶의 기억을 가진, 다른 계층의 시선을 동시에 붙들어 둔 풍광은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무엇’이다.
마을에 흐르는 시간은 멈춘 듯 보였다. 시장경제가 제시한 방식에 맞춰 충실한 삶을 꾸려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그 흐름에 발 맞추지 못했을 뿐이다. 개발을 독려하는 나팔이 울려퍼지는 동안 변두리로 자꾸 밀려나며 소외되었던 마을에 다시 사람이 찾아든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찾아와 그 ‘독특해져 버린’ 풍광을 담고, 방송에서는 이런저런 아이템으로 다루고,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그런 풍광과 분위기가 필요할 때 적절한 공간으로도 쓴다. 시간이 멈춰 버린 공간을 또다른 형태로 소비하는 중이다.
특별한 이유없이 소비 자체에 집중하는 것은 전형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의 행위다. 시간이 멈춘 듯 보이는 그 삶터에 자꾸 눈길이 가는 이유도 이런 무모한 행위에 지쳐서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소비 방식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천천히 고개 숙이고 찾아가 위로받아야 마땅한 공간에서 버릇처럼 허겁지겁 소비해 버린다.
이런 대중의 감성 흐름은 대부분 개발을 불러온다. 인간이 대상을 두고 느끼는 감정조차 마케팅 영역에서 재빠르게 인지하고 활용해야 할 요소로 둔갑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그걸 잘해야 똑똑하고 촉이 좋다는 칭찬을 받는다.
무지막지한 포식성을 지닌 자본이, 대중이 감성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며 호응하는 공간을 향해 입을 벌린 채 달려든다. 수십 년 동안 시간이 쌓아 온 소중한 분위기를 독식하려 들며 마음대로 팔아 버린다. 그 안에 녹아 있는 개개인의 삶은 사라지고 팔 수 있는 교환 가치를 지닌 공간만 남는다. 알맹이를 솎아 내고 껍데기를 남겨 허황된 가치 부풀리기를 자행한다.
외지인이 보내는 관심을 확인한 행정은 발 빠르게 개발 계획을 발표한다. ‘관광 산업 활성화’라는 달콤한 말로 지금껏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본 손해를 단박에 메워 보려는 시도를 펼친다. 소중한 삶터였던 곳이 순식간에 팔아야 할 ‘상품’으로 전락한다.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주민과 쌓여 온 시간마저 아주 손 쉽게 대상화해 버린다. 화려한 등불을 향해 내달리는 불나방처럼 맹목적이다. 성공 가능성도 크지 않을 뿐더러 지속가능성도 없다.
잠깐 멈춰서 다양한 사유와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공간에 왜 관심을 두는 시대가 되었는지, 낡고 불편한 것이라 외면했던 공간에 왜 다시 시선을 돌리고 있는 것인지 분석이 필요하다.
지금 이 시대 문제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 측면에서 시간이 멈춘 듯 보이는 공간은 그 어느 곳보다 소중한 ‘학습공간’이어야 한다.
근 100년 동안 달려오는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는지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해결하기 어려워하는 수많은 문제는 왜 생겼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제 우리가 취해야 할 삶의 방식과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어느 시점에서 멈춰선 채 남아 있는 그 공간에서 천천히 다시 시작해 보아야 한다. 시간이 멈춘 듯 남아 있는 그 공간이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이유다.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새로운 대안적 삶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양질의 토양이다. 운 좋게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공간이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맥없이 자본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 


글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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