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8호] 배우 최선은 만나다

배우 최선은

만나다

원래는 영화칼럼을 쓰려고 했었다

2018년 8월 21일,

상암동 카페 디초콜릿

 

 

최선은 배우
2018 <소리가 사라진 마을>
2018 <동명이인 프로젝트 시즌2>
2018 <향수>
2018 연극 <보트여행>


 

# Intro
2005년 첫 영화를 상영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리 크지 않은 스크린에 그리 많지 않은 동료와 모여 앉아. 수없이 봐 익숙한 나의 것이 어느새 독자적인 무엇으로 바뀌어, 우리 속에 하나일 뿐인 내게 공평하고 낯설게 다가온, 나의 영화. 잔뜩 꾸며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가족의 모습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듯, 나는 내 첫 영화를 만났다.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지 몰라,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를 기웃거리며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뭘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뭘 할 수 있는지 견주던 때. 그렇게 만든 첫 영화의 제목은 <Storygoes>(이야기는 계속되고)였다. 그 후 많은 이야기가 내 삶에 담겼다. 반짝이며 세상 가장 높이 올라간 것 마냥 빛났던 순간도, 모든 불을 꺼 놓고 웅크려 누워 깊숙이 괴로워하던 순간도 담겨 있다. 그리고 이제 와 고백하자면, 나는 그때만큼 영화 만드는 일이 즐겁지 않다. 영화가 소중하지 않아서도, 영화가 나에게 준 행복이 작아서도 아니다. 그 후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사용했어야 했다. 좋은 영화를 꺼내 놓겠다는 일념으로 나를 필요 이상 소모해서도, 누군가가 나를 소모하는 것을 허용해서도 안 됐다. 나는 단단하고 강하니, 자잘한 상처쯤은 곧 이겨 낼 거라 믿어서는 안 됐다. 나는 그 몇몇 선택들을 후회한다. 상암동 어디에선가 다시 내 영화를 선보이던 날, 동시에 자신의 첫 영화를 상영하는 배우와 마주 앉았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잘 기억나지 않던 나의 처음을 떠올리며, 그리고 오랜 후에 이 기록으로 그가 자신의 처음을 떠올릴 수 있길 바라며.

 

경원  오늘이 두 번째 GV인가?
 
선은  세 번째예요.
 
경원  저번 대전 상영에선 작품마다 평을 해야 해서 힘들었지?
 
선은  힘든 것보다, 스스로 좀 더 생각하고 말하지 못한 것 같아요. 답변하면서 내가 이 작품을 더 충분히 고민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경원  연극도 끝나면 무대로 나와서 같이 이야기하곤 하지?
  
선은  저희 팀 공연은 아직 관객과의 대화를 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GV는 이 영화가 처음이에요.
  
경원  저번에 다른 배우도 말했지만, ‘이 영화가 데뷔작이에요’라는 말. 선은을 포함해 몇몇 배우가 이 영화로 인해 첫발을 뗀다는 사실과 그 상징성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으면서도, 본인들만큼 크게 느끼고 있진 못했거든. 근데 후시녹음 하면서 몇 번 ‘데뷔작’이라는 단어가 오가니까, ‘그렇지, 맞아. 더 꼼꼼하게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선은은 어땠어?
 
선은  빈말이 아니라, 저는 이 영화가 데뷔작이라서 정말 좋아요. 작업과정도 좋았고. 사실 대본을 받고 시작했으면 이만큼의 애정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어쨌든 저로부터 시작된 무언가가 영화로 만들어진 거고, 그렇게 만들어진 걸 처음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부족함도 많이 느꼈어요.
 
경원  다행이다. 선은은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선은  저는 제 나이에 무딘 것 같아요. 애초에 반짝해서 떠야겠다는 생각이 없거든요.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했지만, 20대 초반에 친구들이 대학 갈 때 저는 학교도 안 가고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런데 연기학원 같이 다녔던 언니, 오빠들이 뮤지컬 무대에 서고 방송하는 걸 보면서 엄청 조급한 기분이 드는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안 한 것 같고. 그때 그런 불안감이나 조급함을 다 느껴 버려서, ‘어차피 끝까지 연기할 거니까’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요즘은 또 다들 결혼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만두는 친구도 많은 것 같고요.
 
