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5호] 당신이 알고 있는 '롬복'을 진짜 '롬복'이라...

당신이

알고 있는 '롬복'을

진짜 '롬복'이라

말할 수 있는가?

롬복히든트립 대표 에카






인도네시아 롬복 프라야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살짝 축축하고 더운 공기가 풀썩거리며 온몸에 달라붙는다. 늦은 시간이지만 공항 안팎 경계에 적지 않은 사람이 웅성거린다. 택시 기사들의 호객 행위는 끈질기고 집요하며 진지하다. 그 사이를 뚫고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를 따라가니 더 많은 사람이 몰렸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거나 서서 한 방향을 응시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지, 갈 곳을 잃은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그 끝자락 즈음에서 번쩍 들어 올린 손이 보인다. 에카(EKA)다. 깡마른 체구에 입이 커 환하게 웃는 모습이 무척 잘 어울린다. 램프의 요정 지니를 떠오르게 하는 세라(Sela)도 함께 마중을 나왔다. 세라는 에카의 든든한 동료다.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누는 동안 우리가 처음 만난 사이라는 걸 잊었다.
에카와 세라는 함께 롬복히든트립(Lombok Hidden Trip)을 운영한다. 에카가 이 회사 대표다.
에카 고향은 롬복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자카르타에 있는 미디어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
“저는 그래도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교육도 충분히 받고 다양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 모순과 부조리가 눈에 들어오던 에카의 생각에 불을 지핀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Anak Anak Angin(바람의 아이들)》이라는 책이다. 한 남성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학교를 설립하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책을 통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설립한 학교에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를 강하게 주장하였고, 에카는 이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제가 가질 수 있었던 기회를 이제 나눠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에카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롬복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기 시작할 때였다. 바로 옆에 있는 섬 발리처럼 롬복도 점점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 속에 고향 주민이 처한 상황이 에카 눈에 들어왔다. 헐값에 풍광이 아름다운 곳의 땅을 외국인에게 팔아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당장 돈이 급해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 자리에 이국적인 느낌의 호텔이나 리조트가 들어섰다. 당연히 주인은 롬복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현실이 에카는 안타까웠다.
“외국 사람을 위해 힘들게 노동을 하는데,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고향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여행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이루려는 목표를 향해 가는데, 그 수단으로 ‘여행’을 선택했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정당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었거든요.”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롬복의 전통과 문화,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여행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메인 테마로 하는 여행사를 설립했다. 2015년에 설립한 롬복히든트립이다. ‘여행’에 관한 그의 고민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여행사다.
롬복히든트립은 근사한 호텔에서 즐기는 편안한 휴식 대신 롬복의 역사와 문화 종교, 꿀벌 농장, 재활용품 수공예점, 학교, 아이들, 사람을 만나는 여행을 제안한다. 종교와 사회가 혼합된 독특한 롬복의 문화를 제대로 느끼기를 원한다.
회사를 설립한 후 에카는 자신의 꿈을 주변에 이야기했지만 대부분 비웃었고 도움의 손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제가 막상 하고 싶은 일은 있지만 여행과 사업에 관한 아무런 기초 지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2년 동안은 공부만 했습니다.”
제2의 발리를 외치며 동남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휴양지 형태로 변모를 꿈꾸며 그런 형태로 개발을 서두르는 곳에서 전통과 문화, 사람을 이야기하며 여행사를 차린다는 것이 쉽게 동의받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략 250만 명이 사는 작지 않은 섬, 롬복이 맞딱뜨린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20대 중반의 에카는 다른 선택을 했다.
“저와 회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첫 번째가 교육, 두 번째가 사회 발전, 세 번째가 환경입니다. 고향 롬복에서 이 세 가지 영역에 분명한 변화를 가져 오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에카는 여행사를 경영하면서 롬복 마타람에 있는 대안학교 사양이부스쿨(sayang ibu school)에서 학생들에게 사회과학을 가르친다.
에카는 부유함과 가난함은 ‘돈’이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으로 구분하고 싶다 말한다. 에카 자신도 롬복히든트립을 시작한 이후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다시 한번 물었지만, 대답은 같았다. 다른 사람을 웃게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뿌듯하고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처음 시작할 때와 달리 지금은 많은 사람이 도와줍니다.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 꾸준히 연락하며 연대합니다.”
에카와 함께 롬복에서 보내는 동안 에카 소개로 만난 사람 대부분이 바로 그와 연대하는 사람이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음악가 미디(Midi), 에카의 동생이자 여행사 반상근 스태프 에비(Evi), 사양이부스쿨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이미(Immy), 자신이 태어난 마을에서 업사이클링 작업장을 운영하며 환경운동을 펼치는 아이샤(Aisyah), 그리고 그의 옆에서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 주는 세라(Sera). 이름을 가진 조직을 구성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상의 끈끈한 유대와 연대감이 느껴졌다. 이들의 연대가 만들어 낼 미래가 자못 궁금하다.
“사업이 성공하면 3층 건물을 짓고 많은 젊은 사람과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젊은 사람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여행을 통해 다른 커뮤니티도 돕고 싶어요.”
자신이 만들어 낼 미래를 얘기하는 에카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에카의 최종 목표는 롬복에 학교를 짓는 것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짓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에요.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길러 준다면 인도네시아는 충분히 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쁜 여정, 에카의 차에서 숙소 식당에서 드문드문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딴중마을’에 갔다. 시장에서, 골목에서 그는 동네 어른과 친구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에카에게 다가와 손을 마주잡는 이웃 아주머니의 얼굴에 따뜻함이 가득하다. 그의 고향 딴중마을은 산과 논, 이리저리 골목을 만들어 낸 주택, 멀지 않은 곳에 그림처럼 펼쳐진 해변과 바다가 펼쳐졌다. 고향 롬복의 미래를 그리는 청년사업가 에카를 길러 낸 곳이었다.




글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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