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7호] 이곳만의 포근함이 당신을 어루만져 줄 거예요

이곳만의 포근함이

당신을 어루만져 줄 거예요

엄마공간



대전동산고등학교, 동문초등학교 등 많은 학교가 밀집해 있는 문화동. 물론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지만, 보통은 학원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마땅한 동네에 ‘엄마공간’이라는 카페가 작게 자리하고 있다. 학생 가득한 동네에 학생을 위한 공간이 아닌, 엄마를 위한 공간이다. 엄마공간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모여 고충을 나누고, 더불어 엄마와 아이가 행복해지길 바란다. 조용히 문화동에서 자리를 잡아 운영하고 있지만, 어쩐지 엄마공간이라는 이름만큼은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더운 여름날, 이지향 팀장이 건넨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 홀더에 쓰인 문구처럼, 엄마공간은 이곳을 찾는 누군가에게 당신을 응원한다고 나긋하게 말하는 듯하다.



어느 누구보다도 엄마라는 존재를 위해
엄마공간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해본사람들은 청소년·청년을 대상으로 진로·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들의 키워드는 청소년과 청년인데, 어째서 엄마공간이라는 이름으로 공간 운영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자연스레 청소년의 고민 중 하나가 엄마와의 관계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한창 생각 많고 어지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은 부모와 다양한 문제로 부딪힌다. 나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내 친구이자, 최고의 말동무였던 부모님은 시간이 지나 잔소리꾼이 되었다.
학업, 인간관계 등 청소년기에 갖는 문제는 부모와의 문제로도 연결된다. 어떤 문제를 겪던 아이는 부모의 잔소리를 받기 일쑤다. 그 잔소리는 아이의 귀에 지겨움이라는 딱지가 앉고 이내 귀를 막고 방에 틀어박힌다. 뾰족한 아이의 행동과 말 하나는 부모의 가슴에 상처로 남는다. 둘의 관계는 벌어지기만 할 뿐,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바로 엄마공간이다. 엄마공간은 아이와 부모, 더 나아가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아이들뿐만 아니라 엄마의 상처와 고민 역시 어루만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청소년들을 만나다 보니, 엄마라는 존재를 떼어 놓고 말할 수가 없더라고요. 저희의 주 타깃은 아이들이지만 실질적으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나 상담은 부모님에게 드려야 하죠. 아이들이 부모님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봐 오면서 저희는 부모님을 설득의 대상으로만 대했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 부모님 역시 많은 고민을 안고 있었어요. 아이 교육 문제와 집안일에 관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엄마와 아이의 문제는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의 자존감도 떨어지는 상황이 되고요. 그래서 부모님에게 격려나 위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공간과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죠.”
해본사람들 민병수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문득 자리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로 둘러싸인 이 동네에 마땅히 있어야 할 공간 같았다. 동네를 누비는 아이들 뒤에는 아이를 걱정하고 아끼는 엄마가 있다. 그런 엄마들이 모여 이야기 나눴으면 하는 곳. 엄마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보다도 엄마를 위한 공간이고 싶다.


물어봐요, 오늘 당신은 어땠는지
엄마공간으로 들어서는 문에는 ‘당신의 일상을 함께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엄마들의 일상을 함께 공유하고 고민을 풀어 나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엄마공간 내부에는 아이와 엄마가 가진 고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구비해 두었다. 아이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엄마를 위한 책을 곳곳에 배치해 두고,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공간 한쪽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 개선 프로그램도 엄마공간에서 진행한다. 오해로 인해 관계가 멀어진 엄마와 아이가 이곳에서 긴 시간을 들여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쌓였던 오해는 풀리고 진심을 마주한다. 데면데면하던 모습으로 엄마공간에 들어선 둘은 조금은 가까이 걸으며 문 밖으로 나간다.
창문 너머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나는 자동차 소리와 신경질적인 클락션 소리 안에도 아이들 소리가 섞여 있다. 엄마공간이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아이들의 목소리를 품고 있다는 느낌이다.
엄마공간은 북적대는 동네 안에 가장 민감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엄마와 아이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두었던 민감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민병수 대표의 말처럼 부모는 자신의 속내를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는 것이 어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런 인식 때문에, 사소한 오해로 인해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엄마와 아이는 차츰 관계를 회복한다.
민병수 대표와 이지향 팀장은 엄마공간이 ‘편안함’과 ‘채움’, ‘비움’이 존재하는 공간이길 바란다고 말한다.
“꿈꾸는 바가 있다면 엄마와 아이가 가까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엄마들이 이곳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오래 머무르며 무언가를 채워 갔으면 좋겠어요. 또 엄마공간이 엄마와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고요. 엄마와 아이, 이 둘의 관계가 가족의 행복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어요.”
이지향 팀장의 이야기가 끝나고, ‘참 예쁘네요’라는 말이 왈칵 올라왔다. 입 밖에 내진 못했지만, 문득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다’라는 표현은 상투적이고 진부하다. 그런데도 엄마공간은 ‘예쁘다’라는 말이 어울린다. 공간이 예쁘다기보다는 이곳이 가진 분위기와 의미가 참 예쁘다.
엄마공간을 둘러보던 중 한쪽 구석에 걸린 작은 달력을 발견했다. 5월에 멈춰 있던 달력에는 시 한 편이 적혀 있다. 8월에는 어떤 시가 적혀 있나 궁금해 달력을 넘겼다. 황인숙의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라는 시가 담겨 있다.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첫 연을 읽고, 이 예쁜 구절이 가슴에 콱 박혀 들었다.
누군가에게 비가 온다고, 그런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행복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엄마에게 그리고 아빠에게 학교에서 있던 일을 조잘거리던 날도 있었다. 이상하게 그때가 생각나, 취재가 끝나고 엄마공간을 나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전 통화보다 조금 긴 대화를 나눴다. 엄마공간이 바라던 ‘채움’을 받은 n번째 손님이 되었다.
엄마공간을 방문하는 누군가가 이 시를 읽었으면 좋겠다. 이 한없이 뜨거운 여름 당신의 마음만큼은 촉촉했으면 좋겠다. 당신의 소중한 이에게 오늘은 비가 온다고 말하고, 창밖으로 손 내밀어 함께 비를 느꼈으면 좋겠다.




글 사진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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