경원  비슷한 나이의 여자배우들이 안 하는 게 느껴져?
 
선은  느껴져요. 어릴 때 했던 친구들 절반 이상은 그만둔 거 같아요. 요즘 독립영화 쪽도 여자배우들 보면 외려 30대 분들이 많더라고요.
 
경원  어려 보여도 프로필 보면 30대인 경우가 많지.
 
선은  맞아요.
 
경원  사람들이 선은을 처음 봤을 때 배우랑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해, 아니면 말은 안 하지만 일반인 느낌이라고 보는 것 같아?
 
선은  말도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웃음) 연기한다고 하면 진짜 깜짝 놀라요.
 
경원  (웃음) 어떤 반응이야?
 
선은  어울린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예술 쪽을 한다면, 분위기가 미술이나 음악이랑 어울린다고 보는 것 같고. 제가 엄청 활발하지도 않고 말주변이 좋은 것도 아니라서 ‘어떻게 연기를 해?’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경원  처음 시작할 때도 그런 반응이었어? 주변에서 어울린다, 어울린다 해야 힘도 날 텐데.
 
선은  그래서 오기가 좀 생겼어요. 중학교 때 오디션을 봐야 붙는 학원에 다녔거든요. 어릴 때니까 소문이 나잖아요. ‘쟤 연기한대’ 하면서. 근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잠깐 김제로 이사를 가야 했는데, 소문이 ‘쟤 연기하려고 서울로 이사 간대’ 이렇게 됐나 봐요. 학교 짐 정리하고 복도를 내려오는데, 얼굴만 아는 남자애가 ‘니가 무슨 연기를 하냐?’ 그러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엄청 상처를 받았었죠.
 
경원  근데 어쩌다 계속하게 됐어?
 
선은  제가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MTM(연기학원)을 다녔거든요. 촬영장이 궁금해서 그 친구를 따라갔다가, 보조출연자가 부족해서 저도 얼떨결에 처음 출연을 한 거예요. 근데 너무 재밌고, 배우들 가까이서 보는 것도 신기했어요. 그리고 촬영장 분위기가 되게 좋아서, ‘나도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됐던 것 같아요.
 
경원  브라운관에 나오는 어떤 연기자를 보고 ‘저 사람처럼 예쁘게 꾸며서 사람들 앞에서 멋지게 보여야지’ 하는 욕망보다, 촬영장에서 ‘저런 사람들과 저 일을 해 보고 싶다’가 먼저였던 거네?
 
선은  네.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거기 앉아 있는 게 재밌는 거예요.
 
경원  (웃음) 살짝 즉흥적으로 결정한 느낌이 드는데.
 
선은  (웃음)
 
경원  20대에 시작한 친구도 있지만, 실제로 초등학교 때부터 연기가 하고 싶었다는 친구도 많더라고. 나는 초등학교 때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되게 신기했어. 그럼 선은도 연기를 한 10년 넘게 한 건데, 사실 신인이라는 말이 좀 그렇다. 근데 또 매체 쪽에서는 신인이고.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그 사람이 신인이어야 하는 건 아닌데 말이야. 선은은 프로필 돌리거나 할 때, 사람들이 본인을 잘 모를 테니까 ‘미리 좀 해 놓을걸’ 하는 생각도 들어?
 
선은  좀 더 일찍 움직였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드는데, 나의 때가 있겠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엔 ‘내가 저 친구보다 연기 먼저 했는데…’ 그런 게 있었는데, 저 스스로가 연기하는 걸 점점 객관적으로 보게 되니까, 요즘은 ‘아, 나는 어디 가서 연기 10년 했다고 말하면 안 되겠다’ 그래요. (웃음)
 
경원  왜? 
 
