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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6호] 그렇게 남겨진 이야기
그렇게 남겨진 이야기
이지선
오직 두사람(김영하, 문학동네, 2017)
여러 번 쓰고 다시 지우고를 반복하다 책장 앞에 섰다. 마땅히 떠오르는 책도, 그렇다고 손이 가는 책도 없었다. 왜 그럴까를 한참 고민하다 책장 한쪽에 꽂혀 있는 책 한 권을 집었다. 김영하 작가 소설 《오직 두 사람》이다.
근래 서점만 가면 이 책, 저 책을 욕심내서 집어 온 터라 언제 구입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늘 그랬듯이,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들린 서점에서 그날따라 유독 눈에 띈 책이 《오직 두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오직 두 사람》은 한동안 출퇴근길을 함께했던 책이다. 매일 가방에 넣어 놓고 다니면서 단 한 줄도 읽지 못한 날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안타까움의 탄식을 뱉었다. 그래도 틈이 날 때마다 책을 펼쳤고, 책을 펼칠 때마다 앞의 내용을 버릇처럼 다시금 확인했다.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한 호흡으로 읽어야 소화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난 후에야 짧은 문장 하나에도 밑줄 한 번 제대로 쳐보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았다. ‘언젠가 다시 읽어 봐야지’라고 생각만 하고, 방 한 구석에 방치해 놓았던 책을 엄마는 다시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 두었다.
표제작인 단편 <오직 두 사람>은 현주가 보고 싶은 언니에게 쓰는 한 통의 편지다. 말기 암 환자인 아버지 곁에서 현주는 편지를 쓴다. 아버지와 자신,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현주의 시점으로만 이야기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편지를 읽어 내려 갈수록 내가 현주의 보고 싶은 언니가 된 기분이다.
현주는 부모와 삼남매가 함께 사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삼남매 중에서도 현주는 아버지가 유독 편애하는 딸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유달리 아픈 손가락은 있다. 형제, 자매가 있는 집이라면 어느 정도의 편애는 누구나 겪어 봄직한 일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현주를 향한 아버지의 편애가 내심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현주는 그런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특별한 이유나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받은 건 아니다. 현주에게 아버지는 퍽 멋있는 존재였다. 일찍이 교수에 임용되고, 운동으로 단련된 탄탄한 몸을 가진 아버지. 자신에게 우상과도 같은 존재의 아버지가 현주를 편애했고, 그런 아버지를 자연스럽게 따랐을 뿐이다.
어느 시점부터 가족들은 현주에게 아버지를 떠밀었다. 현주는 아버지의 감정을 대변하는 사람이었다. 서로 간의 대화는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가족은 흩어졌다. 결국, 아버지 곁에 남은 건 현주였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현주의 일상에서 아버지는 빠지지 않았다. 아버지와 현주의 특별한 관계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기 어려웠다.
주말의 일정도 맞추기가 쉽지 않았어요. 아빠가 미리 정해놓은 전시를 보러 가거나, 시네마테크에서 예술영화를 보거나, 새로 오픈한 식당에 가서 브런치를 먹어야 했기 때문이에요. 아빠와 다니던 식당들에 비하면 남자와 가게 되는 곳은 늘 수준 미달이었어요. 물론 그럴 수밖에요. 중산층 대학생 남자가 용돈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어떤 곳이겠어요?
-김영하, 《오직 두 사람》, 23쪽.
현주는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아버지를 이해하며 자신을 갉아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를 떠나기로 결심하곤 동생이 있는 미국으로 떠난다. 하지만 결국 다시 아버지 곁으로 돌아갔다. 현주는 아버지를 “인생에 도움 하나도 안 되는 유독하고 중독적인 존재”라고 표현한다. 두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었고, 그렇다고 가까이 하면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그런 관계였다.
하지만 자식들은 영어로만 소통하고 처음에 같이 고향을 떠나왔던 사람들은 하나둘 세상을 등져요. 마침내 오직 언니하고 다른 한 명만 남아요. 마침내 둘은 어쩌면 전 세계에서 이 언어로 대화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생존자들일지도 몰라요. 그러던 어느 날 이 둘, 최후의 두 사람이 사소한 말다툼 끝에 의절을 해요. 그러곤 수십 년 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아요. 결국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요. 저는 생각했어요.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고독에 대해서요. 이제 그만 화해하지 그래, 라고 참견할 사람도 없는 외로움.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말다툼. 만약 제가 사용하는 언어의 사용자가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면 말을 조심해야겠어요. 수십 년 동안 언어의 독방에 갇힐 수도 있을 테니까.
-김영하, 《오직 두 사람》, 11~12쪽.
현주의 편지는 희귀 언어 이야기로 시작한다. 편지의 말미에는 허전함과 쓸쓸함을 예감하며 자신이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현주는 아버지와 자신이 희귀 언어를 사용하는 이 세상의 오직 두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현주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도 현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읽는 내내 의문이었다. 현주는 왜 그렇게까지 아버지 곁을 떠날 수 없었을까. 현주가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아버지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생존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세상에 오직 두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불필요한 희생을 감수하며 곁을 지켰지만, 그건 과연 누굴 위한 것이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고, 허전한 생각까지 들었지만, 왜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열린 결말이었기 때문인지, 현주를 이해할 수 없어서인지는 모르겠다. 모든 이야기가 명쾌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느낌이었고 머리는 복잡했다. 그래서 나는 더 오랫동안 마지막장에서 손을 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현주에게 “괜찮아,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아버지가 없는 당신의 삶도 충분히 괜찮을 거라고. (이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