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7호] 자연식 요리연구가와 문화기획자가 만나 강릉으로

자연식 요리연구가와

문화기획자가 만나 강릉으로

대안문화공간 부부다방

 

 

나는 기자였다. 바로 이 잡지, 《월간 토마토》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그런 것 같은데, 그때도 《월간 토마토》는 ‘공간’이 가진 잠재성 내지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 덕에 나는 대전뿐 아니라, 전국을 다니며 다양한 공간을 취재할 수 있었다.
쓸데없는 사담을 먼저 시작한 건 민망해서다. 지금 내 명함에는 대안문화공간 부부다방 대표라고 적혀 있다. 부부다방에 관해 원고를 부탁받았을 때부터 실은, 머리가 아팠다. 그렇게 많은 공간을 취재하고 다녔지만, 설마 ‘Let me introduce my self’를 하게 될 줄이야. 어쩐지 낯부끄러웠다. 더군다나, 아직 오픈도 안 한 공간을 소개하려니 말이다.
그렇다. 대안문화공간 부부다방은 아직 오픈도 안 했다. 아니, 못했다. 강릉으로 이사 온 건 벌써 1년 전인데, 그간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 인테리어가 마무리되어 8월쯤 오픈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10월쯤 오픈하면 좋겠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도 미뤄질 수 있다. 혹시라도 이 글 읽고 부부다방에 놀러 올 사람은 SNS나 전화로 오픈 여부 꼭 확인하시길!)

 


 

부부의 꿈
오픈을 안 했으니 뭘 하는 공간인지에 관해서는 어차피 얘기할 수 없는 거고, 앞으로 뭘 할 건지, 어쩌다 이런 공간을 하게 됐는지(그것도 강릉까지 와서) 정도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나는 《월간 토마토》 기자였고, 나에게 《월간 토마토》와 북카페 이데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멋지고 이상적인 ‘작당모의’ 방식이었다. 세상을 향해 작은 돌멩이를 던지는.
늘 그런 상상을 했다. 언젠가는 독립해서 자그마한 잡지사를 만들겠다고. 그리고 북카페 이데처럼 근사한 공간을 조성해 일상적으로 작당모의하면서 살면 행복하겠다는 상상.
계기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아내를 만나면서다. 아내는 어릴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그 원인이 음식 때문이었다는 걸 대학생 때쯤 알게 됐고, 그때부터 건강한 음식에 관심을 두었던 모양이다. 그런 아내의 꿈은, 자신만의 공간을 차려 건강한 음식을 나누며 사는 거였다.
그즈음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함께하는 시간 속에 서로가 꿈꾸는 미래를 알았고, 어쩌면 같이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맞댔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적어 나갔다. 무모한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 강릉으로 가자!
강릉은 아내 고향이다. 아내 따라 처음으로 강릉을 오갔다. 그러면서 강릉이라는 도시의 매력에 푹 빠졌다.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 바다와 산이 가깝고, 사람과 자동차가 적었다. 대전에선 맛볼 수 없었던 신선하고 포근한 공기, 느슨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물론, 강릉이라는 도시에도 문제는 많았다. 강릉은, 요즘 한창 화두인 ‘오버투어리즘’의 대표적인 도시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난 후로는 더욱 그렇다. 강릉 인구가 겨우 21만인데, 1년간 강릉을 찾는 관광객이 1,000만을 훌쩍 넘는다. 그중 절반 이상이 여름에 몰리고, 또 그중 대부분은 경포해수욕장을 찾는다. 축제라는 이름을 달고 벌이는 각종 지자체 행사는 관광객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게 해서 풀리는 자본은 대형 숙박시설과 프렌차이즈, 몇몇 맛집에 집중되고 있다.
시민 세금은 세금대로 엄한 데 쓰이고, 교통과 환경 같은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이 떠안고 있다. ‘청정 강릉’이라고는 하는데, 언제까지 지금 같은 모습을 보존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좀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쨌든 강릉을 몇 번 오가며 그런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즈음 아내와 나는, 부부다방을 대전에서 할지, 강릉에서 할지, 아니면 제3의 도시에서 할지 고민하던 때였는데, 비로소 결정할 수 있었다. “우리, 강릉으로 가자!” 강릉의 여러 상황과 문제들, 그 틈바구니 어딘가에, 우리가 꿈꾸는 공간이 조금은 유용한 도구로 쓰일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직은 강릉이 좋았다.


자연식 홈카페
아내와 나의 꿈은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이다. 구체적으로는 강릉이라는 도시가 지금처럼 오래오래 청정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건강한 먹을거리를 대중화하고, 윤리적인 소비문화를 확산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부부다방의 기본 콘셉트는 자연식 홈카페다. 가능한 지역의 친환경 제철 농산물을 활용해 음료와 디저트를 직접 만들어 판매할 계획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얼마 전에는 인근 농가에서 자두를 사다가 청을 담갔다. 또 근처에 100% 우리밀로 빵을 만드는 빵집이 있는데, 샌드위치는 그 집 빵을 가져다 만든다. 원두는 인근 로스팅 업체에 부탁해 유기농 원두를 받고 있다.
더불어 부부다방에서는 GMO, 화학조미료, 색소, 정제된 설탕과 백밀가루 등 몸에 좋지 않은 재료는 쓰지 않는다. 육류와 계란, 우유, 버터 등 동물성 식재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가능한 친환경 농산물을 소비해 토양과 생태계가 오염되지 않고 순환하길 바란다. 폭력적으로 생산되는 육류 소비는 지양함으로써 동물의 생명도 존중하고 싶다.
환경, 동물과 관련된 소소한 프로젝트도 지속할 계획이다. 가령 공장식 축산 문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감독을 초대해 무비톡을 진행한다거나, 길냥이 사진작가와 함께 기획전시를 연다거나, 지역의 환경단체와 연대해서 이벤트성 환경 캠페인을 진행한다거나.
어쨌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과 노력이 윤리적인 소비문화를 확산하는데 미약하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기까지가 부부다방의 첫 번째 목표다.


대안문화공간 
앞서 장광설처럼 얘기했듯, 강릉 시민은 그야말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역민의 삶이 불행해지는 상황에서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기대할 순 없다. 아내와 나는, 우리를 포함해 지역민이 일상적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문화예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말이다.
부부다방에서는 수시로 전시와 공연, 각종 소모임과 강연, 북스테이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해 진행할 계획이다. 관광객이 아닌, 지역민 대상으로 말이다.
또 되도록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청년 작가, 뮤지션들과 함께 무대를 꾸며 볼 생각이다. 지역민과 함께, 지역민을 위한 판을 깔아 보고 싶은 거다. 요즘식으로 표현하자면 플랫폼 역할을 해 보고 싶다. 그런 과정을 통해 객체로 밀려나 버린 강릉 시민이 주체로, 이왕이면 즐겁고 신나게 살았으면 좋겠다. 다시 강조하지만 아내와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이상, 부부다방의 두 번째 목표였다. 부끄럽다더니, 너무 많이 떠들었다. 이제 좀 정리해야겠다. 개인적으로 ‘대안’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이런 거다. 울타리 밖에서 고민해 보는 것, 대문 말고 쪽문으로 들어가 보는 것, 고개를 90도쯤 옆으로 꺾어 보는 것, 양말을 짝짝이로 신어보는 것. 뭐 대충, 그런 거다. 대안문화공간 부부다방은 그런 걸 상상해 볼 수 있는 공간, 그런 것이 통용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진짜, 끝!


 

 

 


글 사진  송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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