선은  그동안은 제가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는지 너무 몰랐던 것 같아요. 좀 부끄러워요. 그래서 제대로 연극한 지는 3~4년 됐으니까, 그 정도 기간으로 말해요.
 
경원  그림을 예로 들면 웹툰으로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입시하면서 소묘나 그런 건 이미 다 떼 놓고 자기 스타일로 그리는 사람도 있잖아. 선은 같은 경우는 학원이나 연극부에서 어느 정도 기본기를 배우고 연기해 온 방식이야, 아니면 무대 경험하면서 얻고 있는 방식이야?
 
선은  비교적 무대 경험 쪽에 좀 더 치우친 것 같아요. 연극부 때도 뭔가 배우고 했다기보다 공연을 만들면서 배운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경원  무대에선 평소랑 다르게, 크고 과하게 연기하는 편이야? 어때?
 
선은  아뇨. 동료들한테 ‘너는 카메라 연기해야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는데, 제 선생님들이 다 연극적인 걸 요구하는 분들이 아니셨어요. 오래 배웠던 선생님 같은 경우도, 기술적인 것보다 항상 텍스트 속의 감정과 마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셨어요. 그래서 ‘이런 감정은 이렇게 호흡해야 한다’는 방식으로는 안 배웠던 것 같아요.
 
경원  한편으론 기술도 되게 중요하잖아? 현장에서는 안 기다려 주니까. 빨리빨리 해서 딱 그 연기를 해내야 하지. 그래서 감독들도 ‘모르겠으면, 그냥 환하게 웃어!’ 해 버리는 거고. 어떤 순간엔 연기 기술이 절실할 때도 있어. 나는 뭘 배우는 것보다, 독자적인 트레이닝과 다양한 촬영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선은  그래서 요즘 오디션 공고를 유심히 보고 있어요. 저번 영상자료원 GV 때 다른 배우들은 계속 뭔가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안 되겠다, 열심히 해야겠다’ 했는데 제 프로필을 본 한 감독님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 감독님도 원하는 이미지를 못 찾고 수차례 공고를 내고 계셨는데, 제가 감독님이 생각하는 이미지였나 봐요.
 
경원  그럼 첫 단독 주연 단편이었던 거네?
 
선은  (웃음) 네.
 
경원  (웃음) 와, 내가 근황을 안 물어봤었구나…
 
선은  (웃음) 어떻게 나올지 되게 궁금해요.
 
경원  프로필에 <동명이인 프로젝트> 스틸도 좀 첨부했어?
 
선은  그 영향도 좀 있었죠. (웃음)
 
경원  현장은 어땠어?
 
선은  또 되게 달랐어요. 감독님이 말하는 느낌은 알겠는데,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어려웠어요.
 
경원  그래. 작품 많이 했으면 좋겠어. 프로젝트 시즌1, 2 배우들 보면 이것저것 많이 하잖아.
 
선은  그러니까요. 제 주변 사람들한테 <동명이인 프로젝트> 시즌3에 프로필 넣으라고 엄청 이야기하고 있어요. (웃음)
 
경원  선은은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되게 많이 하고 있지 않았어? 한 네 개 하고 있던 느낌이었는데.
 
선은  네. 세 개 하고 있어요.
 
경원  방세가 55만 원이라고 했었나?
 
선은  (웃음) 52만 원.
 
경원  52만 원. 20대 배우가 서울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번 해 보자. 부모님이 서울에 계시진 않지?
 
선은  네. 전주에 계세요.
 
경원  배우는 꼭 서울에 있어야 하나?
 
