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6호] 스토커 독자로 살아가기

스토커 독자로 살아가기

로와


네 번째 책상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요약한다면 상영시간이 얼마나 긴 영화가 될까? 평생 읽는 수많은 책들 중에 인생을 크게 변화시킨 ‘인생 책’은 과연 몇 권일까? 나는 어떨까?
내 인생 요약본 러닝타임은 아무리 길어야 컵라면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 정도다. 지리멸렬한 일상 따위 이야깃감도 아니고, 결정적 찰나는 한 손에 꼽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내 ‘인생 책’은 아직까진 단 두 권이다. 사춘기에 한 권, 사추기에 한 권. 단 한 권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하고 작가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하는 독한 책들.
내 두 번째 인생 책은 《137개의 미로 카드》다. 처음 읽을 때 난 책에게 뒤통수를 거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몇 번을 읽어도 여전히 좋았고, 계속해서 다르게 읽혔다. 독특한 형식, 깊은 사유, 다양한 문체. 난 책에 완전히 홀렸다. 풍덩. 수영도 못하는 난 계속해서 책 속에 빠져들었고 책에 파묻히다 보니 저자가 궁금해졌다. 여태까지 내가 좋아했던 외국작가들과 달리, 나와 같은 모국어를 쓰는 현직 작가다. 내 머릿속이 환해졌다. 이런 행운이 있나! 기다리기만 하면 앞으로도 새 책이 나온다니! 그것도 번역서 아닌 원어 그대로의 책이!
최애작가 탄생과 진정한 덕질 시작에는 부작용도 따랐다. 작년 한 해 내가 수십 년 만에 부활한 문학열정으로 소설책을 읽고 분석하던 열정의 반의반만큼만 업무에 쏟아 부었어도, 난 아마 지금쯤이면 직장에서 상을 받았거나 승진했거나 연봉이 130프로 올랐을 거다. 내 인생 책인 동시에 직장인 미래는 다소 불투명하게 만든 ‘나쁜 책’이랄까? 누굴 탓하리, 스스로 스토커 독자가 된 내 탓이지.
덕질의 기초는 자료수집이고 ‘인생 책’ 저자에게 독자가 보이는 충성심은 절대적이다. 나는 한 권의 책에 매혹되어 작가의 모든 책을 찾아 읽었다. 데뷔작을 웃돈 주고 중고책방에서 구매한 건 기본, 모든 단독저서를 사서 모으고 밑줄 쳐가며 정독했다. 다음으로는 공저까지도 하나씩하나씩, 모두. 공저에 포함된 단 한 편씩의 글을 읽기 위해. 심지어 잡지에만 출판된 수상작 <자살금지법>은 국립중앙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찾아가 자료를 대여하고 일일이 복사기로 복사해서 읽었다. 역시나 그럴 가치가 충분한, 멋진 소설이었다. 난 다음에 다시 읽으려고 한글 파일로도 만들어 두었다. 어떻게? 상상하시라.
그렇게 나는 김운하 작가의 중증 스토커 독자가 됐다. 《137개의 미로카드》와 《릴케의 침묵》을 가장 좋아하며, 작가의 새 장편소설을 목을 빼고 기다리는 독자. 난 당연히 최애작가의 글을 더 읽고 싶다. 어떤 글이든, 언제든. 그러던 5월, 신간소식이 들려왔다. 당연히 예약구매다. 이사, 이직,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로 분실할 가능성에 대비해 책은 일단 복수로 구매하여 곳곳에 배치한다. 집 책상 밑, 책상 위, 사무실 서랍 속, 사무실 책상 위, 그리고 내 비밀 서재에, 또 한 권은 가방 속에 넣고 다니며 조금씩(과연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읽을 거다.
출간일. 페이스북에 서울 독자들의 책자랑 인증샷이 하나둘 올라온다. 약 올라서 꺼 버린다. 서울로 이직할까를 잠시 고민해 본다. 다음 날 오후, 드디어 직장으로 책 택배가 도착했다. 회의 하나만 마치면 퇴근시간. 다행이다. 근무 시간에 몰래 책을 읽는 비양심적인 일은 하지 않아도 되니. 회의 후 매점에서 컵라면 하나 후다닥 먹고 바나나 한 개 사서 내 책상으로 얼른 돌아온다. 드디어 퇴근시간. 난 사무실 문을 닫고 책을 편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읽는다. 침착하고 고상한 독서 따위 난 모른다. 표지도 예쁘다. 몇 주 전 출판사 블로그에서 내가 투표한 디자인이다. 우훗.
그런데 웬걸, 1부 제목이 ‘나쁜 책, 스토커, 그리고 독자’. 역시 내 최애소설가구나! 나쁜 책과 스토커라니, 작가님 책과 내 얘기잖아? (당연히 이건 착각) 자세를 고쳐 잡고 집중해서 읽는다. 벼라별 신기한 책 제목 소개에 한참을 웃는다.
김운하 작가는 ‘책의 지옥법칙’을 정의했다. 제1법칙은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읽지 않은 책이 점점 더 늘어난다(115쪽)” 제2법칙은 “독서를 통해 지식을 쌓으면 쌓을수록 모르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진다(115쪽)”다. 이왕이면 한 가지 더 만들어서 세 가지로 하셨더라면. 이를테면 “책은 천국도 보여주지만 지옥도 또한 보여준다(120쪽)”가 제3법칙이 아닐 이유는 뭔가? 난 삐딱한 독자이기도 하다. 2부에선 작가와 독자를 말한다. 삶 자체가 소설이거나 그보다 더한 작가들이 소개된다. 한편 밥 대신 책을 택해서 굶어 죽은 철학자 보다 데몰랭, 책에 깔려죽은 앙캉, 아들도 못 알아 본 테오도어 몸젠 같은, 극단적인 독자 이야기도 있다. 후와, 내가 졌다.
내가 제일 좋아한 부분은 3부였다. 특히 책과 제목이 같은 3부 첫 글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는 가장 김운하 작가다운 짙은 향기를 풍기는 글이다. 아마 작가도 가장 애정하는 글이 아닐까? 마치 레메디오스 바로가 그린 ‘소용돌이 통로’를 통해 들어간 ‘고양이 천국’ 성에서 ‘새의 창조’ 캐릭터가, 혹은 에셔의 ‘그리는 손’이 쓴 것만 같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글. 다시 읽어 봐도 여전히 미궁 같은 환상소설이다. 저자는 열 한 번 째 서랍까지 있다는 이야기만 슬쩍 흘린 채,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던 비트겐슈타인을 언급하며 사라져 버린다. 상상과 여운을 남기는 단편소설.
어쩌면 진정한 스토커 독자는 작가가 귀찮을 지경까지 졸라대서 계속 책을 쓰게 하는 독자가 아닐까? 서문의 “이 책은 책과 독서에 대한 나의 애정고백서다.(12쪽)”를 패러디하자면, ‘이 리뷰는 작가에게 보내는 스토커 독자의 고백 편지다’. 게다가 리뷰를 쓰고 있는 이 스토커 독자는 감히 작가에게 길고 긴 답장까지 바라고 있다. 장편소설이라는 형태로. 
난 내년 이맘때쯤엔 최애작가님의 긴 답장에 답장을 쓸 수 있기를, 달리 말해 김운하 작가 신작 소설의 리뷰를 쓰기를 강렬히 원한다. 이건 모두 단 한 사람에게 달렸다.
김운하 작가님, 읽고 계시죠?
(...이거, 협박편지인가?) (로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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