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1호] 닭 울음소리가 눈꺼풀을 가볍게 들어올린다

닭 울음소리가

눈꺼풀을 가볍게 들어올린다

산촌마을 시마네현 오난정

 


 

온종일 비가 내렸다. 일본 시마네현 오난정에 도착했을 때 타도코로 공민관 앞에는 주민이 모여 크리스마스 맞이 장식등(일루미네이션)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빗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키 작은 나무에 전선을 감았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아이들과 청년,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였다.
인구 1만 1천 명 남짓한 오난정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를 혁신적인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관심을 끌었다. 슈퍼공무원이라 부르는 오난정 공무원 테라모토 씨. 그가 이끌었던 지산지소 운동과 연결한  ‘A급 구루메’ 콘셉트의 지역 활성화 정책이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구루메’는 일종의 식도락이다. 오난정 지역에서 난 최고 품질의 축산물과 채소 등을 활용해 고급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식도락가를 끌어들인다는 전략이었다. 제법 괜찮은 성과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오난정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에 많은 영감을 주는 정책을 폈지만, 여전히 문제 해결을 위해 오난정을 12개 지구로 나눠 다양한 사업을 벌인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주민
 
  1.
타도코로 지구도 그 12개 지구 중 한 곳이다. 타도코로지구만들기회에는 30명의 주민이 참여해 세 개 부로 나눠 활동한다. 후레아이부와 니기와이부, 아키야가츠요부다. 각 부는 순서대로 주민 조직과 네트워크, 상업 활성화, 빈집 활용이라는 과업 목표를 설정해 활동한다. 우리가 찾은 일요일에 모찌 찍기 체험을 펼치고 일루미네이션 꾸미기를 주도한 것은 후레아이부다. 타도코로지구만들기회가 목표하는 지점은 ‘마을 활력 찾기’다.
공민관 차원에서는 마을지도만들기 작업에도 정성을 쏟는다. 타도코로 지구를 다시 다섯 개 구역으로 나누고 각 구역별로 마을지도를 만들었다. 이미 네 개를 완성했고 한 개가 남은 상태다. 지도만들기는 애향심을 키우는 작업으로 지역 자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있다.
오난정 관광 진흥 담당자 중 한 명은 제트 프로그램(JET Program)을 통해 일본에 온 미국인 캐서린이다. 제트 프로그램은 어학 지도 등을 행하는 외국 청년 유치사업이다. 충실한 외국어 교육과 청년 교류를 통한 지역 차원의 국제 교류 발전에 기여해, 일본과 외국의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일본의 국제화 촉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캐서린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오난정 상공관광과에 배치받았다. 현재는 이 지역의 인바운드 관광객을 늘리는 프로젝트를 맡아 움직인다.
“내년 4월이면 일본에 온 지 딱 3년이다. 오난정에서 계속 계약을 원하면 최대 2년 정도 더 일할 수 있다. 오난정에서 동의한다면 난 계속 일하고 싶다. 이곳에 사는 사람이 정말 좋다. 자연도 좋고 지역에서 난 재료로 만든 음식도 마음에 든다. 이곳에서 긴장을 풀고 지내는 삶이 무척 마음에 든다.”
 
  2.
타도코로 지구는 주민 민박을 활성화하기 위해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인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준비 중이다. 오난정 ‘사단법인 커뮤니티 파트너’ 히다카 히사시 대표이사는 민박과 민숙은 분명하게 차이가 있고 자신들은 민박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산촌마을 인바운드 사업은 결국 농가 민박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민숙과 가장 큰 차이는 단순히 밤을 지내는 숙소가 아니라 현지에 사는 사람과 깊이 있는 교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히다카 대표이사는 태블릿을 꺼내 들고 자신이 경작하는 논에서 기계로 써래질을 하는 금발의 외국인 사진을 보여 준다. 그가 일본 산촌 문화를 체험하고 주민과 교류하며, 얼마나 흥미로워 했으며 즐거워 했는지를 거듭 강조했다.
캐서린은 교토에서 가진 전국 제트 프로그램 참가자 활동보고 대회에서 자신이 발표한 자료를 가지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2017년 기준 오난정에는 모두 27개 농가 민박이 있었지만 현재는 17개만 남은 상태다. 민박 관련법을 개정하고 재등록 행정절차가 바뀌면서 포기한 농가가 많아서다. 여기에 주변 도시 초등학교와 연계해 정기적으로 진행했던 교류 사업이 종료된 것도 영향을 끼쳤다. 민박 이용자가 2014년 연간 최대 478명이었다가 2017년 77명으로 큰 폭 하락했다. 77명 중 64명이 외국인이었다. 일중 교류협회를 통해 일본에 온 중국인 관광객과 시마네현 대학생 모니터링 투어에 참여한 외국인이다.
캐서린은 농가 민박으로 인바운드 관광객을 늘려야 하는 시점에서 해결해야 하는 걸림돌로 몇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연령이었다. 지역 주민 고령화로 자연스럽게 민박 운영 주체 연령도 높아지면서 활성화에 어려움이 있다는 분석이었다. 이와 함께 언어 문제와 민박 제도 변경 등도 이유로 꼽았고, 차가 없으면 접근이 어려운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했다. 
 