선은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전주에 있었으면 훨씬 편했을 수도 있는데, 괜한 고집이라고 해야 하나…
  
경원  전주는 십몇 년 사이에 되게 많이 발전했잖아. 근데 사실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거나 영화 인력이 많진 않지. 부산이랑 서울 말고는 마찬가지지만. 근데 비싼 월세 내면서 서울에 사는 배우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1년에 한두 작품 하는 경우도 많은데, 꼭 서울에 있어야 하나. 월세랑 생활비 충당하는 데만 돈이 엄청 들어가니까. 나 같은 경우 서울을 좋아하지 않아서 여기저기서 살았는데, 대전에서는 월세 20만 원이었고 문경에서는 월세 6만 원이었단 말이야. 물론 나야 글쓰기엔 지방이 좋은데, 배우들이 일을 하기는 힘들겠지. 서울의 삶이 비용 대비 효율이 나는 것 같아, 어때?
 
선은  만약 연극을 안 했다면 지방에 내려갈 생각도 했을 것 같아요. 근데 연극에 들어가면 두 달 연습하고 그러니까.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돈이 되는 것도 아니어서, 오히려 대출받게 되고 그런 것 같아요.
 
경원  대출까지 받아?
 
선은  (웃음) 네…
 
경원  대출은 담보가 있어야 하잖아.
 
선은  신용대출로, 아르바이트 월급 들어온 이력 증명해서 대출받았어요. 그때가 연극을 막 시작했을 때여서, 저랑 친구랑 사비로 무대 올렸거든요. 아르바이트해서 제작비 만들어 놓고, 막상 연습 들어가면 아르바이트를 못 하는 거죠. 연극은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습하니까요. 그래서 두 달 일을 쉬면 두 달 생활비를 대출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게 악순환이 되다 보니까, 이자 내려고 또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렇게 됐어요.
 
경원  지금도 대출이 남아 있어?
 
선은  (웃음) 아직 많이 남았어요.
 
경원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진다.
 
선은  (웃음)
 
경원  일을 안 할 수가 없네. 다들 그렇게 살아?
 
선은  (웃음) 제가 유독 그런 것 같아요. 일을 자꾸 벌여서.
 
경원  혹시 부모님에게 손을 좀 벌려 보자면…
 
선은  (웃음) 부모님 쪽도 여력이…
 
경원  내가 계속 아픈 곳을 건드리는구나.
 
선은  근데 제가 다른 데 썼으면 자책하고 그랬을 텐데, 그런 게 아니니까 억울하진 않은 것 같아요. 내가 벌인 일이니까.
 
경원  연극이고 영화고 절대 사비로 만드는 거 아니지만, 영화는 만들었으면 그게 평생 돌잖아. 내가 연극을 안 해 봐서 모르겠지만, 그때의 그 무대는 사라지지 않았어? 그렇게 생각하면 허탈하지 않아?
 
선은  허탈하진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어떤 팀에 속해서 출연했으면 재정적 부담이 없었을 텐데, 저희가 팀 만들고 사람들 섭외하고 페이도 줘야 하고, 무대 제작도 해야 하고 소모품도 많았고 연습실도 필요했고.
 
경원  그게 지금의 ‘좇아가다’라는 팀이야?
 
선은  네. ‘좇아가다.’ 지금 3년째 하고 있어요.
 
경원  거기선 어떤 역할이야?
 
선은  팀원이 네 명밖에 없어서, 기획은 다 같이 하고 저는 거의 글을 썼어요.
 
경원  작(作).
 
선은  네. 작을 거의 하고, 홍보 같은 것도 하고.
 
경원  희곡 작품이 있는 거네. 그걸로 본인도 연기를 하고? 
 
선은  연기할 때도 있고, 연출할 때도 있고요.
 
경원  그렇게 올리면 관객들이 와서 좀 똔똔이 돼?
 
선은  (웃음) 흑자가 나는 일은 없고요, 적자를 면하면 다행이죠. 아직 저희 팀이 그렇게 활발히 활동하는 팀이 아니어서 보러 와도 지인들이 많이 오세요. 거기에 할인이랑 초대권 나가니까 더 수익이 없어요.
 
경원  점점 무거워진다. 대출이 있다 그러고, 월세가 52만 원이고, 거기에 극단을 운영하고 있어서 돈이 들어가고.
 
