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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8호]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2018 토마토 영화 찍기로 결심하다
<2018 토마토 영화 찍기로 결심하다> 연재를 쉬는 지난 3개월간 월간 토마토 직원들은 영화를 잠시 잊은 듯 보였다. 월간 토마토는 과연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낙타는 한 번씩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영화를 찍긴 할 거냐?” 그때마다 모두 “영화 찍을 거다!”라고 호기롭게 대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전아트시네마에서 영화 관련 강의가 열린다는 소식이 텔레그램에 올라왔다. 개주, 자무쉬와 땅콩은 또 대전아트시네마로 향했다. 영화를 찍기 위해 아직 배울 것이 너무나 많았다. 이날은 성승택 촬영감독의 ‘영화 촬영과 조명’이라는 강의가 있었다.
공간도 인물을 설명하는 요소다
토요일 오후 대전아트시네마 시네마테크관에는 영화 촬영을 배우고자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생각보다 대전에서 영화를 찍거나 혹은 찍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았다. 땅콩과 자무쉬, 개주는 맨 뒷자리에 앉아 존재를 숨기고자 했다.
성승택 촬영감독은 <오늘의 연애>, <10분>, <점쟁이들>, <해부학교실> 등을 촬영하고 2017년 제18회 장애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옆집>을 연출했다. 서양화를 전공한 성승택 촬영감독은 사진을 오래 배웠다. 졸업 즈음에 영화가 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해 영화를 시작했다.
“촬영감독의 첫걸음은 바로 사이즈입니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그들이 현장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알아야 합니다. 현장 용어를 알아야 대화할 수 있겠죠? 제일 처음 영화과에 가면 배우는 것이 바로 ‘사이즈’입니다. 클로즈업, 바스트, 웨스트, 미디움샷, 니샷, 풀샷 등이 있죠. 이쯤은 다 알고 계시죠?”
그래도 나름 촬영 관련 수업을 몇 번 들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강좌를 듣는 사람들 모두 진지한 표정이다. 무작정 영화를 찍겠다고 나섰던 월간 토마토의 무모함이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클로즈업은 어떨 때 사용할까요?”
“배우의 표정이 중요할 때…?”
“네. 그렇죠. 표정이랑 감정을 강조하고 싶을 때 보통 클로즈업으로 촬영하죠.”
“바스트샷의 경우도 비슷할 거 같은데, 주로 중요한 대화씬의 경우 바스트샷을 쓰는 것 같아요. 이건 제 경우예요. 웨스트샷과 바스트샷의 차이는 뭘까요? 웨스트샷을 찍을 때 보시면 여백이 생겨요. 바스트샷은 여백이 없는데, 웨스트샷은 여백이 생기죠. 공간을 얼마큼 활용해서 촬영할 것인지 생각해야 해요. 인물의 감정은 얼굴만으로 표현되는 게 아니에요. 공간이 인물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예요.”
성승택 감독은 강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신이 촬영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 주며 강의를 진행했다. 임수정 주연의 영화 <당신의 부탁> 중 한 장면이 재생된다. 식당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다.
“이 장면을 촬영할 때 어색한 자리라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 음식 자리를 비우고, 주변을 어둡게 했어요. 이 자리가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전하는 자리기 때문에 여백이 거의 없는 바스트샷으로 촬영했죠. 시선을 통해서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죠. 이런 감정들이 잘 전달되는지 모르겠네요(웃음).”
영화의 모든 장면에는 감독의 의도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똑같은 장면을 촬영하더라도 사이즈, 카메라 각도에 따라 수많은 언어가 만들어진다고 성승택 촬영감독은 이야기한다. 같은 대본이라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분위기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앞서 말씀드린 사이즈만 가지고도 정말 많은 언어를 만들 수 있어요. 언어를 이해하고 나면, 영화를 관람하시기 좀 더 편할 거예요. 그리고 계속해서 보다 보면 자신만의 샷이 생기죠. 같은 영화를 많이 보는 걸 추천해요.”
의도하지 않은 장면은 없다
“영화는 왜 그림의 조명과 빛을 차용해 왔을까요?”
그림에서 빛은 그림자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그림자는 입체감과 사실감을 표현하는 요인이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스크린은 캔버스와 같은 평면이다. 흰 평면에 입체감을 주기 위해서 빛을 이용해 왔다. 여기에 색상과 채도 대비를 줌으로써 입체감과 사실감을 더한다. 영화 촬영에서는 조명으로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래서 영화 촬영에 있어서 조명설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명을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굉장히 많죠. 먼저 촬영 시간, 계절, 빛의 양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잘 못 느낄 수 있지만, 계절에 따라 빛의 색깔도 달라집니다. 그리고 촬영하는 공간과 연기자의 동선에 맞춘 조명설계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이야기의 성격을 비롯해 창작자의 의도 등이 조명 설계에 고려해야 할 요인이죠. 시나리오를 읽고 난 이후에 씨퀀스마다 조명 설계를 해야 해요.”
영화의 언어를 조금 알고 나면 영화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인다. 카메라의 움직임, 커튼을 치면 들어오는 빛, 카메라 움직임까지. 무엇 하나 의도되지 않은 것이 없다.
신하균 주연의 영화 <7호실>은 서울에 망해 가는 DVD방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 영화다. 좁은 DVD방이라는 공간에서 긴박한 상황을 나타내기 위해 카메라는 빠르게 움직인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카메라와 배우의 동선, 조명에 따라 현장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내 영화를 두고 이렇게 얘기하니까, 되게 잘난 척하는 것 같네요. 영화 촬영을 하면서 이런 의도가 있다는 걸 보여 주려고 하는 거니까, 이해하고 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카메라의 움직임이 배우의 감정과 언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금방 흘렀다. 자리에 앉은 개주와 자무쉬와 땅콩은 점점 더 미궁에 빠진 표정을 짓는다.
“오늘 우리가 나눈 모든 이야기를 잊어도 괜찮지만, 한 가지 여러분이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있어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표현하고자 하고 싶은 것을 자신 안에서 끄집어내는 행위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예요.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정하는 게 먼저예요. 기술적인 문제는 나중 문제죠. 그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월간 토마토가 영화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오랜만에 만난 대전아트시네마 강민구 대표는 “그냥 뭘 영화를 찍는다고 그래~”라고 웃으며 말했다. 모두 아니라고, 손사래 치며 대답했지만, 자신 없는 표정은 감출 수 없다.
“근데 진짜 수업을 들을수록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무쉬는 말했다. 개주와 땅콩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월간 토마토는 정말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글 이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