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6호] 오늘? 할 일이 있어서 서점에 갑니다

오늘?

할 일이 있어서

서점에 갑니다.

김은경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다구치 미키토, 펄북스, 2016)




금요일 저녁 시간은 본격적인 주말이 시작되는 토요일 전날의 덤인 것 같아서 왠지 별일 없이도 신이 난다. 그래서 공짜로 얻은 듯 여겨지는 그 ‘불금(불타는 금요일)’의 시간은 뭐라도 해서 반드시 즐겨야만 할 시간 같다.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현실적인 문제가 있긴 하다. 그 신나는 기분과 별개로 사실 별 특별한 계획이 없다는 뭐 그런 문제? 친구들과 어울려 찐하게 한잔하며 밤을 지새우기엔 나의 체력은 벌써 팔팔함을 잃은 지 오래고, 연인과 팔짱 꼭 끼고 불금의 거리를 걷자니 연인이 없어서 낄 팔짱이 없다. 이런 저질 체력과 핫한 프라이버시가 없는 나에게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2018 책의 해’를 맞아 올해 12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심야책방’이 열린다는 것. 이제 한 달에 한 번, 그달의 마지막 주에는 ‘불금’ 대신 ‘책금(책 읽는 금요일)’이다. 책의해 조직위에 따르면 심야책방 프로젝트에 참여 의사를 밝힌 서점이 120여 곳이 넘는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6월 첫 ‘심야책방의 날’에도 전국 39개 지역에서 111여 곳의 서점이 참여해 다양하고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많은 독자들을 깊은 밤, 심야책방으로 초대했다.
그 첫 번째 심야책방이 전국적으로 열리던 날, 필자도 퇴근을 해서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밤 10시쯤 편하게 동네의 진주문고 심야책방을 찾았다(회사가 서점 건물과 같은 것이 함정). 읽을 책도 한 권 골라 쥐고 커피도 한 잔 챙겨서 서점에서 나온 분의 간단한 안내를 듣고 서점 한구석의 편한 의자를 골라 자리를 잡았다. 잔잔한 음악과 쾌적한 주위, 읽고 있는 책에 대한 만족감으로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책을 읽다 주위를 둘러보니 띄엄띄엄 제각각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풍경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그득 채워지는 것 같았다.

서점이 해야 할 일은 먼저 제대로 장사하는 것이다. 지역 사람들에게 ‘오늘의 갈 곳’과 ‘오늘의 할 일’이 되어주고, 책이라는 마음의 은신처를 제공한다.  -다구치 미키토,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 116~117쪽.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2016년에 출간된 책으로 다구치 미키토라는 일본의 현직 서점원이 쓴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서점이 ‘오늘의 갈 곳’과 ‘오늘의 할 일’이 되어 주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례로 든 할머니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여든이 넘은 한 할머니가 로봇을 만들 수 있는 부품이 한 가지씩 부록으로 동봉되어 나오는 주간지를 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신은 혼자서는 만들 수가 없으니 서점에서 로봇을 조립해 줄 수 있냐는 것이다. 서점의 점장인 저자는 바쁜 서점 일을 하는 중에 그런 일까지는 곤란하다고 생각하지만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신입 직원에게 그 임무(?)를 맡긴다. 처음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던 신입 직원도, 매주 로봇을 조립하는 모습을 보러 오는 할머니도, 로봇이 점차 형태를 갖추어 가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나눈다. 그러면서 오늘은 병원에 다녀왔다거나 하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명절 때 음식을 챙겨 준다거나 하며 이야기는 점점 뻗어 나간다. 할머니에게 서점은 그야말로 ‘오늘 할 일’이 있어 ‘오늘 갈 곳’이 되었다. 물론 복잡한 서점 매장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닐 테다. 하지만 이렇게 책이 매개가 되어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가 이어지는 일은 분명 그 서점을 건강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큐레이션이니 모임이니 이벤트니, 지금의 서점은 살아남기 위해 갖가지 변신을 꾀하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어떤 모임을 마련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또 어떻게 그들을 책으로 이끌까 고심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그 모든 노력의 가운데는 항상 ‘사람’이 있다.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를 끈끈히 엮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 일을 이 책의 저자는 ‘일군다’라고 표현한다. 농사를 짓듯 서점 매장을 일군다는 뜻이다.

서점 직원과 손님이 서점 매장이라는 토양을 일구어 이 책 한 권을 심었을 때 어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까. 그 꽃과 열매를 상상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우리가 ‘팔고 싶은 책’이다. -다구치 미키토,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 71쪽.

이 책의 저자는 서점이라는 토양을 서점 직원과 손님이 함께 일구어 어떤 꽃과 열매가 맺을지 상상할 수 있는 책을 팔고 싶다고 말한다. 사실 그런 책이라면 독자의 입장에서도 ‘사고 싶은 책’일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면 이 책의 저자가 일하는 서점은 지역의 ‘지방 쇠퇴 문제’와 ‘지역 활성화’를 주제로 한 책을 팔고 싶었다. 그래서 행정기관이나 대학과 연계해 다양한 통로로 조용히 뿌리를 내려 두었고, 지역 사람들과 지방의 문제점을 논의할 자리를 만들고 싶다며 이곳저곳 뛰어다녀서 그 뿌리에서 씨앗을 틔울 준비를 해 두었다. 그즈음 나온 책이 마스다 히로야의 《지방소멸》이라는 책이었다. 뿌리를 내려 둔 것을 발판으로 연관되는 주제와 관련한 강연회나 이벤트를 주최해 그 책을 한 지점에서만 1천 5백 권이 넘게 판매하는 열매를 일궈 냈다. 그리고 그것은 문제의식을 갖게 된 관심 주제와 연관 지은 지속적인 노력, 지역 사람들과의 유대가 차근차근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말한다.
당신과 나, 우리의 유대가 끈끈해진다는 것은 서로 애를 쓰고 공을 들인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공들여진 토양에서 한마디 말이 오가고, 할 일이 마련되어 있는 ‘판’을 마련하는 일은 인내를 갖고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활동이고, 또 그렇게 지속해야만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이 책에는 서점이라는 토양을 어떻게 마련하고, 관계를 어떻게 일구며, 어떤 노력을 해서 성공하고 실패했던가에 관한 살아 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폭풍 끄덕임을 하며 공감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무릎을 치며 나도 해 봐야지, 생각하게 되는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다. 서점을 운영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속초 동아서점의 김영건 팀장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저자를 두고 “지역 속에서 서점을 실천하고 있다”라는 말을 했다. 적확한 말이다. 그야말로 이 저자는 서점을 실천하고 있다. 매일매일.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엔 심야책방이 열린다는 말을 다시 해야겠다. 이번 달 마지막 주 불금의 심야책방에서 읽을 책으로도 추천한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 서점원이 아니더라도 책을 팔아서 먹고살고 싶은 사람들, 책으로 아직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지역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김은경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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