선은  (웃음) 근데 이제 한 3년 했으니까 저희도 작품이 쌓여서, 이제 지원 사업 같은 것도 좀 넣고 하려고요.
 
경원  그래.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하셔?
 
선은  엄마는 응원해 주시는 편이에요. 근데 대출 이야기 했을 때는 엄마도 한숨을 쉬시더라고요. 항상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해 주시는데, 그때는 진짜…
 
경원  나도 대출 딱 들었을 때, ‘아, 대출… 어떤 대출일까… 제2금융권일까.’
 
선은  (웃음)
 
경원  아버지는 뭐라고 하셔? 
 
선은  사서 고생이다, 그러시죠.
 
경원  우리가 다 듣는 이야기긴 하지.
 
선은  사실 제가 연극 시작할 때 아버지랑 한번 크게 싸웠거든요. 그때 아버지는 계속 전주 내려오라고 하셨던 때였고, 저는 제대로 연극을 하려던 때여서. 아버지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연기를 하는데, 니가 될 것 같냐’고 하셔서 처음 아버지한테 대들었어요. 그리고 다음 날인가 아버지께서 울면서 전화하셨어요. ‘우리 딸이 진짜 잘 될 수도 있는데, 아빠가 돼서 그렇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그 이후로는 연기하는 것에 대해 크게 뭐라고 안 하세요.
 
경원  아버지가 밤새 못 주무시면서 생각하신 바가 있으셨나 보네. 
 
선은  제가 처음으로 대드니까, (웃음) 느낀 게 있으셨나 봐요.
 
경원  전주분이셔?
 
선은  두 분 다 김제분이세요.
 
경원  전북 사람들이 착해.
 
선은  (웃음)
 
경원  선은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선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경원  여기 서울의 시스템처럼, 우리는 필연적으로 환경의 지배를 받잖아.
 
선은  그렇죠. 근데 주변 환경이 어떻든 크게 개의치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우스운 표현이지만, 나그네처럼 살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경원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 ‘이 일을 그만둘 수 있다. 그만둔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이상하다.’ 우리는 사실 그만둔다는 생각을 안 한단 말이야. 잘 안 해, 계속 작품 해야 하니까. 근데 이상한 거야. 나는 왜 그만둔다는 생각을 안 할까. 계속해야 된다는 강박 때문에 나란 사람이 안 행복한 순간을 외면하고 넘어가는 게 맞을까. 내 경우엔 이 지점이 몇 년 전이랑 좀 달라진 부분이야. 
 
선은  최근에 같이 연극하던 동생이 연기를 그만뒀어요. 근데 저희가 생각했을 땐 진짜 연기 잘하는 친군데, 본인은 연기하는 게 행복하지 않다는 거예요. 친구들은 뜯어말렸죠. 분명 이 친구는 자기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건데, 우리는 왜 그걸 축복해 주지 못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만두는 게 되게 마음 아픈 일처럼, 그 친구의 인생이 불행해질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경원  말리는 친구들도 스스로 휘청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을 수도 있지. 상징적인 상실감 같은 거. 그건 이 일이 빡쎄서 그래. 우리는 경주마처럼 눈 좌우에 가림막을 씌우고 달리는 것 같아. 어떤 일이 있어도 멈추면 안 될 것처럼. 오래 기다려야 하고, 기회가 왔을 때 뚝심 있게 밀고 나가지 않으면 완성이 되지 않으니까. 선은도 아직은 이 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범주 안에 있겠지?
 
선은  네. 아직은 연기하는 게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그래서 버티는 쪽이죠. 근데 얼마 전에 배우 김태리 씨 인터뷰를 봤어요. 앞으로 계속 연기할 거냐는 질문에, 언제든지 다른 거 하고 싶으면 그만둘 수 있고, 계속 이 일을 해야 한다는 틀에 자기를 가두는 게 이상한 일인 것 같다는 내용이었어요.
 