변덕쟁이 케이지 씨의 소바집
 
  3.
17개 남은 민박 중 우리가 찾아간 곳은 ‘변덕쟁이 케이지의 소바집’이었다. 오난정 남쪽 히로시마현 경계와 가까운 곳인 가미타도코로에 있다. 케이지는 소바집과 함께 농가 민박을 운영한다.
어둑해진 후에 도착한 민박집에 키가 무척 큰 ‘변덕쟁이 케이지’ 씨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근대 목조 주택 형태를 갖춘 민박집은 주인이 함께 사용하지 않는 독채 형식이었다. 일본 전통 다다미를 깔아 둔 방에 히노끼 욕조를 갖추었다. 친절하게 안내해 준 방은 깨끗하다. 방 중앙에 정갈하게 깔아 둔 이불이 인상적이었다. 짐을 풀고 소바집으로 갔다. 케이지 씨는 약한 비가 내리고 있다는 이유로 차를 가지고 왔다. 
케이지 씨의 소바집은 2차선 도로 길 건너편이었다. 민박집과는 불과 100보 정도 떨어진 곳이다. 출입문 앞에는 ‘오늘 예약 손님이 있어, 일반 손님을 받지 못한다’는 안내판이 있었다. 예약한 손님은 우리 일행 세 명이었다.
좌식 테이블을 갖춘 식당 내실은 역시 일본식 다다미가 깔렸다. 입구 쪽에는 일본식 전통 난방 장치인 이로리를 설치했고 그곳엔 꼬챙이에 꽂힌 ‘아이’라는 생선 세 마리가 익고 있었다. 식사를 하는 시점에 마춤하게 익었다.
체험 공간은 그 내실 앞이다. 체험장이 아닌 식당이다보니 체험에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은 무척 협소했지만 셋에게는 충분했다. 소바 체험에 필요한 재료는 메밀 가루와 물이 전부였다.
“다른 소바집은 찰기를 주기 위해 밀가루를 섞기도 하는데, 난 메밀 가루만 쓴다. 직접 재배한 메밀이다. 메밀 농사도 짓고 쌀 농사도 짓는다. 세 명이서 8ha 정도를 경작한다. 소바는 원재료가 얼마나 좋은지가 맛을 결정한다. 원재료가 맛있으면 누가 어떻게 만들어도 맛있다.”
무뚝뚝한 첫인상과 달리 적당히 농담도 하며 설명을 잘한다.
“내가 워낙 면요리를 좋아해서 처음에는 타이완 라멘집을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고, 다음에 우동집을 하려고 했는데 숙성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귀찮았다. 라멘과 우동보다 만들기가 편한 소바로 메뉴를 결정한 이유다. 소바 만드는 법은 책 세 권으로 배웠다.”
자신을 변덕쟁이라고 일컫고, 책으로 소바를 배웠다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본래는 고집불통이라고 이름을 지으려 했는데, 변덕쟁이가 더 나은 것 같아 그렇게 지었단다. 500그람 메밀 가루를 둘로 나눠 하나는 케이지 씨가 직접 반죽해 밀대로 밀고 칼로 잘라 소바면을 만들었다. 나머지 반은 우리 일행에게 해보도록 했다. 반죽을 치대는 과정이 만만치 않게 힘들었다.
“반죽하는 기계가 있기는 하지만 살 돈도 없고 기계를 놓을 공간도 없다. 무엇보다 기계를 사용할 만큼 손님이 많이 오지 않는다.”
케이지 씨와 얘기를 나눌수록 소바맛이 더욱 궁금해진다. 스승 없이 책으로 배우고 기계를 놓을 필요도 없을 만큼 손님이 많지 않다는 걸, 참 해맑게 말한다.
 
  4.
소바면을 모두 완성한 후 식탁에 자리를 잡자, 주방에서 케이지 씨 아내 미와코 씨가 일행이 체험하는 동안 준비한 다양한 음식을 하나둘 식탁 위에 올려 준다. 이곳에서도 음식 재료에 지산지소는 변함 없다. 이런저런 음식을 맛본 후 케이지 씨와 우리 일행이 만든 소바면이 올라오는데, 예상한 소바와는 사뭇 다르다.
동그란 그릇에 삶은 소바면이 담겨 나왔다. 쯔유와 소금과 함께. 얼음 가득한 국물에 소바를 적셔 먹거나 아예 담가 나오는 걸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케이지 씨는 그냥 소금만 찍어 먹어도 맛있을 것이라 권한다. 담백하고 고소함이 강하게 입안에 번진다. 한없이 깔끔하다. 식사 자리에 주인 내외도 함께 앉아 음식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자리가 즐겁다.
케이지 씨는 열다섯 살에 고향을 떠났다. 전기 일도 좀 하다가 현청 공무원으로 일했는데, 형이 돌아오라고 연락을 했다. 고향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쉰 살까지는 공무원 생활을 해야 연금이 제대로 나와서 조금 더 버티다가 고향에 돌아왔다. 소바집 문을 연 건 이제 8년 정도 되었다. 
“부모님과 형님이 6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산다. 고향에 돌아온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현청에 공무원으로 일한 30년 동안 위궤양을 달고 살았다. 사람 관계가 정말 힘들었다. 고향에 돌아오고 위궤양이 싹 나았다. 너구리와 멧돼지가 가끔 스트레스를 주지만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는 전혀 없다.”
유쾌하고 즐겁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온통 암흑인 주변 경관이 묘한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자동차 소리도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알람 소리를 듣기 조금 전, 닭 울음소리가 먼저 들렸다. 눈꺼풀이 가볍게 열렸다.

글 사진 이용원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