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5호] 35mm 필름 안에 담긴 일상이 역사가 되다

35mm 필름 안에 담긴 일상이 역사가 되다

1952년 대전 사진 해석 모임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 모습을 담은 사진이 60여 년 만에 세상에 공개되며, 누군가의 소소한 기록이 한 나라의 역사로 남았다.
현충일을 앞둔 지난 6월 5일, 육군본부는 주한미군 소속 1지역대 사령관 뉴튼(Brandon D. Newton) 대령이 기증한 사진을 공개했다. 기증받은 슬라이드 필름 원본은 뉴튼 대령 외조부인 토마스 상사가 촬영한 것으로,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일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총 239장의 컬러 필름에는 서울, 대구, 공주를 비롯해 대전의 모습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대전을 담은 사진 속에는 2013년 철거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영렬탑의 모습이 보였다. 그 밖에도 둔산지구 비행장, 목척교, 옛 대전역 등 생소한 모습을 한 대전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이 빚은 풍경은 낯설고, 파릇해야 할 풍경에는 흙먼지가 끼어 있다. 폭격으로 인해 건물 지붕이 사라지고, 마을을 잇는 다리는 무너졌다.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는 처참했지만, 우리 시선을 이끈 건 그럼에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무너진 풍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간다. 지붕 위에서 고추를 말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옥수수 밭을 가꾸기도 한다. 사람들은 부서진 건물 앞에서 장을 열고 온전치 못한 건물 사이를 부지런히도 움직인다. 그 끔찍한 전쟁 통에도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사진 속 배경에 관한 정확하고 다양한 해석을 위해 지난 6월 25일, (사)대전문화유산울림 안여종 대표이사는 사진 해석 모임을 마련했다. 뉴튼 대령이 기증한 사진 중, 대전으로 보이거나 대전이라 해석한 사진 70여 장을 살펴보며 해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모임에는 역사, 문화 연구가만의 모임이 아닌 (사)대전문화유산울림 회원과 옛생돌 회원, 사진 전문가, (사)모먼트가 함께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다양하고 조금 더 정확한 해석을 해야 한다는 안여종 대표이사의 생각에서였다.
“상당 부분 지역을 잘못 표기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보문산을 계족산으로 표기하거나 대전천을 대구 금호강이라 잘못 해석하기도 했죠. 이런 부분을 빠른 시일 내에 바로잡고자 모였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가 단순히 사진 속 배경이 어느 지역인지를 파악하는 자리는 아닙니다. 오류가 있는 해석을 고치는 것은 단기 목표예요. 다양한 전문 영역의 사람이 모여 각자의 시선을 통해 사진을 해석하고 사진 속 이야기를 유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여종 대표이사의 말처럼 사진 해석 모임은 사진 속 풍경에 담긴 다양한 정보를 분명히 하고, 더불어 건물과 인물, 물건 등 사진 속 상황까지 해석하는 자리였다. 단기간에 사진 해석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급하게 마련한 자리였지만, 충분히 좋은 해석이 오갔다. 오랜 시간 산을 오르고 연구해 온 참가자들은 멀리 보이는 산의 능선과 산세만으로도 산 이름을 맞췄다. 흐릿하게 보이는 작은 글씨하나 놓치지 않고, 사진 속 모든 요소를 분석하고 논의했다.
“저 옷은 외출복인데, 옷차림으로 봐서 저 사람들은 부잣집 어른이에요. 백고무신을 신고 있고, 모시 두루마기를 하고, 삼베 바지를 입었어요. 그리고 맨 오른쪽 사람은 안경을 쓰고 있죠? 그 당시 부자들만 입거나 쓸 수 있는 비싼 것들이죠.”
둔산지구 공군 비행장으로 추정되는 사진 속 인물을 보며 (사)대전문화유산울림 이주진 상임이사가 들려준 해석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무도 잡아내지 못한 부분이었다. 안여종 대표이사가 말한 독특한 관점이었다.

“현재까지 대전에서 확인된 수십 년 전부터 100년 이내까지의 사진 중 사람 표정이 이번 사진처럼 잘 드러난 경우도 드물어요. 무엇보다 오래된 사진 중에 시기가 불분명한 사진도 많은데, 이 사진은 1952년, 6·25 전쟁이라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것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정확히 1952년, 6·25 전쟁이 일어난 시기의 사진이 등장하면서 시기가 불분명했던 사진을 해석할 여지가 생겼다. 안여종 대표이사가 이번 모임을 진행한 것 역시 1952년 당시 사진 해석을 끝낸 뒤, 다른 사진에 관한 해석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그의 말처럼 참여 분야를 더욱 확대해 여러 관점에서 논의하고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아직 해석 모임은 1차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몇 차례가 될지 모를 모임이 남아있다. 안여종 대표이사는 조금 더 세밀한 해석과, 당시 사진 속 상황을 이해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몇몇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비행기 위에 서 있는 부잣집 양반도 그렇고 목척교 가운데에 서서 물건 파는 외국인 같은 남자. 그리고 그 앞을 지나는 밀짚모자 쓴 아저씨의 모습도 상당히 흥미로워요. 그 당시에 목척교는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밀짚모자 쓴 아저씨의 손이 밀짚모자로 향해 있는 건, 혹시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네려는 게 아니었을까요? 이런 식으로 시대상을 반영한 이야기를 담아 볼 예정이에요. 마침 내년이 2019 대전 방문의 해이기 때문에,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일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생존해 있는 사진 속 인물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글 사진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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