경원  맥락이 다를 순 있지만, 결과적으로 현명한 생각인 것 같아. 물론 어떤 감독과 배우가 현장에서 자신을 다 던지고 있는 모습은 영원히 감동적일 거야. 나는 처음에 그게 되게 매력적이었거든. 나를 다 쓸 수 있잖아. 의미 있는 일에 나를 다 쓸 수 있는 건 축복이었다고. 그런데 말이야. 이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영화를 하고 있는 이유가 다 같을까? 각기 다른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왔을 거야. 그럼 그들 모두가 원하는 게 단지 좋은 영화일까? 좋은 영화라는 게 뭔지 말하긴 힘들지만, 좋지 않은 영화가 극장에 걸려 있는 건 쉽게 발견할 수 있지. 도대체 이런 건 누가, 왜 만들었을까. 이런 영화에 왜 투자하고 제작하고 참여했을까. 뭘 위해서?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 아니면 관객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아니면 그래도 뭔가 훌륭한 것을 남기기 위해서? 누군가는 그렇겠지. 그래야 하고. 근데 영화가 아무리 망가져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자기 이득만 챙기는 사람도 있고, 약속한 일은 엉망으로 해 놓고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 평소 연기에 대한 고민은 조금도 하지 않으면서 어찌어찌 배역 따내서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도 있지. 그것도 능력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사람이 영화가 좋아서 자기 영혼까지 때려 박고 있는 사람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과연 부끄러워할까, 아니면 불편해할까. 누구는 권력을 가지고 그의 열정만 이용해 버리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과연 기회랍시고 거기에 응해야 할까? 선은도 영화를 하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 물론 어떤 일을 하든 전혀 다치지 않을 순 없을 거야. 흔들거리며 부딪히고 상처가 나겠지. 하지만 계속 좋은 영화를 만들려면, 매 순간 그만둘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과 자기 자신은 절대 거래 대상이 아니라는 걸 믿으면서. 그래야 자기를 지키면서 잘 싸워나갈 수 있어. 근데 너무 내 이야기만 한 것 같네. 선은은 이제 막 프로필 넣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기운 빠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웃음)
  
#FIN 
  그는 오래전 이스라엘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방황하며 답을 얻던 시기였고, 언젠가 서른이 되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도 걸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빠르면 20일에서 길면 40일 정도 되는 거리고, 수많은 사람이 걸으며 자신과의 시간을 갖는 곳이라는 설명도 더했다.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으로 마무리되는 어느 책의 문구에 동의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 목적이라니. 내년에 서른이 되는 그의 앞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알 순 없지만, 가고자 하는 곳까지 모쪼록 잘 살펴 걷길. 그리고 예정보다 일찍 지치지 않길. 흔하지만, 어떤 순간 응원이 되던 문장으로 바꿔 적으며 글을 맺는다. ‘금이라고 모두 반짝이는 것은 아니며, 방황하는 이들이 모두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 기고를 마치며.
2015년 8월에 첫 기고를 시작해 3년이 흘렀다. 영화칼럼으로 시작해, 대전을 떠나며 인터뷰로 전환해 기고했다. 그리고 이제 마치려고 한다. 지나고 보면 대전에서 참 많은 작업을 했다. 두 편의 영화를 찍었고, 네 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덕분에 작은 상도 받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가끔 생각한다. 2015년 5월, 월간 토마토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혼자 타지에서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겠다고. 글을 통해 관계 맺고 이런저런 도움을 받아 그나마 숨 쉬고 살 수 있었다. 감사하다. 오래전부터 지난 글들을 책으로 묶어 보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대단한 감독이 아니라 부끄러웠다. 영화나 잘 꺼내 놓을 것이지, 내가 뭐라고 책을 내나 싶었다. 하지만 내보일 가치가 있는 글이라면 잘 묶어 보자 했고, 10월 중 출간될 예정이다. 역시 감사하다. 언젠가 다시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기고하겠다. 나를 알고 계신 분들, 그곳에서 잘 지내시기 바란다.
 

글 사진 이경원(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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